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듣지 않을 권리와 이유가 있다.
우리는 누군가의 말을 끝까지 다 들어야 비로소 그 내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청자의 마음은 이미 그 말의 첫마디에서 반응하고 판단해 버린다.
“그 말이 나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지금 이 말을 들을 이유가 있을까?”
주의경제학자 허버트 사이먼이 말한 것처럼
"정보의 풍요는 주의(attention)의 빈곤을 초래"한다.
즉, 집중은 늘 부족한 자원이고 기본적으로 우리는 남의 말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래서 말하기의 시작은 화려한 언변보다는 주의를 모으는 기술에 가까워야 한다.
청중이 고개를 들어 “어? 조금 더 들어볼까?”라고 느끼는 순간, 설득의 흐름은 이미 절반쯤 완성된 것이다.
오프닝은 분산된 시선을 하나의 방향으로 모아, 이후 메시지를 해석할 기준점(Anchor)을 만드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 시작을 설계할 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심리학 원리 3가지에 대해 알아보자.
1. 예측 오류(Prediction Error)
예상과 다름이 집중을 만든다
우리의 뇌는 예상에서 벗어나는 순간, 즉시 집중을 높인다.
신경과학자 이티와 발디(Itti, Baldi(2009))의 ‘Bayesian Surprise’ 연구는 예측 불가능한 신호가 주의 자원을 얼마나 강하게 끌어당기는지 보여준다.
그래서 오프닝에서
"안녕하십니까, 오늘 발표를 맡은..."와 같은 뻔한 클리셰는 효과가 없다.
대신 ‘기대의 방향’을 살짝 뒤트는 문장이 시선을 잡아당긴다.
예시:
“오늘 제가 말씀드릴 것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우리가 3년 동안 이 문제를 ‘잘못 이해해 온 단 하나의 이유’입니다.”
“자신이 없네요. 질 자신이 없어요”
이때 청중은 즉시 “뭐가 잘못됐지?”라고 생각하고 다음 말을 기다리게 된다.
2. 초두 효과(Primacy Effect)
첫 문장이 전체 해석을 결정한다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애쉬(Asch)의 연구(1946)에 따르면, 처음에 받은 인상이 그다음의 모든 정보를 필터링하는 기준점이 된다고 설명한다.
그렇기에 오프닝은 서론을 꺼내는 시간이 아니라, 청중이 내 말을 해석할 '프레임'을 설정하는 시간이다.
칩 히스와 댄 히스의 명저 < Made to Stick(2007)>에서도 가장 강력한 메시지 원칙 중 하나로 '단순성(Simplicity)'을 강조한다. 첫인상이 복잡하면 뇌는 정보를 차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프닝을 복잡한 디테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청중의 관심을 즉시 사로잡고 글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즉, 핵심 가치(Value)나 충격적인 사실(Core)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
예시:
“우리의 제품은 연간 2,000만 달러의 마케팅 비용을 0으로 만들 잠재력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10분 동안 그 이유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강력한 한 문장이 곧 기준점이 되고, 이후의 모든 정보가 그 기준 위에서 읽히게 된다.
3. 양성 위반 이론(Benign Violation Theory)
안전한 ‘틀 깨기’가 몰입을 만든다
유머 연구자 맥그로와 워렌은 예상은 깨되 위험하지 않은, 이른바 ‘양성(안전한) 위반’이 발생할 때 웃음과 집중이 터진다고 말한다.
"이거 뭔가 선을 넘었는데(Violation),
알고 보니 안전하네(Benign)?"
격식 있는 자리에서 살짝 선을 넘는 듯하지만, 결과적으로 무해한 농담이 통하는 이유다. 적절한 위반은 청중의 긴장을 녹이고 화자에게 호감을 느끼게 한다.
예시:(경제학/비즈니스 세미나에서)
“만약 여러분이 진정한 ‘호모 이코노미쿠스(합리적 인간)’였다면 아마 이 복잡한 세미나 대신 점심을 더 효율적으로 드시러 가셨을 겁니다.”
이런 가벼운 비틀기는 권위를 내려놓게 하고, 청중의 시선을 편안하게 붙잡는다.
시선의 기술은 결국 마음을 여는 기술이다
예측 오류든, 초두 효과든, 양성 위반이든 이 모든 기술을 관통하는 진실은 하나다. 바로 '관련성'이다.
이 기술들이 성공하는 순간은, 이 말이 '나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느낌', 이 장면이 '나의 하루와 닿아 있다는 감각'을 줄 때다.
그렇기에 말을 시작할 때, 화려한 수사나 복잡한 전문 용어보다 청중의 고개를 들게 하고 마음을 조용히 열게 하는 문장을 늘 고민해야 한다. 또한, 말은 시작되는 순간 이미 절반쯤 청중에게 다가가 있어야 한다.
청자는 당신의 말을 들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Asch, S. E. (1946). Forming impressions of personality. Journal of Abnormal and Social Psychology, 41(3), 258–290.
Simon, H. A. (1971). Designing organizations for an information-rich world. In M. Greenberger (Ed.), Computers, communications, and the public interest (pp. 37–72).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Kahneman, D. (2011). Thinking, fast and slow. Farrar, Straus and Giroux.
Heath, C., & Heath, D. (2007). Made to stick: Why some ideas survive and others die. Random House.
tti, L., & Baldi, P. (2009). Bayesian surprise attracts human attention. Vision Research, 49(10), 1295–1306.
McGraw, A. P., & Warren, C. (2010). Benign violations: Making immoral behavior funny. Psychological Science, 21(8), 1141–1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