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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pdolee Sep 23. 2018

나에게 어디서,
달리냐고 물었다.

달리지 않기엔 여전히 우리는 젊다 (4/6)


 "A 씨는 어디 사세요?"

 러닝 크루 사람들과 한바탕 달린 후 갖게 되는 뒤풀이 자리. 나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꼭 사는 곳을 묻게 된다.

 "그럼 주로 어디 뛰세요? 뛸 만한 곳 있어요?"

 그렇다. 내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어디 사느냐고 묻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아직까지 내가 달려보지 못한 러닝 코스를 더 알고 싶어서. 이게 전부다. 축구를 제대로 즐기려면 축구 코트로, 수영을 제대로 즐기려면 수영장으로 가야 하지만 우리의 러닝은 그렇지 않다. 비좁은 골목길도 안전에 유의하며 뛸 수만 있다면 훌륭한 시티런(City Run) 코스가 된다. 그렇기에 달릴 수 있는 장소와 달릴 만한 코스는 셀 수 없이 많다.



주로 어디 뛰세요?


 한 번도 이 질문을 나 자신에게 직접 던져본 적은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물었을 때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뚝섬이요."라고 답한다. 내 입으로 말하기 민망하게도 뚝섬한강공원은 내 러닝의 고향 같은 곳이다. 사전적인 의미로 '태어나 자라난 곳'을 뜻하는 고향. 내가 1년 전 러닝을 처음 시작했던 곳도 뚝섬이고, 처음으로 쉬지 않고 5km를 달렸던 곳도 뚝섬이었다. 게다가 실력이 늘어 10km를 처음 달렸을 때도, 혼자 옥수역을 지나 첫 (비공식) 하프 마라톤을 뛰었을 때도 늘 첫걸음은 뚝섬에서 시작됐다.


 단, 뚝섬을 사전적인 의미로만 내 러닝의 고향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너무나도 작은 부분이다. 내가 지금껏 뚝섬을 자주 달렸던 이유가 단순히 집과 가까운 한강공원이라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러너들이 나와 똑같이 말하겠지만, 뚝섬은 달리기 참 좋다. 한강 옆이기 때문에 멋진 풍경은 말할 것도 없고, 잠실대교 또는 성수대교 중 어느 방향으로 달려도 무난하게 달릴 수 있으니까. 더불어 고개를 돌리면 왼쪽에는 한강과 함께 높은 고층 빌딩들이, 오른쪽에는 돗자리를 펴고 하하 호호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까지 있으니 내 러닝을 빛나게 해주는 배경은 충분하다. 그 사이를 달리고 있는 내 모습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다는 망상까지 들 정도니 말이다. 1년 전에 러닝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뚝섬이 집 근처라는 사실이 이렇게 큰 축복인지 몰랐을 것이다.


러너들에게는 역세권도 좋지만 뚝세권도 꽤 괜찮은 옵션


 이 시대의 참관종 같아 보이겠지만, 나는 달릴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는 듯한 느낌이 좋다. 그런 이유에서 한강공원은 마치 관종 러너를 위한 무대나 다름없다. 한강공원에 돗자리를 펴고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게 뭐야, 내가 달리는 모습을 누군가 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놀랍게도 사람들은 뛰고 있는 사람에게 관심이 1도 없다.)



가장 달리기 좋았던 곳은요?


 달리기 좋았던 곳을 꼽아보기엔 내 러닝 경험이 두텁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장소는 분명히 있다. 기준을 어떻게 정하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므로 이 글에서는 간략하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왠지 나중에 코스와 함께 장소를 자세하게 소개할 기회가 생길 것 같다.


 누가 뭐라 해도 가장 마음 놓고 편하게 달릴 수 있는 곳은 트랙. 내가 뛰어본 트랙은 연세대학교 대운동장 트랙과 서울교육대학교 대학운동장 트랙으로 딱 두 곳인데, 결국 내 기준에서 접근성이 뛰어난 서울교대 트랙을 더 많이 이용했다. 트랙은 훈련하기 편하고 발에 무리가 적다는 장점이 있지만, 시야가 지루하다 보니 훈련이 아니라면 굳이 먼저 찾는 편은 아니다. 그래도 많은 러너들이 모이는 장소인 만큼 신선한 자극이 필요하다면 트랙을 달려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서울교대 트랙은 유독 사람이 많은 느낌


 달리기 편한 곳과 별개로 가장 재밌게 달릴 수 있어 좋았던 곳은 경복궁이다. 작년 6월부터 문재인 정부의 '열린 청와대' 행보 중 하나로 밤 시간대 청와대 앞길이 개방되면서 경복궁은 최근 러너들이 많이 찾는 러닝 코스가 되었다. 올해 가장 더웠던 여름날, 크루 사람들과 경복궁 돌담길을 따라 달리며 웅장한 청와대를 내 눈으로 직접 바라본 순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때의 좋았던 기억 때문인지 '경복궁'이라는 글자만 봐도 미소가 지어질 정도인데, 나중에 혼자서라도 꼭 다시 달리고 싶은 곳이다.


너무 더워서 아이스크림을 그렸다! (2018. 8. 1. 수, @경복궁, 4.05km, 7' 01", 28:27)


 내가 어디를 달리더라도 꼭 지키는 원칙이 하나 있다. 바로 '안전'이다. 내가 달리기 좋아하는 한강공원이나 길거리는 보행자가 많이 다니는 곳이기에 특히 안전에 유의해야 하는데, 사실 원칙을 지키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딱 하나만 생각하면 기억하면 된다. 주변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달리는 것. 통제가 없는 곳이기에 달리는 사람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달리지만, 상대적으로 걷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이 사실을 깨닫기 전에는 달릴 때 전방 보행자에게  "잠시 지나가겠습니다."를 수없이 외쳤던 기억이 있다. 나는 서로 주의하자는 순수한 의미로 말했던 것이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보행자 입장에서는 기분이 상할 수 있는 말이었다. 트랙도 아니고, 모두를 위한 보행로에서 달리는 사람 편하라고 보행자가 피해줄 의무는 없으니까.



 지난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121번의 러닝으로 643.3km를 달렸지만, 이 거리는 고작 서울과 부산을 왕복한 거리에 지나지 않기에 잊지 말자. 달리지 않기엔 여전히 우리는 젊다.




달리지 않기엔 여전히 우리는 젊다

나에게 왜, 달리냐고 물었다.

나에게 어떻게, 달리냐고 물었다.

나에게 무엇을, 달리냐고 물었다.

나에게 어디서, 달리냐고 물었다. (현재글)

나에게 언제, 달리냐고 물었다.

나에게 누가, 달리냐고 물었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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