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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msk Mar 07. 2021

폼나는 일은 없다. 하루하루를 버티는 삶의 현장이다.

적응기 "직장생활은 사회생활이 아니다."

8번 출구로 나와 이제는 시원해진 바람을 느끼며 커피숍에 들러 커피 한 잔을 주문한다. 기다리는 동안 뉴스를 검색하고 오늘의 할 일을 살핀다. 사무실에 들어왔다. 이번 주는 특히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밝은 인사도 잠깐. 메일을 확인하고 어제 마지막 회의에서 나온 얘기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한다. 그렇다면 자료는 수정해야겠군. 급히 관련법령을 찾아 다시 논리를 만들어 본다. 좋아. 이 정도면 일본에서도 알아듣겠네. 점심을 먹고 공원에서 제법 따뜻해진 햇살을 즐긴 후 오후 회의를 시작한다. 다들 열정이 넘쳐 다투는 것 같지만 결국 다 잘되자고 하는 행동들이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이번 주까지 이 모든 의견과 법령들을 살펴 본사를 설득할 보고서를 완성해야 한다. 논리가 확실해지니 제법 진도가 나갔다. 이런, 벌써 시간이. 얼른 나가자. 방에 들어와 스트레스도 풀 겸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켠다.


"어디서 많이 본모습인데?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이렇게 사는 줄 알겠지. 어휴. 생각만 해도."


"부럽다."


매일 이렇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면 아마도 엄청난 부러움을 사는 직종일 것이다. 월급 루팡이라는 표현이 딱이다. 직장인이라면 모두 공감하겠지만 이런 직장생활은 없다. 업종, 업태마다 다르지만 일 년에 며칠 정도만 이럴 수 있다. 모두가 막연히 꿈꾸는 그런 생활은 없다. 대학을 졸업했다고 모두가 셔츠 차림으로 깨끗한 구두를 신고 먼지 한 톨 없는 사무실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진짜 업무는 어렵기도 하고 정신없고 반복적이고 더럽고 굴욕적이고 육체적으로도 힘들다.


앞서 말했지만 회사 일이라는 것은 회사가 돌아가게끔만 하는 살림이 거의 모든 부분을 차지한다. 이 역시 기업규모에 따라 조금씩의 차이는 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애초에 PPT를 열어 놓고 커피를 마시며 멋진 논리를 생각하는 일 자체는 일 년에 며칠 되지 않는다. 대기업부터 중소기업이나 영세기업, 스타트업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다.

드라마 '미생'에서 보여준 상사 신입사원들의 창고 정리나 배송에 문제가 생긴 화물을 조사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이다. PPT를 꾸미고 멋진 논거를 설계해 발표하는 일은 일 년에 많아야 열 번 남짓. 나머지는 발표한 내용을 실현하기 위한 육체적 정신적 고군분투뿐이다.


제일 흔하고 18년째 몸담고 있는 제조업을 기준으로 살펴봤다.


전략/기획 부문

자료 만드는 기계라 불릴 정도로 많은 Data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보고서를 만들어야 한다. 계열사든 사업부든 돈이 되는 Item이 올라왔는지 검증해야 하고 검증이 완료돼도 Head를 설득하기 위한 보고서를 만들어야 한다.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심하게는 주간, 계간, 월간, 분기, 반기, 연에 걸쳐 Update 해 다시 만들어야 하고 예상치 못한 사유로 다시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글로벌 기업이라면 그 자료들을 필요로 하는 언어로 만들어야 한다. 국가마다 다른 모든 관련법에 따라 추가로 만들어야 하는 자료도 추가된다. 사이사이 쉴 수 있는 기간이 있을 수 있으나 돈을 써가며 돈을 벌기 위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은 쉴 수 없다.

폼 잡을 일은 거의 없다. 그저 매일 계속되는 압박감 속에서 살아야 한다.


