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석은별 Mar 26. 2024

말의 대물림

쪼다, 대가리, 빠가

결혼하면서 가장 잘했던 것이 무엇인가 떠올려 본다면 '시아버지와 거리두기'인 것 같다.

아들만 셋 키우던 시아버지는 목수로 현장 소장을 맡다보니 표현이 상당히 거칠다. 일단 목소리가 크다. 그리고 특유의 비아냥과 조롱의 어투가 있다. 이 부분은 깜짝 놀랄 만큼 내 남편도 닮은 구석이 있다.

남편은 첫인상이 거의 종교인으로 보여질 만큼 선한 관상과 예의를 깍듯하게 차리는 말투를 가졌다.

그러나 나와 함께 있을 때는 필터가 제거된 상태다 보니 나를 향한 내용이 아니라도 저속한 표현 때문에 자주 다퉜다. 그렇다고 내가 고상하고 우아한 말만 하는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안 해도 되는 거는 안 하는 게 맞다고 믿는 편이라, 굳이 편하다는 이유로 막 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남편의 태도중 가장 다행스러운 것은 말을 듣는 편이라 한껏 화를 내고도 금세 반성하고 고치려고 노력하는 부분이 있어서 20년 넘게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만약 반성의 기미가 없었다면... 아웃이다.


다시 시아버지로 돌아가서...

하루는 우리 가족과 아버님과 함께 식당을 찾아가는데 앞 좌석에 앉으신 시아버지가 남편과 대화 중에 어떤 친척의 결혼식에 대해서 이야기 나눈던 장면이다.

결혼식 일정을 확인하고는 남편이 못 간다고 했다. 시아버지는 다른 사람에게 부조라도 부탁해야겠다며 이 사람 저 사람을 떠올린다. 그리고는 어떤 이름을 떠올리더니 '그 쪼다 같은 새끼'라는 말이 툭 나오더니 곧이어 '대가리가 그렇게까지 빠가라서 어디다 써먹노.'라고 하셨다.


뒷좌석에 앉은 나와 아이들은 서로 눈을 맞추며 우리가 잘못 듣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여태 시아버지로부터 한 번도 듣지 못한 분위기와 저속한 표현들.

하지만 시아버지 입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내용들이다.


문득 우리에게 그동안 상냥하게 예의 차리고 부드럽게 말하던 것은 마치 남편이 타인에게 보여준 인상처럼 느껴졌다. 시아버지의 본모습은 남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거칠고도 일방적이고 조롱이 가득한 그런 모습과 똑 닮았다.


이거구나.

이런 게 집안 내력이라는 것이구나.

저 말투와 태도가 남편 가족의 묵은 때와도 같은 것이구나.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었다.

최소한 시아버지가 나나 아이들에게는 예의를 지켜주기에 돌아가실 때까지 그 태도를 유지하기길 바란다.


질병만 가족력이 있는게 아니다.

특유의 습관과 태도의 가족력은 대물림을 통해 일파만파 퍼져나가는 힘이 있다.

때문에 좋은 습관과 태도를 물려 주기 위해서는 '뼈를 깍는 노력'을 해야 된다고 믿는다.


시아버지가 무심결에 '쪼다' '대가리' '빠가'라는 표현을 한 날...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 말이 대물림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신경을 썼다.

이전 19화 이미 모든 복을 다 받았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