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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샘 Oct 17. 2023

지나가고 지나가면 결국 사랑

다정이 시샘에게 

시샘아, 얼마 전 네가 우리집에 놀러왔을 때 네가 내 아들 든이에게 선물해 준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를 어젯밤에도 든이와 읽었어. 든이랑 꼭 닮은 소년과 든이의 애착인형과 꼭 닮은 곰인형이 나오는 그림책. 든이는 그 책을 ‘사랑해책'이라고 불러. 


이제 세 돌이 된 든이는 “엄마, 사랑해책 읽어줘"라고 이야기하며 책을 들고 와서는 내 무릎 위에 엉덩이를 디밀고 앉아. 요즘은 이렇게 이 아이가 내 무릎 위에 앉을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하는 생각이 부쩍 많이 들어. 그래서인지 내 무릎 위에 든이가 앉아있는 순간이 더욱 귀중하게 느껴지네. 


살면서 이렇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이야기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든이를 보고있으면 꽃가루 알러지가 있는 사람이 꽃밭에서 시도 때도 없이 재채기를 하는 것처럼 “사랑해"라는 말이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와. 이 아이를 향한 사랑이 내 안에 차고 넘쳐서 자꾸 말로 흘러 나오나봐. 그래서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를 읽으면 든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계속 할 수 있어서 뭔가 충족되는 기분이야. 세어봤는데 “사랑해"를 17번 할 수 있더라고. 


얼마 전에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이든이랑 이런 대화를 나눴어. 


“이든아, 엄마가 이든이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응”

“엄마가 이든이 왜 사랑하는 거 같아?”

“사랑하니까 사랑하지!”


사랑하니까 사랑한다는 그 말이 이든이 입에서 나올 때, 내 아이가 내가 주는 사랑을 온전히 사랑으로 느끼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안도감이 들더라. 그러니까 나는 요즘 이든이 덕분에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시간을 깊이 경험하고 있어. 다른 조건이 필요없도록 순도 높게 사랑하는 시간.  



사랑이 두려움을 진짜로 이기더라 


내가 이든이를 임신하고 만삭일 때만해도 내가 이렇게 깊은 사랑에 빠질지는 상상도 못했어. 난 아무래도 모성이 없다며, 이토록 차가운 엄마가 돼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던 시절도 있었지. 지금 그 시간을 이야기하자니 민망할 지경이야. 하지만 그때는 정말 그랬어.

 

만삭으로 거대하게 부푼 배를 커다란 짐 가방을 억지로 매고 있는 것처럼 쩔쩔매며 이고 지고 다니면서, 이 임신의 고통이 언제 끝날지만 기다렸던 때가 있었어. 언젠가 본 드라마에서 한 임산부가 분만을 앞두고 자신은 임신기간 내내 매일이 크리스마스 이브였다고 말하더라. 난 그 말에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오고 말았어. 내게 임신은 고통으로 가득했으니까. 


매일의 견뎌야 하는 고통과 

또 어떤 고통이 날 덮칠지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해서, 

내 뱃속에 있는 아이를 만나는 것에 대한 기대는 

많이 하지 못했지. 


그건 지금도 이든이에게 미안한 부분이야. 


하지만 다시 돌아가도 어쩔 도리가 없을 것 같아. 입덧으로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변기통을 붙잡고 피가 날 때까지 토하는 모닝루틴과 울렁거리는 뱃멀미 상태로 깜깜한 방에서 누워만 있던 4개월이, 완전히 누우면 구토감이 올라와 임신 기간 중 대부분을 앉아서 자야했던 허리 아픈 밤들이, 씻을 때마다 통제할 수 없이 변해가는 몸을 보며 당혹감을 느꼈던 때를 비롯해 나는 자주 무서웠던 것 같아. 26시간의 진통과 오랜 진통에 지쳐 자꾸 기절하는 나를 깨우는 간호사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도대체 이 고통이 끝이 있는 걸까 싶어 무서웠고. 결국 아이를 낳고 나서는 내 얼굴과 눈알은 실핏줄이 다 터져 거뭇한 반점이 가득했어. 임신부터 아이를 만나는 과정이 온통 고통으로 얼룩졌는데, 사람들은 임신 했을 때가 편한 거라며 겁을 주더라. 그래서 육아에도 겁 먹은 채 긴장을 많이 했어. 육아 자체도 무서웠지만, 아이를 낳고는 내가 나답게 살지 못할까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이어가지 못할까봐 하는 온갖 걱정도 나를 짓눌렀지.  


