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한별 아나운서 Oct 05. 2020

그렇다면, 과연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가?

[AI가 방송하면, 아나운서는 뭐해? #07]

아나운서 콘텐츠, 브이로그가 답일까?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고,

직접 참여도 하고 있습니다.

늘 카메라 앞에만 있다가,

카메라 뒤에서 기획하고 조율하며,

직접 촬영하고 편집까지 하다 보니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더 자유롭게 콘텐츠에 다가갈 수 있고,

본업인 아나운서로 방송을 할 때도

시야가 훨씬 넓어졌습니다.


‘지금 컷은 B롤로 쓰이겠구나. 다음 컷은 풀샷일테니, 조금 더 움직임을 크게 가져가자’

아나운서로 방송을 할 때도

PD의 눈높이에서, PD의 의도와 편집 방향이 보입니다.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고,

적절한 타이밍을 파악해서

출연자와 제작 의도에 맞게

적절한 밀고 당기기, 완급조절이 가능합니다.

프로그램을 넓은 시야에서 보게 되니

한결 여유가 생겼습니다.  


보이는 것이 많을수록

내 콘텐츠를 만들 때 욕심도 많아졌습니다.

더 화려한 편집 효과를 넣고 싶었고,

더 멋진 연출을 위해 장비에 욕심도 부리게 됐습니다.

다행이 주변에는 직종별 전문가들이 있었습니다.

촬영, 편집, 음향, 조명, 색보정 등

점점 커지고 무거워지는 콘텐츠를 마주하며

오히려 뿌듯해하기도 했습니다.

점점 콘텐츠가 좋아진다고 믿었습니다.

겉으로는 점점 더 ‘있어 보이는’ 총을 갖게 됐습니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

이 화려한 총 속의 총알은 과연 어떠한가?

내가 보다 정교한 ‘화살’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총 속의 총알을 단련하려는 노력은 얼마나 했을까?

때로는 그 괴리가 커서 자괴감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점점 더 편집은 쉬워지고,

촬영은 간편해지는 시대를 겪다보니,

영상을 만드는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럴 때 돌아보게 되는 것은

내가 갖고 있는 총알의 퀄리티입니다.

더 이상 총의 성능이나,

총을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가 아니니까요.

중요한 것은 총알, 즉 콘텐츠.

바로 우리 아나운서들이

파고 들어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드는 지점입니다.




점점 콘텐츠가 좋아진다고 믿었습니다.
겉으로는 점점 더 ‘있어 보이는’ 총을 갖게 됐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속의 '총알'은?


저 역시 그랬고,

처음 시작하기에 가장 접근성이 좋은 콘텐츠는

‘브이로그’일 것입니다.

 내 일상을 나의 시선으로 남기고,

자막과 음악을 입히고,

우리 아나운서들은 ‘내레이션’까지 가능하니 얼마나 좋은가요.

마치 나의 ‘일기’를 영상으로 남겨

선물 받는 느낌입니다.


‘아나운서 브이로그’

오잉? 그 방송에서 보던 아나운서의 브이로그?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합니다.

처음에는 주목을 많이 받기도 하고요.

중요한 건 그 다음입니다.

나는 매번 다른 내용으로 브이로그를 찍을 수 있을까?

방송과 다른 나의 모습을 사람들은 궁금해 할까?

고민이 많이 되더군요.


가끔씩 진행하는 영상 제작 강연에서

‘브이로그’ 관련 질문이 많습니다.

저는 중요한 건 ‘맥락’이라고 얘기합니다.

브이로그라는 건 내 일기 같은 것.

나에게는 선물처럼 소중한 순간이지만,

다른 누군가도 재밌게 보기 위해서는

‘맥락’이 중요합니다.

물론 연예인과 아이돌처럼

‘존재’만으로 선물 같은 누군가는

그들이 화면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이 보겠죠.

하지만 저 같은,

유명하지 않은 아나운서에게는

‘맥락’이 필요했습니다.


정말 냉정하게 생각했습니다.

바람과 현실은 다르니까요.

그래서 저는 정말 좋은 기회였던 뉴미디어팀을 나왔습니다.

제가 만드는 콘텐츠와 뉴미디어팀의 콘텐츠는

‘맥락’이 맞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뉴미디어에서 방향이 맞지 않으면

과감하게 내려놓는 결단도 필요합니다.

깨달았다면,

그 선택은 빠를수록 좋고요.


사실 시청자가 선택하는 것은

‘맥락’ 속의 우리이지 않은가요?

