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박 7일짜리 제주 워케이션: 다섯 번째 일기
워케이션의 주말은 왜 평소보다 더 바쁜 걸까요(이전 글)와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오전 9시 40분
조깅으로 제주에서의 아침을 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진 5일차. 어제처럼 늦잠을 자고 느긋하게 일어난 이유는 조깅 후 동문시장에 있는 국밥집에 가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도착 지점을 동문시장으로 설정하고 바닷가로 향하는 러닝 루트를 그려보았다. 그러자 평소 달리던 방향과 반대에 있는 제주항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달리기 시작한 제주항 근처의 바다는 확실히 최근 달렸던 바다와는 느낌이 달랐다. 아무래도 큰 배가 많이 정박되어 있어 압도 당하는 분위기가 느껴졌고, 시원시원하게 뻗은 도로와 인도가 인상적이었다.
오전 10시 15분
5키로 정도 가뿐히 달리고 동문시장 입구에 도착했다. 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관광객은 많지 않아서 어젯밤에 인터넷에서 본 국밥집인 안성식당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두 팀 정도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나누시는 대화를 들어 보니 왠지 여행객 같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메뉴판도 보지 않고 곧장 내장 국밥을 주문했다. 순대 국밥과 고기 국밥도 있었지만, 리뷰에서 내장 국밥에 대한 호평이 많아 꼭 한번 먹어보고 싶었다. 테이블 위에는 빠르게 밑반찬이 세팅되었고, 곧이어 주문한 내장 국밥이 나왔다. 일단 보자마자 양에 입이 떡 벌어졌다. 밥이 밑에 깔려서 나온다는 점을 감안해도 그 위에 수북이 쌓인 고기와 내장에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위에는 고춧가루와 들깨가 듬뿍 뿌려져있었는데, 먹으면서 뿌려진 양마저도 딱 알맞게 올 느낌을 받았다. 혼자서 허겁 지겁 먹다보니 어르신 손님들이 몇 분 오셨는데, 소주를 시키시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하지만 오늘은 해야할 일이 많으니 술은 손대지 않기로 결심하고, 뚝배기를 깔끔하게 비우고 나왔다. 내장 국밥의 가격은 7천 원. 오랜만에 인심 좋은 식당에서 기분 좋게 한 끼를 먹은 느낌이었다.
오전 10시 50분
제낳제키 로컬 친구가 추천한 동문시장 빵집을 찾아가다가 기념품 샵 앞에서 발을 멈췄다. 다름 아닌 어린이용 귤 모자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직 2살밖에 되지 않은 내 조카에게는 사이즈가 조금 크긴 했지만, 일단 사놓으면 언젠가는 쓸 거라는 생각에 지갑을 열었다. 사장님께서 선물할 거냐고 물어보시길래 "선물이긴 한데, 뭐가 달라요?" 되물었더니 선물용이면 보이지 않는 봉지에 담아주신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사장님께 센스 있으시다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총각이 말을 더 센스 있게 하는 구만." 하고 웃으셨다. 내 조카 예린이가 이 귤 모자를 받고 좋아했으면 좋겠다.
오전 11시
동문시장 입구에 있는 아베베 베이커리를 들렸다. 제낳제키 로컬 친구가 추천해 준 크림빵 맛집인데, 크림빵 종류가 정말 다양해서 눈이 돌아갈 정도였다. 꼭 크림빵이 아니더라도 마늘빵 같은 일반 빵도 있었는데, 왠지 자연스럽게 크림빵 위주로 고르는 나. 집에 가져가자마자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는데, 왜 그렇게 사람들이 줄 서서 몇 개씩 포장해가는지 납득했다. 크림 양도 많고, 맛이 진해서 돈이 아깝지 않게 맛있게 먹었다.
오전 11시 15분
빵 봉지를 들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컴플렉스라는 카페를 찾아가기로 했다. 며칠 전부터 러닝 코스와 가까워 한 번쯤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친구는 여기에서 파는 에그타르트가 그렇게 맛있다며 입이 닳도록 칭찬했었다. 근데 이게 웬일. 문에는 자필로 적힌 사장님의 손 편지가 붙여져있었다. 코로나 확진 판정으로 재택 치료를 하고 돌아오겠다는 내용이었다. 왠지 나.. 이번 여행은 카페 운이 조금 없는 편인 것 같다. 커피 맛으로 칭찬이 자자한 곳이라서 더 큰 아쉬움을 갖고 발길을 돌렸다.
오후 12시 50분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샤워를 하고 다시 나왔다. 오늘의 목적지는 노형동. 다행히 숙소 바로 앞 버스 정류장에서 환승 없이 갈 수 있는 동네였다. 제주까지 가져온 아이패드 미니로 버스에서 전자책을 읽었더니 30분 정도의 거리는 금방이었다. 우선 내리자마자 스타벅스로 향했다. 개인적인 업무 때문에 장시간 노트북을 해야 했고, 그러기엔 스타벅스만큼 무난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음료는 유스베리 티가 들어가는 제주 카멜리아 티로 정했다.
오후 4시
생각보다 작업이 길어져서 숙소로 바로 돌아갈까 하다가 근처에 있는 플랏포커피를 찾았다. 내가 제주에 워케이션을 간다고 하니 지인 중 네 명이나 플랏포커피를 추천해 줄 정도로 커피가 맛있는 카페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클래식한 외관을 보고 여기는 굳이 추천해 주지 않았어도 지나가다가 꼭 한 번을 들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 좋게 딱 한 조각 남은 파운드 케이크과 플랫 화이트를 주문했다. 그렇게 배가 고픈 상태는 아니었는데, 커피와 파운드케이크의 조화가 환상적이어서 순식간에 흡입해버렸다. 심지어 커피가 너무 맛있어서 롱 블랙까지 추가로 주문했다. 스타벅스에서 일을 하느라 치열하게 시간을 보냈던 것과 다르게 이곳에서는 책을 읽으며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플랏포커피를 포함한 제주에 있는 카페들은 직원분들이 기본적으로 너무 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 동네에 플랏포커피 같은 카페가 있었다면 점심시간마다 찾아가서 돈쭐냈을 게 분명하다.
오후 8시
숙소에 돌아오니 벌써 하늘이 어둑어둑해졌다.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까, 하다가 며칠 전부터 먹고 싶었던 굽네치킨을 주문했다. 평소 튀긴 치킨을 즐겨 먹는 편이라 아주 가끔 구운 치킨이 먹고 싶어질 때가 있는데, 이럴 때 먹지 않으면 며칠 동안 계속 생각이 나서 머리를 아프게 한다. 예전에는 꾹 참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그냥 맘 편하게 빠르게 시켜 먹고 해치워야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갈비천왕 시리즈 중에서 매콤한 게 있길래 주문했지만 마라샹궈로 단련된 내 강철 혀에는 그저 스윗했다. 적어도 맵슐랭 정도는 되어야 매운 치킨 반열에 오를 텐데. 아무튼 치맥으로 마무리한 일요일.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니, 이 정도면 꽤 훌륭했다.
난 몰랐어 제주가 이리 다채로운지 (현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