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msk Feb 08. 2021

피동적인 삶과 능동적인 삶.

결국 모두 성공을 향한다.

단적으로 말해 피동적인 삶과 능동적인 삶의 차이는 어떤 형태로든 분명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누가 더 못났고 잘났고를 따질 수는 없다. 선택의 차이일 뿐이다. 살아지는 대로 사는 삶과 개척하는 삶은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다. 대개는 선택의 기로에서 피동적, 능동적 태도가 섞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삶 모두 쉽지 않다. 결국은 각자의 성공을 향하기 때문이다.


"살아지는 대로 사는 것도 어렵다고?", "그래. 어려워. 평범하게 사는 것 마저도 어렵다고 하잖아."

인류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어떤 선택도 쉽지는 않다. 살아지는 대로 산다는 것도 결국 최소한 평균적인 인간으로서 사회 한가운데 버티는 것을 말하고 있다. 평범해지는 것도 꿈이라 느낄 정도로 팍팍한 환경 속에 있는 사람이 늘고 있듯이. 개척하는 삶은 말 그대로 어렵다.

한국인은 태어나면서 가족공동체를 경험한다. 이후 조금 빠르면 영아기부터지만 평균적으로 유아기에 이르러 1차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국가적 의무교육 방침에 따라 중학교까지 2차적인 사회생활을 경험한다. 이후 반강제적으로 부모의 교육 방침에 따라 대학(군대), 직장, 결혼이라는 표면적 사회생활을 강요받는다. 변하고는 있지만 아직 대다수가 그렇다. 아직까지도 한국에서의 주류적 삶의 흐름으로 가장 대표적인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만만치 않은 환경에서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삶은 가장 보편적인 살아지는 대로 사는 삶이라 볼 수 있다. 그 때부터 우리들의 살아지는 대로 사는 삶은 시작이 된다. 주변의 관심과 우려의 반복이 지나친 애정으로 변질되어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그것으로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은 책임이 아닌 누군가 내어준 숙제가 되어 의무가 되어 버린다. 결국 내 인생을 살아갈 줄 모르는 채 살아지는 대로 나름의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인간이 되어 버린다. 그것이 성공으로 가는 길이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삶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얻어 좋은 동반자를 만나 건강한 자녀를 얻어 그 자녀들을 또 다시 같은 길을 걷게하는 것이 과연 성공이라는 의미를 따지지 않는다고 해도 가장 인간다운 삶인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능동적인 삶은 얼마나 다를까.


수많은 대전제가 가득한 이 세상에서 능동적인 삶은 피동적인 삶과 무엇이 그렇게 다를까. 어차피 같은 인간이 하는 생각과 행동이라면 능동적인 삶이라고 해도 거창한 무엇인가를 이루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다른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고 남들과는 조금은 다른 삶을 추구할 수는 있을 것이다.


수없이 도전해봤지만 항상 실패한다.


하고 싶은 공부를 통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절대적인 반대에 부딪혀 하고 싶은 공부도 못했고 하고 싶은 일은 저멀리 날아가 버렸다. 해야만 하는 전공을 택해 해야만 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18년이 흘렀다.


그래도 계속해서 살아지는 대로 살지 않는다.


취직이 잘된다는 공대를 졸업해 돈많이 받는 대기업 엔지니어가 되기 싫어 꿈꾸던 아나운서 시험을 봤다. 실패하고 제조회사에 입사해서도 인사팀에 들어갈 기회를 얻었다. 쓸데없는 짓이라고 했지만 항상 다른 회사와 교류할 기회를 찾았다. 공돌이가 뭐하는 짓이냐고 했지만 항상 마이크를 잡았고 글을 쓰고 강의를 했다.


결론은, 그래서 재미있게 살고 있다.


항상 누군가에게 얘기한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삶이 있다고. 살아지는 대로 사는 삶과 무엇인가를 찾는 삶. 둘 다 결국 성공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일탈이 두려워 감히 엇나갈 생각도 못하고 사는 것과 과감하게 일탈을 시도하는 삶의 희미한 차이를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