뉴스 속의 아나운서,

중계나 방송 속의 아나운서.

그 맥락을 벗어나면 선택 받기 쉽지 않은 것이 냉정한 현실입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끝나고

데뷔한 연예인이 고전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죠.

서바이벌이라는 ’맥락’이 사라졌으니,

‘새로운 맥락’ 속에 그들을 초대해야 합니다.

방송이 지겨워서 유튜브를 선택한 사람들의 선택을 받으려면,

방송과는 다른 ‘맥락’을 보여줘야 합니다.

아나운서 브이로그도

그 연장선에서 출발해야만 하겠지요.


‘아나운서’를 내려놓은 아나운서 브이로그 말이죠.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시청자가 선택하는 것은
‘맥락’ 속의 우리이지 않은가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가수 박지헌 씨, 치과의사 김형규 씨, 아나운서 김한별



과연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야 할까?


4명의 아빠들과 1명의 전문가가 있습니다.

아나운서, 치과 의사, 가수, 파일럿,

4명의 아빠는 전부 직업이 다릅니다.

전문가는 ‘육아’ 관련 대한민국 최고입니다.

이 5명의 대화를 수많은 사람들이 보면서 소통합니다.

코로나 시대, 보건복지부와 함께한 온택트 토크 콘서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더 많은 아빠들과 소통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더 솔직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녹색 어머니회에 아빠가 나가도 되나요?’

‘제가 자주 가는 지하철역 남자 화장실에서는 기저귀를 갈 수가 없습니다.’

즉각적인 정책 반영도 나왔습니다.

많은 부모님들의 얘기를 듣고 전문가의 조언이 함께했습니다.

서로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아빠들도

이 시간을 통해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각자의 콘텐츠와 채널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콜라보 제안도 오고갔습니다.

이렇게 뉴미디어에서의 기회는 무궁무진하니까요.

그리고 우리에게는

육아, 가족의 행복,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공통의 ‘맥락’이 있었으니까요.



육아, 가족의 행복,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공통의 ‘맥락’이 있었습니다.



뉴미디어는 즉각적인 반응이 핵심입니다.

내 콘텐츠에 대한 반응이 바로 나타납니다.

15분.

영상이 릴리즈 되고,

함께 댓글을 남기다 보면

영상의 성패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늘 겸손해집니다.

냉정하게 저는 절대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제 영상도 절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느낍니다.

대신 오늘 댓글을 통해 얻은 피드백을

다음 영상에 어떻게 녹일지 고민합니다.


누군가 유튜브 채널을 두고

‘식당 창업’에 비유합니다.

세상에 수많은 식당이 있듯,

수많은 유튜브 채널도,

영상도, 콘텐츠도 있죠.

모든 식당이 대박이 나거나,

맛집으로 줄을 서는 식당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렇게 분주한 식당보다,

소박하지만 손님 한분 한분을 자세히, 또 오래 볼 수 있는

‘작은 심야식당’을 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 콘텐츠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내 색깔, 내 생각이 그대로 묻어나는,

그래서 인지도보다는 지지도가 높은 채널, 그런 콘텐츠.

결코 특별하지 않는 제가

특별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스트레스 받고 싶지는 않고 싶어 졌습니다.

저의 꿈은 결코 ‘유튜버’ 자체가 아니거든요.

그렇게 온전히 나를 닮은 콘텐츠는

소위 ‘떡상’하지 않아도,

나에게 많은 기회를 줍니다.

선택의 기회가 넓어지다 보면,

내 색깔과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이 생깁니다.


영상은 결코 혼자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더군요.

같은 회사로 묶인 것은 아니지만,

서로의 장점을 주고받으며 함께하다가

또 헤어질 수 있는 느슨한 연대의 모임.

그런 기회들이 어쩌면 우리가 콘텐츠를 만들고,

나를 보여주는 일종의 ‘브랜딩’의 과정으로

발전 될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방송국을 넘어, 직종을 넘어,

뉴미디어 세상에서만 가능한 연대.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들도,

가볍게 각자의 카메라 하나 들고(꼭 카메라가 없더라도)

만나서 함께 콘텐츠를 만들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결코 특별하지 않는 제가
특별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스트레스 받고 싶지는 않고 싶어 졌습니다.
저의 꿈은 결코 ‘유튜버’ 자체가 아니거든요.
이전 06화 포스트 코로나, 아나운서에게는 위기일까? 기회일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