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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와 함께 살아가기

사기꾼과 창녀, 내 안의 두 그림자와 손잡기

by 석은별

처음엔 이게 부끄러운 줄도 몰랐다. 나를 덜어내고 고요해지려고 했던 수많은 명상 끝에, 자꾸만 얼굴을 들이밀던 녀석들이 있었다.

하나는 사기꾼이었다. 하나는 창녀였다.

처음엔 아니라고 했다. 나는 그럴 리 없다고. 그건 어릴 적 나를 버렸던 사람들이 가진 얼굴이라고, 나는 정반대의 사람이 되기 위해 이 길을 걷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조용히 내 무릎을 짚고 올라온 그것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내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지혜와 연민이라는 가면을 쓰고.




사기꾼은 늘 나를 도와줬다. 사람을 금세 파악하고, 표정의 어두움을 감지하며, 거짓말을 들으면 속으로 웃었다.
'그래, 나도 저런 말 잘 하지. 내가 더 자연스럽지.'

상담사가 되고 난 뒤에도 그 능력은 유용했다. 내담자가 나를 시험하듯 던지는 말에 쉽게 휘둘리지 않았다. 그건 나도 아는 감정이었으니까. 사기꾼은 내 안에서 늘 먼저 감지했다. "이건 믿으면 안 돼." 그런데 이상한 건, 그런 통찰이 깊어질수록 나는 자꾸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이 말은 정말 진실일까?"

내가 사기꾼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 그림자는, 사실 결핍의 화신이었다. 어릴 적 나를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기에, 살아남기 위해 먼저 속이거나, 무표정을 연기하며 눈치를 보는 법을 익혀야 했던 아이. 그래, 나는 살기 위해 연기했고, 그 연기가 익숙해지며 진짜가 되었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지우며 나는 사회적으로 괜찮은 사람, 일 잘하는 상담사, 무너지지 않는 자아로 서 있었다.


창녀는 좀 더 오래 숨겨져 있었다. 나는 그녀를 오랫동안 수치심으로 덮어두었다. 하지만 깊은 치유의 순간마다, 그 애가 울고 있었다.

어릴 적 받았던 사랑이, 사실은 폭력이었다는 걸 알기 전까지 나는 그것을 애정이라 믿었다. 특별히 사랑받았다고 착각했던 기억 속에 쾌락이 섞여 있었고, 그 기억은 내 몸의 감각을 더럽혔다.

그녀는 갈망했다. 애정과 인정, 특별한 존재가 되길. 그러나 동시에, 자기를 더럽다고 느꼈다. 창녀는 내 안에서, 가장 사랑받고 싶었던 자아였다. 그리고 나는 그를 숨기기 위해 더 고귀하게, 더 선하게, 더 정결하게 살아야만 했다. 그게 상담사로서의 무기이자 방패였으니까.


나는 이제야 인정한다. 내가 상담사로서 누군가의 감정을 읽고, 섬세하게 신뢰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건 사기꾼과 창녀라는 두 그림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를 살게 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들과 손을 잡고 살기로 했다.


무조건 진실만 말하려는 열탕의 나와, 모든 것을 속여서라도 살아남으려는 냉탕의 나 사이에서 나는 이제 온탕에서 살아가고자 한다.

진실을 다 말하지 않아도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고, 거짓을 다 감지하지 않아도 불안에 떨지 않는 온도. 그게 내가 찾은 현존의 방식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사기치지 않아도 된다. 창녀처럼 구걸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내가 내 손을 잡아주기로 했으니까.

그림자는 없애는 것이 아니다. 그림자는, 함께 살아내는 것이다.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들과 함께 살아간다. 사람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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