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관리는 확실하게. 노벨상 수상자가 노벨상 후보자를 추천한다
노벨상의 선발 일정은 한 해 전부터 시작된다. 생리의학상의 경우 매년 9월, 노벨상 후보 추천자로 뽑힌 3천여 명에게 다음 해 노벨상 후보 추천을 위한 비밀 안내장을 발송하는 것으로 일정이 시작된다.
그럼 그 3천 명이 누구일까? 누가 노벨상 후보를 추천할까?
노벨 생리의학상을 선정하는 노벨위원회의 위원인 마리아 마 수치 카롤린스카 의대 교수에게 들은 바로는 노벨 재단의 규정에 추천권자가 정해져 있다. 규정에 따라 아래의 사람들이 노벨상 후보 지명권을 갖는다.
스톡홀름에 있는 카롤린스카 의대의 노벨 의회 회원
왕립 스웨덴 한림원의 의학, 생물학부 회원(스웨덴 및 해외 회원 포함)
노벨 의학상 또는 화학상 수상자
위의 1항에 해당하지 않는 노벨 위원회 회원
스웨덴 또는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핀란드의 의과대학 정교수
노벨 위원회가 선정한 의과대학 교수(해당 학교 의과대는 6명 이상의 교수를 보유해야 하며 이는 다양한 나라의 연구가 후보로 오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
노벨 위원회가 적합하다고 판단한 과학자
스스로 추천하기 없기!
보통 다음연도 1월 말이 후보 추천 마감일이다. 이후 서류에서 미비한 부분이 있으면 추가 자료를 요청해 2월이면 모든 접수를 마감한다. 전 세계에서 추천장이 들어오면 노벨 위원회는 봄여름 내내 후보들의 연구물을 검토하고 세계적 명성을 지닌 전문가를 초대해 후보자 평가 보고서 작성한다. 그중에서 소수의 후보를 다시 추려 노벨 의회 전달한다. 10월 첫째 주 월요일 아침, 발표 직전 노벨의 유언에서 노벨 생리의학상의 선발 기구로 지명된 스웨덴의 캐롤린스카 의과대학 안에 있는 노벨 의회가 투표로 수상자를 최종 결정하고 발표한다.
즉 해당분야 최고의 권위자를 초빙해 연구 내용을 평가하고 그렇게 추린 소수의 후보를 투표에 부쳐 집단지성으로 선발하는 것이다. 한분야를 깊이 연구하다보면 자신의 연구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 만약 소수에게 결정을 맡기면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만 상이 나올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다른 연구의 의미를 잘 모를 수도 있고. 그런 의미에서 50여명의 노벨 위회 회원들이 투표를 통해 수상자를 결정하는 것은 한 분야의 수상 편중을 막기위한 장치의 역할도 할 것이다.
노벨재단 입장에서 후보 추천자를 관리하고, 세계적인 전문가에게 평가보고서 작성을 맡기는 것은 품질관리다. 세계 최고의 상에 걸맞은 결과물을 내기 위해 최고의 인재를 고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노벨상은 기존의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연구에 가점을 준다. 해당 연구에 깊이있는 학식을 가진 이어야 그 연구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다. 그정도 되는 학자라면 일을 맡기는 것이 쉽지 않을텐데 다행히 그간 쌓인 노벨상의 명성과 수상자 네트워크 덕분에 세계 최고의 전문가 역시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일을 맡는다.
노벨 생리의학상을 중심으로 살펴보았지만 다른 분야의 상도 상의 선발에 까다롭기는 오십보백보 차이다. 수상자의 면면을 통계로 정리해보면 특정 나라나 특정 대학 출신이 유독 많은 경우가 있다. 추천인 중에 역대 노벨상 수상자가 포함되어 있다 보니 아무래도 자신이 잘 아는 동료의 연구를 추천하게 되고 또 그럴 경우 연구의 내용과 의의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게 되어 더욱 설득력을 갖게 되어 그런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접수된 후보의 이름과 선정 과정 등 노벨상에 대한 내용은 향후 50년간 비밀에 부치는 것이 규칙이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추천했고 또 발표 당일 아침에 진행하는 선정 투표에서 누구에게 표를 던졌는지도 철저히 비밀로 한다.
매년 평균 300여 건 이상의 연구가 노벨상 후보로 접수된다고 한다. 노벨상 후보로 보내올 정도면 각각의 연구가 해당 분야에서는 가장 앞선 연구일 것이다. 그럼 수백 가지 연구 중에 노벨상으로 선정되는 연구는 어떤 연구일까?
노벨 생리의학상은 생명과학이나 약학 분야에서 1)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꿀만하거나 2) 인류에 지대한 공헌을 할만한 발견을 한 사람에게 주어진다. 노벨재단은 노벨상은 공로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과학분야의 노벨상의 경우 평생을 과학에 헌신했다거나 과학계를 이끌었다거나 하는 이유로 노벨상을 받을 수는 없다. 반드시 해당 연구자의 업적으로 남는 연구 실적이 있어야 한다. 또한 그 연구가 더 이상의 반론이 없이 받아들여질 만한 시간이 경과되어야 한다.
2019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세명의 수상자는 리튬이온 충전 배터리를 발명한 공로로 상을 받았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휴대전화, 노트북, 전기차 등 우리 생활 전반에 사용하는 충전지다. 70년대 원유 위기를 계기로 화석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개발을 시작했다. 굿이너프가 초기 리튬 아연 배터리를 개발한 이후, 아키라가 상업용도의 단계로 기술을 끌어올려 1991년 시제품을 내놨다. 재생에너지 개발의 포문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처음 개발 이후 수상하기까지 30여 년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이제는 더 이상 리튬이온 배터리가 최신 기술이 아니다. 리튬 배터리 역시 희소자원을 사용하므로 이제 더욱 친환경적인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다. 기술의 발전 속도를 볼 때 리튬이온 배터리의 수명은 10여 년 정도 남았다고 한다. 만약 수상이 더 이상 늦어졌다면 상의 의미가 희미해졌을 것으로 올해가 상을 받을 수 있는 기술 수명의 마지막 단계였다고 볼 수 있다. 굿이너프에게도 막바지 기회였을 것이다. 굿이너프는 올해 97세로 역대 노벨상 최고령 수상자다.
제품의 브랜드가 아무리 멋지고 눈을 확 끌더라도 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이 변변치 않으면 브랜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최상을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를 영입하고, 끊임없이 유지보수 하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루이비통의 경우 ‘고문실’이라 불리는 실험실에서 돌멩이로 채운 루이뷔통 가방을 4일 동안 내동댕이 친다. 일부러 자외선을 쬐어 가죽의 색이 변하는지 실험하고 지퍼를 5,000번 이상 여닫으며 고장이 없는지를 확인한다. 화면이 접히는 삼성의 폴더블 폰은 하루 100회, 5년간 접었다 펴는 동작으로 가정해 20만 회에 이르는 내구성 테스트를 거쳤다고 한다.
뛰어난 제품 뒤에는 탁월한 연구가 있다. 명품이 명품인 이유는 장인정신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장인이야 말로 최고의 전문가 아닌가? 소비자는 제품의 질을 보고 사지 이름이 예쁘다고 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