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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pdolee Mar 07. 2022

워케이션의 주말은
왜 평소보다 더 바쁜 걸까요

6박 7일짜리 제주 워케이션: 네 번째 일기


이 일기에는 쫌쫌따리 회사 자랑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장님 혹시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어떻게 되나요(이전 글)와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2월 26일 토요일


 오전 9시 50분

 제주로 워케이션을 와서 맞이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토요일. 주말의 시작은 어느 때와 다름없이 늦잠이다. 9시쯤 눈을 떴지만 이불 속에서 뒹굴며 스마트폰을 만지느라 10시가 가까이 돼서야 침대를 벗어났다. 이틀간 몸소 배운 것 중 하나. 잠을 깨기 위한 확실한 방법으로 청소와 양치만 한 것이 없다는 것. 바닥 청소 후 양치를 했더니 비로소 조깅을 하러 갈 만한 기분이 세팅됐다. 내가 이렇게 늦잠을 잔 그럴싸한 이유는 10키로를 가뿐히 달린 후 가고 싶었던 카페를 오픈 시간에 맞추어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오늘의 조깅 코스 역시 이틀 동안 달렸던 바닷가 쪽이긴 했지만, 전과 달리 용두암이 있는 방향으로 달리기로 했다. 대충 10키로짜리 코스를 카카오맵에 그린 후 달리기를 시작했다.



 작년에 트레일 러닝에 재미를 붙이면서 산길을 따라 달리는 건 경험은 약간이나마 있었지만, 해변가를 달리며 자연을 느끼는 건 이번 워케이션이 처음이었다. 해안 도로의 산책로가 잘 나 있어서 트레일 러닝의 느낌이 반감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뻥 뚫린 제주 바닷가를 시야에 담으며 달리는 건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달리다가도 머리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의 모습을 담아보려고 카메라를 들곤 했다. 그렇게 발견한 재미난 사실은 다른 항공사들과 달리 제주항공은 비행기 아랫부분까지 래핑을 했다는 것이다. 별것 아니지만 퀴즈충이라고 불리는 나에게는 이런 포인트가 나중에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 심심한 퀴즈 거리가 된다.



 오전 10시 30분

 러닝 코스 중간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러 블론드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카페인을 충전했다. 제주에 있는 모든 스타벅스는 일회용 컵이 아닌 리유저블 컵에 음료를 담아준다. 보증금은 천 원으로, 나중에 사진에서 보이는 리유저블 컵 반납기에 컵을 반납하면 돌려받을 수 있다. 서울에서는 볼 수 없던 풍경이라 처음엔 어색했는데, 어제 이 반납기 옆자리에 앉아 일을 했더니 나도 모르게 파트너 수준으로 이 반납기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편리함이라는 핑계로 많은 것들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 취지도 좋고 예상보다 크게 불편하지 않아서 서울에도 도입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생겼다.



 오전 11시 20분

 미쳤다..! 오픈 시간까지 맞춰서 나왔던 카페가 하필 3일간 문을 열지 않는다고 한다. 이 사실을 카페 앞에 도착하고서야 알았다. 인스타그램에 이틀 전 올라온 휴무 공지를 본 후 평소와 달리 꼼꼼하게 알아보지 않은 나 자신을 속으로 몇 차례 꾸짖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주말이니까 당연히 하겠지, 싶었던 것이다. 3일간 쉰다고 하셨으니 서울로 돌아가기 전에 올 수 있겠지? (근데 다시 안 찾아가고 서울로 돌아왔다는 게 레전드)



 오전 11시 30분

 모닝커피를 포기할 수 없어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만사오케이라는 카페에 들렀다. 이곳 역시 제낳제키 로컬 친구가 추천한 카페였는데, 마치 시골 마을회관 같은 건물 1층에 자리 잡아 아늑한 느낌을 뿜어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시간대에 들어오는 햇볕이 참 예뻤다. 심지어 넓은 책상과 은은한 조명 덕분에 여기서 일하면 은근히 업무 효율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리모트 워커를 위한 최적의 업무 장소를 찾는 내 미션은 주말에도 이어지고 있었다.



