그래도 행복하다
얼마 전, 딸이 운동화를 사달라며 링크를 하나 보내왔다. 해외배송이라 한참 만에야 도착했고, 딸은 예쁘고 편하다며 만족스러운 연락을 보내왔다. 신어보니 마음에 든다며, 나도 같은 걸로 신어보라고 권했다. 멀리 있는 딸과 같은 신발을 신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 역시 주문했다.
이번에는 배송이 더 오래 걸렸다. 마침내 도착한 신발을 신어보니, 내 발에도 잘 맞았다. 가볍고 편해서 기분이 좋았다.
며칠 뒤, 딸이 집에 놀러 왔다. 내 신발을 보여주며, 그동안 딸이 신던 운동화는 많이 닳아보여서 무심히 물었다. “이거 신을래?” 딸은 아무렇지 않게 “괜찮아”라고 답했다. 반응은 담담했고, 대화도 거기서 끝나는 듯했다.
그렇게 함께 지낸 일주일이 흐른 뒤, 딸이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현관 앞에서 딸은 말했다. “나 이거 신고 갈게. 내 건 엄마가 빨아서 신어.” 말투도, 표정도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그 당당한 모습이 순간 낯설면서도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억울하지도, 섭섭하지도 않았다.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편안했고, 불쑥 눈물이 났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아, 전적으로 믿고 까불 수 있는 관계란 이런 거구나. 당연한 듯 기대고, 거리낌 없이 가져가는 태도. 그건 누군가를 온전히 믿을 때만 가능한 감각이다. 그런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 맺을 수 있다는 게 부러웠다. 그리고 동시에 나도 언젠가 그런 사람이었겠구나 싶었다.
누군가의 것을 당연히 내 것처럼 여기고, 마음 놓고 기대던 시절. 돌아보면 짧았지만 강렬했고, 무엇보다 참 편안했다.
이제는 그 역할이 바뀌었다. 이제는 누군가가 내 것을 가져가도 괜찮다고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예전엔 무언가를 줄 때마다 어딘가 힘이 들어갔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의무감도, 계산도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마치 흐르듯이.
딸이 내 신발을 신고 떠난 뒤, 나는 그 자리에 남겨진 운동화를 조용히 물에 담갔다.
그 순간 생각했다.
꼭 챙겨주지 않아도,
꼭 붙잡고 있지 않아도 흘러가는 대로 나누는 마음.
그게 지금 내게 가능한 사랑의 방식이라는 걸.
그리고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