지원부문

전략, 기획 부문과 돈을 쓰는 부분에서 비슷하지만 자료나 보고서로 Cover 할 수 있는 부분보다 그야말로 살림을 실행해야 하는 부문으로 사실상 셔츠 입은 채 막노동을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사무직이면서 육체노동이 상당히 많은 부문이다. 재무, 회계, 인사, 총무, 구매, 물류, 법무, 홍보, RC, 환경안전, Utility 등으로 나뉘고 컴퓨터와 종이로 하는 막노동으로 점철되어있다. 역시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심하게는 주간, 월간, 분기, 반기, 연에 걸쳐 Update 해 다시 만들어야 하고 예상치 못한 사유로 다시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더구나 손으로 끌어야 할 것도 많고 들어야 할 것, 고칠 것, 들고 나를 것 투성이다. 돌아다녀야 할 일도 무척 많다. (자세한 부서별 업무에 대해서는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하기 때문에 기회가 된다면 얘기해보자.)


사업부, 영업, 개발, CS

영업 외에도 필요하다면 양복을 입기도 한다. 직접적으로 돈을 버는 부문이다. 직접적으로 고객을 상대한다. 감수해야 하는 정도로 받아들이는 정도가 아닌 그러지 않으면 안 되는 정도의 감정노동이 행해지고 있는 부문이다. 사업부는 보통 사업관리나 기획, 영업지원 등으로 부를 수 있다. 직접적인 행위보다 현장과 영업부문을 control 하거나 연결, 중재하는 일을 한다. 역시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심하게는 주간, 계간, 월간, 분기, 반기, 연에 걸쳐 Update 해 다시 만들어야 하고 예상치 못한 사유로 다시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더구나 이들은 고객도 직접 상대해야 한다. 어려운 얘기지만 내부고객을 상대해야 한다. 사실상 기업 하나를 운영하는 부문이기에 위에 나온 전략, 기획, 지원부문에서 하는 일과 비슷한 일들을 한다. 힘들다.


공정, 설비, QC, QA, 제조, 생산기획/관리, 엔지니어링, 제조지원, Utility 등 

학력을 떠나 모두가 24시간을 바쳐야 한다. 퇴근했다고 일과가 끝나고 아침까지 평화로울 수 없다. 항상 대비해야 하고 각오를 해야 한다. 대비와 각오가 없을수록 힘든 일의 연속이다. 역시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심하게는 주간, 계간, 월간, 분기, 반기, 연에 걸쳐 Update 해 다시 만들어야 하고 예상치 못한 사유로 다시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연구, R&D

환상은 사라진 지 오래다. 전략, 기획부문과 상당히 비슷하다. 결과를 만드는 기계라 불릴 정도로 많은 Data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보고서를 만들어야 한다. 연구실 단위든 연구소 단위든 돈이 되는 Item을 개발하기 위해 애써야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연구개발 후에도 검증해야 하고 검증이 완료돼도 Head를 설득하기 위한 보고서를 만들어야 한다.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심하게는 주간, 계간, 월간, 분기, 반기, 연에 걸쳐 Update 해 다시 만들어야 하고 예상치 못한 사유로 다시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더구나 글로벌 기업이라면 연구부문이라도 상관없다. 그 자료들을 필요로 하는 언어로 만들어야 한다. 국가마다 다른 모든 관련법(특허)에 따라 추가로 만들어야 하는 자료도 추가된다. 사이사이 쉴 수 있는 기간이 있을 수 있으나 돈을 써가며 돈을 벌기 위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은 쉴 수 없다. 역시 폼 잡을 일은 거의 없다. 그저 매일 계속되는 압박감 속에서 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이들이 해야 하는 일이 또 있다. 임원들 뒤치다꺼리다. 대기업 또는 스타트업일 경우 이런 경우가 덜할 수는 있다. 하지만 덜할 뿐이지 어딜 가나 이런 경우는 반드시 있다. 임원들 이야기는 직장생활백서 종반에서 상세하게 소개할 예정이다.


이 안에서 10년을 넘는 기간 동안 30대, 40대를 바쳤거나 바치고 있고 바쳐야 하는 모두에게 이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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