 사장님이 내려주시는 핸드 드립 커피를 기다리며 이곳저곳 둘러보았다. 감동했던 포인트는 사장님께서 적당히 커피를 컵에 담아주시고는 한 입 먹어보라며 말씀해 주신 것. 진하면 물을 더 넣어주고, 연하면 내린 커피를 더 주겠다는 사장님의 세심한 배려에 햇볕보다 더한 따듯함을 느꼈다. 이런 작은 친절함에 나도 마음이 사르르 녹았는지 제주 사는 친구가 추천해 줘서 왔다고 말씀드렸더니 사장님께서는 여행 온 것이냐고 되물으셨다. 여행은 아니고 워케이션을 왔는데 숙소가 근처여서 꼭 와보고 싶었다며, 곧 제주에 내려올 다음 타자들에게 꼭 가라며 추천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나 역시 제주에 다시 내려온다면 무조건 들리고 싶은 공간이 생긴 것 같아 마음만은 부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오후 12시

 대충 후다닥 끼니를 때운 후 스타벅스에 가려고 편의점에서 햇반 컵반을 사 왔다. 제주까지 와서 컵밥을 먹는 애가 어딨냐며 누군가는 한심하게 볼 수 있지만, 오히려 좋았다. 달리 생각하면 나에게 제주는 이런 일상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는 기분 좋은 시그널이기도 했다.



 오후 1시 20분

 자주 들렀던 제주시청 근처 스타벅스에 도착했다. 주말이니 일을 하기보다는 글도 쓸 겸 개인적인 작업을 하기로 했다. 제주 스타벅스에 오면 왠지 제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한정 음료와 푸드에 관심이 가게 된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모습이지만, 그만큼 스타벅스가 현지화에 힘을 쏟고 있다는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3년 전, 스타벅스 파트너로 일했을 때도 올라오는 공지사항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내용은 다름 아닌 신규 매장 오픈과 한정 메뉴 소식이었다. 나에게 한정 메뉴는 그 지역에 갈 경우 꼭 스타벅스를 찾는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그때였을까. 모든 분야에서 현지화는 적어도 스타벅스만큼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오후 5시 40분

 인스타그램을 하다가 친구가 영화관에 갔다는 스토리를 보고 나도 충동적으로 영화를 예매했다. 바로 근처 CGV에 도착했는데, 사람이 너무 없어서 살짝 무서웠다. 내가 선택한 영화는 안테벨룸. 겟 아웃과 어스를 재밌게 본 나는 그 제작진들이 만들었다는 정보만 듣고도 어렵지 않게 영화를 고를 수 있었다. 아, 잠깐.. 이거 스릴러 영화인데, 왜 아무도 안 들어오는 거지?



 오후 7시 30분

 다행히 영화 시작 전 커플 한 쌍이 들어와서 혼자 스릴러 영화를 보는 대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근데 살짝 미안한 감정도 들었다. 그분들 입장에서는 나만 없었다면 더 로맨틱한 영화 관람이 되지 않았을까? 아무튼 서울에서도 잘 찾지 않던 영화관을 제주에서 찾는 내 모습을 보며 은근히 로컬이 되어가고 있다는 우스운 생각도 잠깐 하게 되었다.



 오후 11시

 영화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깐 산책을 즐겼다. 날씨가 살짝 쌀쌀하긴 했지만, 왠지 이 정도 시원한 날씨는 제주에서 감사한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로 돌아온 나는 얼른 따뜻한 물을 끼얹은 후 맥주와 과자를 뜯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내일은 왠지 더 알찬 주말을 보내야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6박 7일짜리 제주 워케이션 일기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서 워케이션을 보냈다

에어비앤비가 그랬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라고

사장님 혹시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어떻게 되나요

워케이션의 주말은 왜 평소보다 더 바쁜 걸까요 (현재글)

난 몰랐어 제주가 이리 다채로운지

영원한 후회도 없고 영원한 만족도 없다

나는 지금껏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었어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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