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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인베이글 Nov 03. 2019

맞벌이부부는 이렇게 힘들어야만 하는 걸까?

맞벌이 부부의 삶은 어느 한쪽이 기브 업! 하고 두손을 들며 이렇게는 안 될 것 같아 하고 선언해야 끝나는 제로 섬 게임이 아닐까? 싶은 요즘이다. 주 52시간, 야근 금지 문화가 확산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근무 환경 퀄리티는 눈에 띄게 커지는 듯 하다. 오후 6시면 모든 컴퓨터가 꺼지는 까닭에 일거리를 집에 들고 가야한다는 볼멘 소리도 들리지만 스타트업에 다니는 나는 잔업을 집에 들고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 부러울 때가 있다. 회의는 늦게까지 계속되고 대표가 보고서나 제안서 작업으로 눈이 벌개지면서까지 일을 하고 있는데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하고 말할 자신이 내겐 없다. 자유분방한 X세대 어쩌고 하지만 그것도 젊어서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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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도 많고 참석해야 할 행사도 많은데 이사까지 했다. 작은 협소주택을 짓는 일이라 아내는 회사에 다니면서 설계를 맡아주신 동네 건축 소장님과 크고 작은 문제들을 직접 해결해야 했다. 지반을 팠더니 커다란 바위가 나와 어쩔 수 없이 정화조를 앞쪽으로 옮겨야 했고 막상 집을 허물고 나니 옆집이 우리 땅을 1.5평 가량 물고 있어 안 그래도 작은 집이 더 작아졌다. 이런저런 이유로 오늘 해야 할 일은 내일로, 모레로 연기되기 일쑤였고 급기야 우리는 미처 마무리 공사가 덜 돼 겨울 옷가지며 피아노는 보관 이사에 맡겨두고 이사를 와야 했다. 그러는 동안 내가 한 일은 입으로 불평을 한 것이 다였다. 이게 뭐냐. 왜 일정을 미리 못 챙겼느냐. 군대에 있을 때 옆 수색대와 농구가 붙으면 저  돌계단에 앉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라, 이그 저 바보 같은 놈 하며 불평하는 고참을 제일 싫어했는데 내 꼴이 딱 그랬다.


게다가 나는 퇴사를 앞두고 있었다. 보고서 만들고 회의 하고 PPT며 엑셀 하느라 하루를 허비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 일에 선택과 집중을 하고 싶었다. 문제에 당면하면 남자는 동굴로 칩거한다고 했던가. 혼자 골몰하는 시간이 많았고 아내 이야기도 건성건성 들었다. 회사에서 토크 프로그램을 하는 날이면 셀프 홍보라도 해야지 싶어 인스타를 붙잡고 있었다. 공예 작가를 발굴하고 공예품이 있는 일상을 소개하는 것도 종국에 하고 싶은 일이어서 도자기 기초 수업 과정도 아내와 상의 없이 신청했다. 기법을 알아야 더 나은 질문을 할 수 있고 글도 더 잘 쓸 수 있을 테니까.


문제는 그 모든 일을 혼자, 일말의 상의도 없이 결정했다는 거다. 수업은 매주 금요일 4주간 진행되는데 지난 목요일 밤, 아내가 물었다. "내일은 몇시에 와? 내일도 늦어?" "응, 나 도자수업 듣는 게 있어서."


아내는 폭발했다. 그동안 자기가 얼마나 참았는지, 퇴사까지 한다기에 그래 힘들겠구나, 고민이 많겠구나, 배려하려 애썼는데 자기는 안중에도 없냐며, 어떻게 상의 한 마디 없이 일정을 혼자 결정하냐며, 퇴근 후의 일정은 당신만의 일정이 아니고 애 둘을 키우며 함께 시간을 맞추고 일을 분담해야 하는 우리 둘 모두의 일정이라며 화를 냈다. 잠들기 직전에는 "나에 대한 존중이 이렇게 없는 사람인 줄 몰랐어. 내 마음은 무섭도록 식었어. 화를 풀려고 어떤 행동도 하지 마. 끝이야." 하는 문자를 보내왔다.   


