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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pdolee Feb 26. 2022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서
워케이션을 보냈다

6박 7일짜리 제주 워케이션: 첫 번째 일기


이 일기에는 쫌쫌따리 회사 자랑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월 26일 토요일. 지금 나는 제주시청 옆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여행도 아니고, 출장도 아닌 정확히 워케이션이라는 명목으로 제주에 내려온 지 4일째 되는 날. 내가 제주에 워케이션을 오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부랴부랴 17일 전, 2월 9일에 결정되었다.



 2월 9일은 수요일이었다. 우리 회사는 모든 직원이 각자 다른 지점에서 근무하다 보니 매주 수요일마다 미팅 겸 함께 일하는 시간을 가지는데, 제주 워케이션 이야기가 나온 것 역시 바로 그 날이었다. 슬랙 내 회의록 채널에 대표님의 메시지가 하나 올라왔다. (언제부턴가 아침 9시가 땡 되자마자 대표님의 메시지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속으로 대표님께서 메시지 예약 기능을 아주 잘 활용하시는 듯했다.) 메시지에 적힌 3번 제주 워케이션 자체 시행 안건을 보자마자 10초 전에 본 다른 안건들은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심지어 내용은 더 충격적이었다.


목요일부터 화요일까지 워케이션을 다녀와라. (수요일은 미팅이 있으니 제외)

회사에서 왕복 항공권을 지원하겠다.

대신 놀러 가는 거 아니고 근처 맛집, 카페, 코워킹 스페이스 등을 발굴해야 한다.

원한다면 당장 내일부터 떠나도 된다.


 그날 회의는 서비스 기획, 마케팅, 프랜차이즈 지점 오픈 등 중요한 안건이 꽤 많았지만, 우리들의 관심은 오로지 제주 워케이션으로 쏠렸다. 누가 언제 어떤 순서로 갈 것인가, 숙소 컨디션은 어떨까, 지역은 어디인가, 근처에 맛집이나 카페가 많은가 등 카카오맵을 켜놓고 시끄럽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행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거의 싫어하는 수준) 나는 설렘과 동시에 걱정이 몰려들었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짐 챙기는 것도 귀찮고, 항공권이랑 숙소 알아보는 것도 귀찮고,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것도 귀찮고, 놀러갈 곳이나 먹을 곳 찾는 것도 귀찮고, 숙소 컨디션에 따라 내 컨디션도 바뀌는 것까지 여행을 제법 근거 있게 싫어하다 보니 여행은 곧 나에겐 또 다른 일이었다.


 어차피 가야 한다면 매와 3차 백신은 먼저 맞는 게 낫다고 믿는 나는 곧장 2주 후 제주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6박 7일짜리 짧다면 짧은 일정이지만 인생 최대 여행 기간이 2박 3일인 나에게는 준비할 게 태산이었다. 캐리어도 사야 하고, 화장품 담을 공병도 준비해야지. 부족함 없이 지내려면 매일 쓰는 생필품도 챙겨야 했다. 차근차근 준비를 하는데, 이상하게 여행 준비를 했을 때보다 심장이 뛰었다. 놀러 갈 때는 여행도 일이라며 귀찮아했으면서, 정작 일하러 갈 때는 왜 안 귀찮아하는 거지? (변태인가..)


 그 해답은 조카를 보러 누나 집에 놀러 갔다가 깨닫게 되었다. 일하러 가면서 설레는 마음이 드는 게 이상하다고 했더니 누나는 매일 같은 장소에서만 일하다가 색다른 곳에서 일하라고 하니 설레는 건 당연하다는 현명한 답을 내려줬다. 그 말을 듣자마자 맞네, 하면서 묘한 죄책감이 씻겨 내려갔다. 여기서 느꼈던 죄책감에 대해 말해보자면 사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여행을 가면 딱히 즐겁지 않았다. 여행까지 와서도 싸우는 부모님, 여행 스타일이 달라서 피곤한 친구들까지. 싫었다기보다는 뭐랄까. 글로 적을 수 없는 나만의 찝찝한 느낌이 있다. 그래서 만약 여행을 가게 된다면 그냥 혼자 갈 것이라고 매번 다짐했는데, 이런 다짐을 곱씹을 때마다 가족과 친구를 배신한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누나의 말에 죄책감이 싹 사라진 나는 마음 편하게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6박 7일짜리 제주 워케이션 일기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서 워케이션을 보냈다 (현재글)

에어비앤비가 그랬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라고

사장님 혹시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어떻게 되나요

워케이션의 주말은 왜 평소보다 더 바쁜 걸까요

난 몰랐어 제주가 이리 다채로운지

영원한 후회도 없고 영원한 만족도 없다

나는 지금껏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었어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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