내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작고 나약한 아이를 만나고 나니, 이 생명을 책임져야한다는 그 막중한 책임감에 잠 못 이뤘어. 산후조리원에서는 잘 쉬면서 먹으며 몸을 회복해야하는데, 나는 내가 아이를 낳았는데 준비된 게 하나도 없다는 현실에 잠도 잘 못 자고 새벽까지 육아유튜브를 보며 조마조마했었어. 그 어떤 쪽지 시험도 이렇게 준비 안 하고 친 적은 없었는데, 임신 기간을 힘들게 보낸 탓에 육아에 대한 준비를 잘 하지 못했거든. 벼락치기 하는 심정으로 뒤늦게 기저귀 가는 법, 모유수유 하는 법, 아기 재우는 법을 검색하며 밤을 지새웠지. 무려 한 인간을 키워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 앞에 난 뭐 하나 할 줄 아는 게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든이를 키운 지 3년이 지난 지금은, 

어느새 그 모든 고통과 두려움이 있었던 자리에 

사랑이 가득하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너는 좋아하는 문장이 있어? 내게 가장 좋아하는 문장을 꼽으라 한다면, 난 “사랑이 두려움을 이긴다"라는 문장을 뽑아. 


살아오면서 두려운 순간이 많았어. 겁쟁이 자아를 남에게 안 들키려고 부단히 노력해오며 살았지만 난 사실 정말 겁이 많거든. 그 겁을 깨고 행동해야할 때마다 두려움이 날 조여올 때면, 그 두려움을 견디면서라도 사랑하려는 대상을 생각했어. 그게 사람일 때도 있었고, 경험 자체일 때도 있었고, 어떤 성장일 때도 있었고, 장소일 때도 있었고. 그렇게 사랑을 곱씹으면 두려움이 조금은 희미해지더라고. 


이전에는 그 문장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붙들었다면, 든이는 그 문장이 진실이라는 증거가 되어주었어. 


든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내 맘 속을 지배했던 수많은 두려움이 

든이를 향한 사랑 앞에 

확연히 힘을 잃었으니까. 


물론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야. 계속에서 새로운 두려움의 이유들은 생기는데, 이제는 이 두려움들을 결국 사랑으로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는 거 같아.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조금 더 파고들어가보니 딱히 별 건 없네. 다만 지나간 시간이 있었어. 이든이와 함께 지나보낸 3년의 시간 속에서 서서히 두려움을 이기는 사랑이 차올랐어. 



이 또한 지나간다 


지난 3년 동안 이든이를 키우며 내가 많이 곱씹었던 또 다른 문장 중 하나가 “이 또한 지나간다"야.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겪다보니 많이도 들어 본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이 내 세포 하나하나에 밀도 높게 스며들더라.


네가 내게 선물해줬던 그림책 ≪사라지는 것들≫을 봤을 때도 ‘이 또한 지나간다'는 문장에 계속 떠올랐었고, 그 시기에 이 문장을 자주 생각할 때라 이 책이 더욱 좋았던 것 같아. 


≪사라지는 것들≫은 투명하게 비치는 트레이싱지와 책장을 넘기는 책의 물성을 활용해 삶 속에 왔다가도 가는 것들에 대해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잖아. 스르르 왔다가도 달아나는 잠, 흔적 없이 사라지는 상처, 허공으로 흩어지는 음악, 우울한 생각들, 눈물, 찻잔의 김, 궂은 날씨, 두려움, 낙엽, 아가의 젖니 등 우리 삶의 많은 것들은 지나가고, 변하고, 사라진다는 사실이 매력적인 그림과 함께 나열되어 있어. 그리고 작가는 그렇게 사라지는 것들이 우리 생에 가득하지만, 영원한 것들도 분명히 있다며, 그것은 사랑이라는 말을 하고 있지. 


