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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Sep 17. 2018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하는 이유 (1)

DMZ국제다큐영화제, 클로드 란츠만의 <네 자매> 를 보고 

1.

 지난 주말에 DMZ국제다큐영화제에 다녀왔습니다. 이 영화제는 대중에게 다소 생소하고 접하기도 쉽지 않은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또한 DMZ의 명칭에서 눈치챌 수 있듯이 비극의 상징이 되어버린 땅 위에 평화와 사랑을 새롭게 싹트게 하겠다는 지향점을 가진 영화제이기도 해요. 그래서 우리 세계 속의 소외된 사람들, 외면된 진실들을 성찰할 수 있는 작품들이 중심을 이룹니다. 영화제는 그동안 해외 거장들의 작품과 새로운 시선과 동향의 국내 다큐멘터리 작품들을 엄선하여 상영해왔는데, 올해로 10회를 맞이했습니다. 


 제가 영화제를 찾은 주말은 약한 비가 내리다 말다 하는, 어둡고 축축한 날이었어요. 상영관이 있던 일산 벨라시티는 미국 아울렛의 축소판처럼 깔끔하고 화려해서 그날의 하늘과는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려던 작품과는 더 어울리지 못했어요. 제가 선택한 영화제의 프로그램은 ‘클로드 란츠만 추모 특별상영’ 이였거든요. 독일과 폴란드 여행으로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저에게 가장 심오한 고민으로 남겨졌고, 이후 그것은 제게 비극의 희생자(또는 피해자)들의 말과 재현의 문제로 확대되었습니다. 그때 소개받았던 다큐멘터리 감독 중 한 명이 바로 클로드 란츠만Claude LANZMANN 입니다.




<쇼아> 포스터와 클로드 란츠만의 모습. (출처: 위키피디아) 감독은 <쇼아>를 포함한 일련의 작품들로 2013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명예황금곰상을 수상했다. 





 프랑스 감독인 클로드 란츠만은 <쇼아>(1985) 작품으로 대표됩니다. 장장 556분이라는, 9시간이 넘는 길이의 다큐에 그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증언을 담았습니다. 이 작품이 위대하게 평가 받는 이유는, 감독이 이 사건과 생존자, 그들의 증언을 이끌어내고 전달하는 방식에 대한 윤리적인 태도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홀로코스트가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재현으로 보여지는 것에 반대하여, 우리는 경험할 수 없는 과거와 피해자들의 기억에 신중하게 다가가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재현에 대한 그의 윤리적인 문제의식은 영화 장르에 한정되지 않는 묵직한 목소리입니다. 나중에 꼭, 클로드 란츠만과 그의 작품 <쇼아>에 대해 더 자세한 글을 쓸게요.  


그는 올해 7월, 92세의 나이로 타계했습니다. 이번 DMZ영화제에서는 그의 최근작인 <네이팜>과 유작인 <네 자매>가 특별상영 되었습니다. <네 자매>는 <쇼아>에 포함되지 않았던,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증언 다큐이죠. 저는 상영일정 때문에 <네 자매>의 파트 1 (파트 1과 파트 2로 나뉘어 상영합니다), ‘히포크라테스 선언’과 ‘발루티, 유대인 게토’ 편을 볼 수 있었어요. 154분이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한 순간도 집중을 놓지 못했던 이유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들의 예외적인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저의 관심사에 일치하는 측면도 없지 않았지만, 그들의 말을 조금이라도 듣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중간에 자리를 뜰 수 없었을 거예요.  (게속)






*DMZ국제다큐영화제는 9월 13일부터 20일까지, 경기도 일산 일대의 영화관에서 진행됩니다. 다큐멘터리 상영 외에 다양한 포럼과 강의, 시민참여 프로그램 등이 있으니 살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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