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의 유언, 100년 동안 반복한 단순한 문구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 발표장에 초대를 받았다. 장소는 100년째 변함없이 카롤린스카 의대 노벨 포럼 건물이다. 초대를 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고 스웨덴에서 보기 드물게 신분증 검사를 했다. 심지어 반기문 당시 UN사무총장 강연, 노벨 렉쳐에 갈 때도 안 하던 신분증 검사를 노벨상 발표장에서는 했다. 그만큼 보안이 중요한 사안인가 보다. 그래서인지 건물 바깥에는 수상 소식을 빨리 알고 싶어 하는 무리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가니 무대 화면에는 노벨 금메달을 커다랗게 비춰놓았다. 앞자리는 주요 방송국 카메라가 선점하고 있었다. 발표장 구석구석에서 마이크를 들고 중계를 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시간이 되자 금색 배지를 단 노벨 위원회 세 사람이 줄지어 나와 무대 중앙에 앉았다. 뒤이어 따라온 중년의 남자가 단도직입적으로 수상자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스웨덴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순서로 발표를 마치자 앞서 나온 세 사람 중 하나가 수상자의 연구에 대한 소개를 담은 강의가 이어졌다. 이후에는 다양한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전년 9월: 노벨상 후보 추천자로 뽑힌 3천여 명에게 노벨상 후보 추천을 위한 비밀 안내장 발송
1월: 후보 추천 마감
2월: 접수 마감
3~5월: 노벨 위원회가 세계적 명성을 지닌 전문가를 초대해 후보자 평가 보고서 작성
9월: 노벨 위원회가 의회에 보낼 최종 후보군을 추려 추천장 작성
10월: 10월의 첫 번째 월요일 노벨 의학상 수상자를 필두로 매일 공식 수상자 발표
12월: 12월 10일 스톡홀름 시청에서 노벨상 시상식
노벨위원회는 매해 10월 첫 번째 월요일 생리의학상부터 시작해 매일 한 분야씩 발표한다. 과학분야가 먼저고 인기가 많은 문학, 평화, 경제학상의 순서다. 수상자를 발표하는 장소, 발표 내용과 진행 형식도 큰 틀에서는 같다.
노벨위원회 위원의 한 사람이 나와 단도직입적으로 위의 대본을 읽는다. 몇년째 중계 방송을 보다보니 사회자의 대본을 함께 읊을 수 있을 정도다. 사람에 따라 인사나 자기소개가 한 두줄 추가되기도 한다. 먼저 스웨덴어로 발표하고 그다음에 영어로 한다. 과학상의 경우는 이어서 독일어, 불어, 러시아어로 발표한다. 생리의학상은 2016년부터 스웨덴어와 영어로만 발표한다. 문학상은 스웨덴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순서다.
노벨의 유언을 기초로 만들어진 노벨상의 추천부터 선발, 발표 형식, 상금과 연회까지 노벨 재단은 초기의 전통을 그대로 지켜가고 있다. 물론 시대에 따라 조금씩 진화하고 있지만 핵심은 그대로다. 그리고 온 세계가 100년을 지켜보아왔다. 노벨상에 대한 신뢰의 비결도 여기에 있다. 한 세기를 이어온 노벨상의 진행 방식 자체가 이제는 시그니처가 됐다.
노벨의 이야기는 전기로도 널리 알려져 많은 이가 이미 노벨상에 대해 상당한 배경지식을 갖고 있지만, 노벨상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군더더기 없는 노벨상 발표 원고, 노벨의 유언에 충실하게 진행되는 노벨상 일정, 익숙한 금색 장식, 단순하고 고급스러운 북유럽 스타일... 최고의 브랜드마다 연상되는 특징, 오래도록 변치않는 시그니처가 있다.
고유의 필기체로 쓴 코카콜라 로고는 1886년에 만들어졌으니 130년이 되었다. "즐겨요! 코카콜라" 읽기만 해도 멜로디가 떠오르는 캐치프레이즈는 1969년에 추가됐다. 모든 것이 자동화로 전환된 지금도 루이뷔통은 여전히 옛날 방식 그대로 상당 부분을 수작업으로 제작한다. 60년대 후반 세상에 나온 맥도널드의 빅맥도 두 장의 쇠고기 패티에, 깨를 뿌린 번, 양상추, 치즈, 피클, 양파와 특제 소스까지 처음 출시된 이후 재료가 변하지 않았다.
소비재가 아닌 경우 이미지가 시그니처가 된다. 엄지척 표시를 보면 페이스북의 "좋아요"가 떠오른다. 갈색 가죽가방에 찍힌 반복된 패턴은 루이뷔통을, 알파벳이 없이도 빨강-노랑-초록-파랑을 나란히 칠해놓으면 구글이 떠오른다.
시각적 연상을 넘어 브랜드 이미지가 시그니처가 된 경우도 있다. 볼보하면 안전, 다이슨은 혁신을 상징하는 브랜드다. 애플은 창의적이고, 삼성은 내구성이 뛰어나다고 인식한다. 많은 브랜드가 브랜드 구축 자체에 엄청난 투자를 하지만 애플이나 테슬라처럼 제품 혁신 자체를 브랜딩이라고 여기는 브랜드도 있다.
스타를 기용해 브랜드를 홍보하기 보다 기능과 가치, 즉 브랜드 시그니처에 충실한 브랜드로는 나이키를 빼놓을 수 없다. 나이키는 친근한 스타나 아이돌을 모델로 쓰지 않는다. 나이키의 모델은 웃지 않는다. 대부분 최고의 운동선수로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진지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는 맛이 무섭다는 말이 있다.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어떤 브랜드의 맛에, 기능에, 이미지에 익숙해지면 머리 속에 어떤 등식이 생긴다. 예를 들어 라면=진라면, 모니터=엘지, 탄산=펩시 이런 공식이 머릿속에 입력되고 나면 무언가를 사야할 때 고르고 선택하는 결정과정 없이 바로 떠오르는 브랜드를 찾는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몇차례 반복되는 경험이 필요하다.
어떤 제품을 처음으로 살 때, 누구는 충동적으로 구매하고 누구는 꼼꼼히 비교하고 산다. 만약 제품에 만족했다면 같은 제품을 살 것이고, 불만족 했거나 마침 사려고 하는데 다른 브랜드가 눈에 띄는 광고를 하고 있다면 선택을 바꿀 수도 있다. 그리고 다음 번 구매 시에는 다시 그 과정을 반복해 첫번째 브랜드로 돌아갈 수도 아니면 재구매하거나, 새로운 제 3의 제품을 구매할 수도 있다. 반복된 경험을 통해 여러 선택지 중에 그 제품을 다시 찾게 만드는 것, 그것이 브랜드 시그니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