사라지는 것들 속에서 결국 영원한 것에 주목하는 작가의 시선도,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도 동의가 됐어. 마지막 장면에 엄마가 아이를 꼭 안고 있는 장면에서, 나는 그 장면이 한편으로는 뻔한 장면 같기도 했지만, 이보다 더 커다란 사랑의 감정은 나도 겪어본 적이 없기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 아이를 향한 엄마의 사랑은 영원한 것이 맞지 싶어서.  


하지만 난 이 책을 읽으며 

영원한 것에 대한 생각보다도, 

결국 지나가기 때문에 

아름다움이 깊어지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  


죽을 것 같이 고통스럽고 지치는 일도 결국엔 지나갈 일이기 때문에 견딜 힘이 나잖아. 꿈인가 생시인가 모를 정도의 행복도 결국엔 지나갈 일이기 때문에 지나친 도취와 자만 없이 겸손히 겪을 수 있고. 지루할 법한 평범한 오늘도 지나갈 것이기 때문에 좀 더 특별하고 감사히 보내지. 이 또한 지나간다는 사실이 이를 기억하는 자들에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해. 매 순간 이러긴 쉽지 않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가 주는 선물을 내 삶 속에서 조금 더 많이 누리는 게 된 건 든이 덕분인 것 같아. 


육아를 해보니 특히 이든이가 어린이집을 가기 전이었던 26개월 정도는 내 모든 육체와 정신의 에너지를 한 톨 남김없이 쫙 쫙 모아 완전히 갈아서 아이의 거름이 되는 기분이었어. '희생'이라는 단어 아니면 설명이 안되는 일상인데, 그게 참 어색했지. 아이를 낳기 전에는 흔하디흔한 '어머니의 희생' 같은 서사를 좋아하지 않았거든. 내가 엄마가 된다면 희생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어. 또 엄마의 역할과 자신의 삶까지 놓치지 않고 잘 살아낸 나의 엄마를 보며 엄마가 날 위해 희생했다고 느낀 적이 없기도 했고. 


난 우리 엄마의 그런 점이 좋았어. 내가 엄마에게 미안해하지 않을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아. 그런데 내가 아이를 키우며 깨달은 건 엄마가 날 위해 희생한 시간이 분명히 있었는데, 티를 안 냈다는 거였어. 모든 엄마는 짧든 길든 철저한 희생을 경험하더라. 희생의 시간을 보내며 때때로 무너질 듯 지치는 때가 오면 '진짜 못하겠다.'라는 단어가 턱 끝까지 차올라. 


그때 '이 또한 지나간다'라는 문장을 삼키면 

약기운이 돌 듯 

좀 더 버틸 힘이 났어. 


든이가 돌도 되지 않았던 시절에, 안으라고 난리 치는 8kg 짜리 사람을 3시간 째 온몸 부들거리며 이 악물고 안고 있을 때 했던 상상이 있었어. 상상의 배경은 무려 이든이의 결혼식 날이야. 


부모는 배를 만드는 조선공과 비슷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튼튼하고 성능이 좋은 배를 만들듯 자식의 몸과 마음을 건강히 세우고, 필요한 능력의 성장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그렇게 배가 완성되면, 배의 존재 목적은 바다로 나가는 것처럼 품 안에 있던 자식을 넓은 바다로 떠나보내야 한다고. 내 아이가 결혼을 하게 될지는 모르는 것이지만, 부모를 떠나는 것을 상징적으로 느낄 수 있는 일이 결혼이기에 이든이의 결혼식 날을 상상해 본 거야. 


