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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pdolee Mar 02. 2022

사장님 혹시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어떻게 되나요

6박 7일짜리 제주 워케이션: 세 번째 일기


이 일기에는 쫌쫌따리 회사 자랑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어비앤비가 그랬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라고(이전 글)와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2월 25일 금요일


 오전 7시 15분

 어제와 달리 기상 알람이 울리자마자 곧바로 눈을 뜨고 이불을 정리했다. 바닥을 닦고 양치까지 끝내니 어제 아침처럼 정신이 맑아졌다. 이렇게 일찍 일어난 이유는 역시나 조깅 때문이었다. 내가 조깅 때문에 잠을 포기했던 게 얼마 만인지. 어제 제주에서의 첫 조깅은 날씨가 추웠음에도 완벽했기에 오늘은 동일한 코스를 역으로 달려보았다. 이틀 연속 바닷가를 배경으로 달렸더니 마치 살면서 볼 비행기들을 몰아서 본 느낌이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조깅이었던 이유는 8할이 따듯해진 날씨 덕분이었다. 바람이 불어도 매섭게 추은 것이 아니라 나를 기분 좋게 밀어내는 느낌.



 오전 9시 10분

 오늘의 근무지는 카페로 결정. 그 시작은 역시나 가장 만만한 스타벅스였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는 스타벅스를 무척이나 자주 갔다. 일할 때, 공부할 때, 책을 읽을 때, 친구를 만날 때 모든 순간의 배경이 스타벅스였을 정도로.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스타벅스에서 업무를 하는 이유는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어느 매장에 가든 동일한 퀄리티의 음료와 안정적인 와이파이, 호불호가 갈리기 어려운 배경음악, 적당한 소음, 깨끗한 화장실까지. 심지어 간단히 끼니를 때울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개인적으로는 스타벅스 파트너들의 일하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해서 핸드오프(음료 픽업대)나 POS가 잘 보이는 곳에 앉는 편이다. 일하다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멍하게 바라보면 은근히 리프레시가 되는데, 마치 ASMR을 눈으로 즐기는 듯한 경험을 준다.



 오후 2시

 점심을 먹으러 큰 길 건너편으로 건너왔다. 제주시청 근처가 우리 동네(서울 건대 인근)와 느낌이 비슷해서 조금만 노력해서 찾으면 먹을 곳은 충분했다. 하지만 함께 밥을 먹을 동료가 없는 나에게 식당 선택의 기준은 혼밥 가능 여부였다. 물론 혼밥이 안 되는 식당은 거의 없다. 다만 바글바글한 점심시간에 4인 테이블에 나 혼자 앉아 밥을 먹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스타에 올라오는 맛집들은 제외되었고, 나의 점심 메뉴는 바 자리가 마련된 식당의 연어 덮밥으로 결정되었다. 



 오후 2시 40분

 이번엔 제낳제키(제주가 낳고 제주가 키운) 로컬 친구에게 추천받은 카페 커피파인더를 가기로 했다. 나에게 제주는 아무래도 관광지의 느낌이 강하다 보니 개인 카페에 노트북을 펴고 일하는 것이 민폐가 되지 않을까 늘 걱정이었다. 그래서 직원들의 눈치를 그나마 덜 받는 2층이 있는 곳을 선호했는데, 커피파인더가 딱 그 조건에 부합했다. 게다가 친구가 추천해준 참깨 라떼는 정말 고소하고 맛있었다. 굳이 아쉬운 점을 찾자면 와이파이가 안정적이지 않아서 업무의 흐름이 자주 끊겼다는 것. 아무래도 카페에서 일을 하려면 이런 부분은 감수해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다음에 제주에 또 온다면 커피 맛 때문에 다시 찾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드는 공간이었다.



 오후 7시 30분

 대표님이 갑자기 당일치기로 제주에 내려오셨다. 원래대로라면 오늘 저녁은 제낳제키 친구와의 약속이 잡혀있었는데, 하필 PCR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어 약속은 월요일로 연기되었다. 그렇게 대표님과 자연스럽게 접선하여 정대로 향했다. 정대는 제주시청 근처에 있는 퓨전 요리주점인데, 이것저것 다양한 안주를 맛볼 수 있었다. 제일 기억에 남는 음식은 사시미와 닭고기 수육, 그리고 제주 술인 니모메. 술과 요리, 그리고 장소의 분위기가 너무 잘 어우러져서 서울로 돌아갈 때 '정대' 그 자체를 포장해서 가져가고 싶었을 정도였다.



 오후 9시 50분

 당일치기로 내려오신 대표님은 서울로 돌아가기 위하여 급히 제주공항으로 떠나셨다. 혼자 남은 나는 날씨도 풀렸겠다, 술도 깰 겸 밤 산책을 나섰다. 낯선 곳에서 러닝과 산책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지역의 지리를 외우게 되는데, 나는 이러한 기억들이 여행을 더 오래 곱씹을 수 있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산책하다가 배스킨라빈스 근처 타코야끼 트럭에서 발을 멈췄다. 엊그제 사놓은 캔 맥주가 떠올라 타코야끼 만 원어치를 포장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맥주를 마시고, 타코야끼를 씹으며 내일이 주말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내일은 쉬는 날인데, 뭐 하지?







6박 7일짜리 제주 워케이션 일기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서 워케이션을 보냈다

에어비앤비가 그랬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라고

사장님 혹시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어떻게 되나요 (현재글)

워케이션의 주말은 왜 평소보다 더 바쁜 걸까요

난 몰랐어 제주가 이리 다채로운지

영원한 후회도 없고 영원한 만족도 없다

나는 지금껏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었어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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