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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pdolee Apr 08. 2022

영원한 후회도 없고
영원한 만족도 없다

6박 7일짜리 제주 워케이션: 여섯 번째 일기


이 일기에는 쫌쫌따리 회사 자랑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난 몰랐어 제주가 이리 다채로운지(이전 글)와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2월 28일 월요일


 오전 7시 20분

 새로운 한 주가 밝았다. 내일이 3·1절이라 공식적으로 나의 첫 워케이션 마지막 근무일인 셈. 월요일 아침부터 일어나자마자 부지런하게 바닥 청소를 하고, 러닝 복장으로 숙소를 나왔다. 오늘의 조깅 코스는 색다르게 바닷가 반대쪽, 도남동으로 정했다. 바닷가도 좋지만, 오늘은 반대로 제주의 땅을 두 발로 느껴보고 싶었다. KBS 제주방송총국 건물을 지나 5분 30초 페이스로 열심히 달리는데, 저 멀리 익숙한 산이 하나 보였다. 설마 한라산인가 싶어서 얼른 카카오맵을 켰다. 나침반 모드로 보니 한라산이 아닐 수 없었다. 14키로나 떨어져 있는데 이렇게 잘 보인다고? 뜻밖의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오전 9시

 월요일, 나의 첫 근무 장소는 제주벤처마루 2층에 있는 제이스페이스로 정했다. 양 대표님과 조 대표님 두 분이 매우 추천하던 코워킹 스페이스여서 부푼 기대를 안고 건물로 들어갔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너무 휑한 느낌. 정확히는 테이블이나 의자, 책, 인테리어 소품까지 꽤 잘 마련되어 있었는데 내가 너무 이른 시간에 와서 그런지 사람이 없어 휑해 보였다는 게 맞을 것이다. 이때가 기회구나, 싶어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어떻게 공간을 채웠는지 살펴볼 수 있어서 나에게는 어쩌면 다행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단점이 딱 하나 있었는데, 너무 추웠다. 사람이 없어서 난방을 가동하지 않았던 건지, 아니면 내가 직접 난방기를 제어할 수 있는데 몰랐던 건지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나보다 먼저 다녀온 두 대표님, 내가 복귀한 후 제이스페이스를 다녀온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너무 이른 시간에 가서 난방기가 가동되지 않았던 것 같다. 결국 오들오들 떨며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



 오후 1시

 워케이션이 끝나갈 때가 되니 이제 혼밥이 자연스러워졌다. 바 자리가 있는 돈가스 집을 찾아왔는데,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다른 소리지만, 이상하게 겨울엔 우동이 그렇게 먹고 싶어진다. 점심을 어딘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순식간에 흡입했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오후의 근무지는 꽤 거리가 있는 곳이라 서둘러야 했기 때문이다.



 오후 2시

 30~40분 버스를 타고 온 곳은 조천읍. 이곳에 제주 리모트 워커들의 성지가 있다고 해서 찾아왔다. 버스 정류장에서 5분 정도 걸었더니 조천성당 옆에 자리한 오피스 제주(O-PEACE JEJU)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건물을 보자마자 무언가에 압도 당한 느낌이 들었는데, 아마 1층 통유리 창의 역할이 컸던 탓이겠다.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공유 오피스가 운영되는 이곳은 매니저 상주 시간이 따로 있어서 무인 운영 시간에는 카카오페이로 결제해야 한다. 이미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고 간지라 자연스럽게 만 원을 결제하고 자리에 앉았다. 슬프게도 핫데스크는 모두 이용 중이어서 소파에 앉아 맥북을 펼쳤는데, 이 시간대에 핫데스크가 만석이라는 사실이 꽤 충격이었다. 텅 비었을 거라고 생각한 내가 바보였다. 공간 자체가 너무 아늑하고 디테일하게 신경 쓴 티가 나서 구경하는 재미와 함께 '제주에 왔을 때 제일 먼저 올걸..' 후회만 가득했다. 아침에 그 추운 제이스페이스가 아닌 이곳에 일찍 왔더라면 핫데스크에 앉아 편하게 일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오후 3시 40분

 그런데 다행히 소파에 앉아 일을 하는데도 생각보다 집중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스피커 바로 옆이긴 했지만, 배경음악의 선곡이나 볼륨이 거슬리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 심지어 샤잠 자동 모드를 켜서 배경음악을 수확해올 정도였다. 소파 옆에는 굿즈가 전시되어 있길래 컵을 사려고 했는데, 정작 결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빈손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무인 운영 시간이어서 어디서 결제해야 하는지 몰랐고(설마 굿즈로 셀프로 카카오페이?) 홈페이지에 채팅 문의를 남겼으나 바로 답변이 오지 않았다. 우리 서비스 역시 무인 운영 시간이 있고, 전화 상담 대신 채팅 상담만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부분에서 고객들이 불편함을 느꼈을 수 있겠구나,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아무튼 오피스 제주 입장에서는 아쉽게도 굿즈 판매 기회를 놓쳤다. 다음에 다시 가면 꼭 사 오겠다고 다짐.



 오후 6시 30분

 드디어 제낳제키 친구와의 약속! 지금이 딱 방어를 먹을 수 있는 마지막 시기라는 소식에 로컬 횟집으로 초대를 받았다. 나이 서른에 방어회를 처음 먹어보았는데, 식감이 정말 미친 것 같았다. 또 맛있는 반찬은 왜 이렇게 많은지. 소주잔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심지어 이 묵은지 짜글이는 먹자마자 우리 둘 다 "야, 이거 완전 소주 안주잖아." 외치며 내일이 없는 애처럼 술을 마셨다. 어차피 내일은 일을 안 하니죄책감 없어서 술이 더 달았다.



 오후 8시

 영업 제한이 10시였기 때문에 2차를 즐기려면 넘어가야 하는 시간. 우리의 후보군은 허클베리핀이라는 칵테일 바와 무용담이라는 일식 술집이었다. 하지만 제낳제키는 왠지 나와 무용담에 가야 할 것 같다며 카카오택시를 불렀다. 그렇게 택시를 타고 무용담 앞에 내린 우리.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들어가자마자 대빡 사케를 한 잔씩 시킨 후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야채 안주를 주문했다. 배가 너무 불러서 안주 선택의 기준이 덜 배부른 것이었는데, 제낳제키가 최근에 친구와 다시 한번 다녀온 결과 무용담은 1차로 맛있는 안주를 잔뜩 시켜 먹어야 한다며 다시 제주로 내려오라고 극성이다. 참, 그리고 허벅술도 마셨다. 처음에 마개를 빼는 법을 몰라서 우왕좌왕했는데, 사장님께서 친절하게 그냥 뽑으면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근데 마치 와인 코르크 마개와 닮아 나도 모르게 마개를 코에 갖다 대며 킁킁댔다. 그 모습을 사장님께서 정면으로 보시더니 씩- 미소를 지으셨다. 부끄러워했더니 다들 그런다며 괜찮다고 말해주셨다. 무용담에서는 어쩌면 친절하신 사장님 덕분에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낸 듯 하다.







6박 7일짜리 제주 워케이션 일기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서 워케이션을 보냈다

에어비앤비가 그랬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라고

사장님 혹시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어떻게 되나요

워케이션의 주말은 왜 평소보다 더 바쁜 걸까요

난 몰랐어 제주가 이리 다채로운지

영원한 후회도 없고 영원한 만족도 없다 (현재글)

나는 지금껏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었어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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