아무리 지금부터 준비를 미리미리 했더라도 꼭 붙어있던 존재를 분리하는 일이 슬플 거 같아. 그렇게 벌써부터 감상에 젖어 홀로 시큰해하며 결혼식 날의 이든이 뒷모습을 그려봐. 그러다 한 수 더 떠서 갑자기 천사가 내 앞에 나타나 아들과 함께하는 과거의 하루로 딱 한 번 돌아갈 수 있는 찬스를 주었다는 상상까지 했어. 당시에 잠도 못자고 밥도 잘 못 먹고 몸은 아프니 정신을 놓은 건지도 몰라. 그래도 어쨌든 상상의 나래를 꿋꿋이 펼치며 돌아갈 과거의 하루로 아이를 안고 이 악물고 버티던, 지친 나머지 아기띠로 아들을 안은 채 아들의 결혼식을 상상하고 있는 그 날의 그 순간을 선택해. 엄마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작은 아가였던, 자신의 눈동자로 다른 무엇도 아닌 엄마를 쳐다보는 시간이 가장 길었던, 내 품에 포옥 안겨 새근새근 잠든 우리 아들과의 평범한 하루인 오늘로 돌아오는 거지. 


그러면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을 참고 아이를 안고 있는 시간이 괜히 살짝 더 애틋하고 소중해지더라(물론 너무 힘들 땐 그마저도 안 먹혔지만 말야). 그렇게 내가 살기 위해 ‘지나간다’를 극약처방하곤 했어. 지금도 종종 써먹는 방법이야. 


든이와 함께 나날들에는 미칠 듯 지쳐 흘러나오는 눈물, 날아갈 듯 행복해져 짓는 미소, 매일이 반복되는 듯한 지겨운 한숨, 또 어떤 새로운 성장을 목격할지 몰라 기대되는 설렘이 골고루 섞여있는데, 결국 이 또한 지나간다는 사실과 그 사실을 기반으로 한 약간의 상상이 나의 복잡히 얼룩진 하루를 맑게 만들어줬어. 실제로 그렇게 처절하게 힘들던 시절은 지나갔고, 어린이집에 가면서 나도 살만해졌지. 



꽃 같은 우리의 오늘


내가 꽃을 참 좋아하잖아. 예전에 네가 꽃이 시드는 것을 보는 게 슬프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나 역시 그 슬픔에 공감하면서도,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면 결국 시드는 꽃이기에 피어있는 그 순간의 아름다움이 더욱 소중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졌던 것 같아. 내가 꽃을 좋아하는 이유에는 ‘지나간다'는 진실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라는 것도 클거야. 


최근에 몸이 안 좋아서 소파에 누워있는데 든이가 내 근처에서 사부작 사부작 거리면서 뭘 만들더니 블럭으로 꽃을 만들어 줬어. 내가 꽃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든이에게 깊게 입력이 됐는지 가끔 이렇게 날 위해 꽃의 모양을 한 무언가를 주곤 해. 이게 왠 꽃이냐는 내 질문에 든이가 “너무 사랑하니까!”라고 답하더라. 이제는 내가 든이에게 주는 사랑 외에도 든이가 나에게 주는 사랑을 종종 실감하게 돼. 든이의 귀여운 사랑고백은 든이의 입에서 단어와 문장이 되어 내뱉는 순간 금새 지나가지만, 난 그 사랑의 순간을 여러 번 곱씹으면서 음미하는 것 같아. 요즘은 그런 순간이 내 평범한 일상을 반짝거리게 만들더라. 


어쩌면 ≪사라지는 것들≫에 나오는 각종 지나가고 사라지는 것들과 영원한 것이 서로 반대된 특성이 아니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지


나가고 사라지는 하루하루가 켜켜이 쌓아가는 게 

영원한 가치가 있는 무언가를 완성하는 

과정같단 말이지.


그러니까 오늘을 더 소중히 살아갈 힘이 나. 오늘은 주말이라 든이랑 하루 종일 뭘 해야하나가 고민이었어. 이른 아침인 지금, 든이가 남편과 놀고 있는 소리가 들리네. 쟤는 어린이집 가는 날은 늦잠을 자는데, 주말에는 왜 이렇게 일찍일어나는지 몰라. 오늘 하루도 길겠구나 싶어 막막했다가 이 편지를 쓰면서 다시 마음을 고쳐먹게 된다.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지나갈 이 순간을 만끽하며 지나 보내야겠어. 시샘의 지나갈 오늘도, 그 꽃 같이 아름다운 순간들을 내가 응원해. 좋은 주말!  




편지 속, 어른을 위한 그림책
≪사라지는 것들≫

베아트리체 알레마냐(글/그림), 김윤진(옮긴이), 비룡소(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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