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한별 아나운서 Sep 25. 2020

포스트 코로나, 아나운서에게는 위기일까? 기회일까?

[AI가 방송하면, 아나운서는 뭐해? #06]

코로나 19, 모든 것을 집어 삼키다


퇴사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밖에서 보는 KBS는 ‘가라앉는 배’ 같았고,

하루라도 빨리 탈출하고 싶었습니다.

(‘올드미디어의 중심에서 뉴미디어를 외치다 #01’ 글 참고)


가장 혁신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뉴미디어팀’에서조차,

절대 바뀌지 않는 ‘한계’를 경험하고 나서

그 생각은 더 명확해졌습니다.

당시 바로 바다에 빠질 수는 없어서,

구명조끼라도 입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유튜브와 집필은 저에게 많은 기회를 줬습니다.


에세이 <라테파파>를 통해 초대된 각종 강연에서,

맘카페에 가입할 수 없어서 작은 정보에도 목말라 있는

‘아빠’들과의 만남과 공감은

자연스럽게 여러 프로젝트로 이어졌습니다.


여성가족부 산하 ‘양성평등진흥원’에서는

감사하게도 유튜브 콘텐츠 제작을 제안해주셨고,

회사의 승인을 받고 또 다른 도전을 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뉴미디어팀의 활동을 유심히 지켜본 한 대학교에서는

겸임교수 제안까지 해주셨습니다.

마치 대학생이 된 것처럼 부푼 꿈에 부풀어

‘여대 교수님’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던 2020년 초,

코로나 19가 터졌습니다.

그리고 모든 계획은 무기한 연기 되거나 폐지되었습니다.

코로나 시대의 영향력을 직접적으로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퇴사 이야기는 쏙 들어갔습니다.

‘가라앉는 것’처럼 보이는 배는

예상치 못한 코로나 시대에

나와 내 가족을 든든히 지켜주고 있었습니다.

일단 지금은 그 배에 의지해서

공부를 하고 나를 더 강하게 만들 ‘준비’를 해야 하는 때였습니다.


예상도 못한 코로나가 모든 것을 집어 삼킨 시대,

이 문을 열고 창밖을 바라볼 때

우리는 더 이상 ‘미디어’라는 바다 위에 있지 않을지 모릅니다.

최근 모 방송국에서 딥러닝 기술을 활용한

‘인공지능 아나운서’ 개발에 협력하기로 했다는 기사까지 나오는 상황.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예측하는 것도 조심스러운 지금.

지금은 ‘판’을 읽어야만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나운서는 물론 ‘방송’ 조차 존폐가 불분명한 상황을

냉정하게 직시해야하는 때였습니다.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방송사마다 ICT 관련, 방송의 미래와 환경을 연구하는 곳이 있습니다.

(KBS의 경우 공영 미디어 연구소)

하다못해 방송국의 홍보팀 매주 회의 자료만 봐도

우리 방송에 대한 전반적인 환경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이전의 세상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다면,

방송도 아나운서도 이전과 같은 방식을 고수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정말 절실하게 ‘판’을 들여다봐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했습니다.






퇴사를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판'을 들여다봐야 하는 시기였습니다.
정말, 절실하게.


포스트 코로나, 아나운서에게는 위기일까? 기회일까?


모든 것이 변하고,

예측조차 불가능한 코로나 이후의 시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모두가 불안한 지금.

그렇다면 방송에 몸담고 있는 아나운서를 둘러싼 것들 중에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봤습니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아나운서의 영역이 하나둘 무너지고,

절대 빼앗기지 않을 것 같던

방송의 영역도 잠식되는 지금,

과연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방송을 활이라고 했을 때, 아나운서는 화살이다’


실제 신입사원 연수를 받을 때,

한 선배가 해준 말입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말 좋은 ‘화살’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어떤 방송이 맡겨져도 완벽하게,

제작진과 시청자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보다 빠르고 멀리 갈 수 있게,

보다 날카롭고,

정교한 화살이 되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근데 육아휴직을 위해

잠시 방송과 아나운서라는 직업에서 벗어나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 사람들이 활을 쓰던가? 만약, 모두가 활이 아닌 총이나 대포를 쓰고 있다면?’



엄밀히 말하면 우리는 ‘공중파 방송국’이라는,

‘아나운서’라는 기득권(사실 지금 기득권인지도 잘 모르겠으나)을

놓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만든, 이제는 우리만 인정하는 것일지도 모르는

그 ‘기득권’만 내려놓는다면

사실 아나운서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있다고 믿습니다.

물론 이건 방송국 안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죠.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온택트’로의 변화에서,

눈앞의 존재가 아닌, 카메라 너머,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능력은

아나운서의 가장 큰 자산이지 않은가요?

원래 우리는 그 능력을 바탕으로 성장했으며,

그렇게 훈련되어 왔습니다.

진행이라는 영역은

특정 짓지 못할 만큼 다양하고 넓으며,

플랫폼의 영역을 무너뜨린 우리에게 오는 기회는

훨씬 다양할 수 있으니까요.


화살 자체가 아닌,

조준해서 명중시키는 본질적인 ‘능력’에 초점을 맞춘다면 말이죠.

우리가 속한 방송국의 변화를 기다릴 수 없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방송을 활이라고 했을 때, 아나운서는 화살이다' 라던 선배의 말.
근데, 지금 사람들이 활을 쓰던가?
만약, 모두가 활이 아닌 총이나 대포를 쓰고 있다면?’




이전 05화 방송국 뉴미디어 팀이 성공하기 힘든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