아내가 그렇게 화를 낸 건 그만큼 혼자 삭힌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근간에는 1학년인 둘째 아이 학부모 상담이 있었다. 둘째는 까불이. 한글도 못 떼고 초등학교에 들어갔5빼기 3은? 하고 문제를 내면 손가락을 꼼지락 대다 5!하고 외친다. 아니나 다를까. 유독 엄격한 담임 선생님은 아내에게 "자식을 너무 방치한 것 아니세요? 뭘 할려고 안 해요. 수학 시간에 짝꿍거 보고 답을 베껴 쓰고 혼자 풀라고 하면 아예 문제를 안 읽고 멀뚱히 앉아 있어요. 다 같이 앞으로 나와 발표를 해야 하는 그룹 활동 시간에도 혼자 자리에 남아있고요. 이렇게 가다간 계속 자존감이 낮은 아이로 클 겁니다"


자기 중심이 확실한 아내는 그 날 상처를 많이 받은 듯 했다. 이 아이를 어쩌나 싶었을 거다. 그날 당장 숙제를 봐 주고 옆에 딱 달라 붙어 셈을 가르쳤다. 늦게 귀가한 나는 눈치도 없이 "학교에서 그런 푸대접을 받고도 학교 안 간단 소리 한 번 안하고 우리 막둥이 대단하다. 최고야" 하고 말했다. 아내는 웃지도 않고 눈길도 안 줬다.  


세탁기도 설치가 안 돼 선배네 집으로 빨래를 들고다니는 아내에게 장문의 사과 문자를 카톡으로 보내고 화해를 시도했다. 사죄에 가까운 진실한 사과에 그녀는 겨우 마음을 열었다. 아침 산책을 하며 그간 나누지 못한 고민, 현황도 공유했다. 주말이면 아침 산책을 하고, 인왕산을 오르고, 내려오는 길에 부암동 클럽 에스프레소에 들러 커피와 크로와상을 먹는 것이 우리의 루틴이었는데 그것이 끊긴 지도 몇 달 되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요 몇달간 우리는 정신 없이 바빴다. 양쪽이 다 바쁘니 아내는 아내대로 나는 나대로 지쳤다. 대화는 건조하게만 흘렀다. 그저 피곤하고 그저 짜증나고 그저 쉬고 싶을 뿐. 힘든 문제는 옆으로 제쳐두고 싶었다. 소소한 이야기가 없는 부부는 금세 소원해 졌다. 오늘 저녁은 일찍 올 수 있는지? 오늘 야근해야 하는데 둘째를 7시까지라도 공부방에서 픽업해 줄 수 있을지 일정을 묻는 대화만 반복됐다. 겨우 마음을 연 아내는 "가족을 위해서 내가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고 핸드폰만 하는 당신에게 실망했다. 그러는 사이 애들은 하나도 못 챙기고  모든 게 엉망으로 되어가는 것 같아 괴로웠다. 진짜 중요한 게 뭔지 잘 생각해 봐"라고 했다.


능숙하게 일정을 조율하며 해피한 모습으로, 아이들까지 모두가 행복한 완전체로 살아가는 가족에겐 어떤 비결이 있는걸까? 맞벌이를 안 해도 될 만큼 어느 한 쪽이 돈을 많이 버는 걸까? 둘 다 대기업에 다니거나 공무원이라서 야근도 없고 자율 근무를 할 수 있는 건가? 유치한 생각이 든다. 맞벌이부부는 어느 한쪽이 기브 업! 하고 포기를 해야 끝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이래저래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인생을 살아내는 건 힘든 일인데 오랜만에 함께 산책을 하고, 따뜻한 손을 잡고, 바람에 흔들리는 초록 나뭇잎과 하늘을 보니 푹 꺼졌던 일상의 한쪽이 조금은 복원된 듯 다. 산책을 못해, 그렇게 숨구멍을 열지 못해 부부 관계가 망가졌구나 하는 생각도...결국 멘탈이 약하고, 지속적으로 바쁜 일상을 감당하지 못한 내가 회사를 그만두는 쪽으로 우리의 갈등은 일단락됐지만 거기서 다시 새로운 갈등이 시작되겠지. 부부생활이 길어질수록 싸움도 잦아지고 이런저런 장애물을 계속 건넌다. 어떨 때는 너무 쎈 놈이 와 어떻게 해야할 지 당최 답이 안 나올 때도 있다. 요즘엔 오십 년, 육십 년 함께 하며 끝내 서로를 포기하거나 배신하지 않은 이들을 보면 절로 존경심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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