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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별 아나운서 Feb 10. 2021

이제는 ‘아나운서’라는 이름을 놓아주려 합니다

[AI가 방송하면, 아나운서는 뭐해? #10]

그들은 더 이상 ‘아나운서’를 궁금해 하지 않더라


얼마 전,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뉴미디어와 크리에이터>에 대한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맞게, 

줌(Zoom)을 이용한 화상으로 말이죠.


그들은 이미 익숙했습니다.

일방적으로 연사가 전달하는 강의가 아닌,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활용하면서

함께 토론하는 시간이 됐습니다.

저 역시 ‘아나운서’가 아닌,

‘크리에이터’로서 함께한 자리였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에게 배운 것도 많고,

신선한 에너지도 많이 받을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였습니다.


“아이폰 12 미니와 프로 맥스 중에 고민이에요.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에는 

작고 가벼운 미니가 유리하지만,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은

카메라도 좋고 용량과 배터리도 넉넉한 

프로 맥스가 답이라서요”


충격이었습니다.

그들이 스마트 폰을 선택하는 이유는 

바로 ‘콘텐츠’였습니다.

그것도 소비와 생산,

스마트 폰을 활용하려는 

자신의 목적이 명확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그들은 자신의 콘텐츠와 채널을 갖고 있었습니다.

유튜브와 SNS, 스푼라디오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방송을 만들고,

직접 진행자나 DJ가 되기도 했습니다.

스마트 폰 하나로 스스로 미디어가 될 수 있고,

콘텐츠를 만드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친구들이었습니다.

몇몇 학생들은 스푼 DJ가 되기 위해 

성우 학원을 다니기도 하고,

플랫폼을 이용해서 용돈을 벌고 있는(후원, 1스푼에 110원),

그 어렵다는 ‘수익을 올리는’ 크리이에터였습니다.


‘스마트 폰이 공부에 방해될 것’이라는

어른들의 생각은 기우였습니다.

그들에게 스마트 폰은 이미 일상이었고,

오히려 스마트 폰을 알아서 통제하고

활용하는 방법도 잘 알고 있더군요.

공부할 때 스마트 폰을 만지지 않기 위해

일부터 ‘타임 랩스’를 찍는다고 했습니다.

타임 랩스 영상 속 시계가 돌아가는 것으로 

자신의 공부 시간을 인증하고,

그것을 콘텐츠로 만들어 공유합니다.

자기 자신과 누군가에게 동기부여가 되고

그 콘텐츠를 활용해서 또 다른 콘텐츠를 만들어 갑니다.


누구나 DJ가 되어 방송을 할 수 있는 스푼라디오


그들은 저의 원래 직업을 알고 있었지만,

아나운서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았습니다.

아나운서에 대해

‘누가 써준 원고 읽는 사람 아니에요?’라는 장난 섞인 질문에

‘절대 아니’라고 반박하지 못 했던 이유는,

그들은 이미 스스로 기획하고 원고를 쓰며,

직접 찍고 편집하는 ‘콘텐츠 생산자’였기 때문입니다.

생산자이면서 소비자인,

이미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일종의 놀이인 그들에게

저는 ‘아나운서’ 보다 ‘크리에이터’로서 더 궁금한 존재였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아나운서’를 궁금해 하지 않더군요.




그들을 이미
콘텐츠를 만드는 생산자이자
수익을 올리는 크리에이터였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아나운서'를 궁금해 하지 않더군요.




이제는 ‘아나운서’라는 이름을 놓아주려 합니다


뉴미디어 팀 ‘플레이버튼’에서

저의 역할은 ‘아나운서’가 아니었습니다.

진행은 기본이고,

기획, 촬영, 출연, 편집까지 혼자 해내는 ‘크리에이터’였습니다.

심지어 섭외와 조명, 음향까지 해야 했으니

말 그대로 ‘1인 크리에이터’였죠.


이미 그런 시대가 온 것 같습니다.

PD나 기자, 아나운서라는 방송국에서의 직종을 허무는,

그런 새로운 직종이 필요한 시대 말이죠.

모든 일을 전부 혼자 해내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혼자 할 줄 알아야 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혼자 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장비나 환경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물론 ‘잘’ 만들기 위해서 협업은 필요합니다.

분업이라는 것은 효율적이죠.

하지만 지금처럼, 철저하게 분업화 되어,

자신의 ‘영역’만’을 고집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우선 내가 원하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확실히 파악해야 합니다.

콘텐츠를 혼자 만드는 것이 가능할 때,

내가 필요한 영역이 보입니다.


더 ‘잘’ 만들기 위한 필요성을 파악했다면,

협업은 그때 합니다.

 없는 능력을 가진 사람과의 콜라보,

그 이후에는 쿨하게 헤어지고,

필요하면 또 만나는 협업.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크리에이터’이기 때문에

소속보다는 프로젝트의 필요에 의해 만나고 헤어지는 쿨한 협업.

각자가 크리에이터로 자신의 콘텐츠로 얘기하는 시대.

이제는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비롯한 소위 뉴미디어는

콘텐츠 제작자와 소비자(시청자)의 거리를 좁혔습니다.

예전에는 아나운서가 그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그 간격이 너무 좁아서 아나운서가 끼어 들 틈이 없습니다.

역할도 제한적이고,

아예 필요 없는 콘텐츠도 넘쳐나죠.

날이 갈수록 콘텐츠는 더 친절해지고,

제작자와 시청자가 댓글로 직접 소통하는 구조에서

단순한 전달자는 필요 없습니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의
간극이 줄어들었습니다
단순한 '전달자'는
필요없는 세상이 와버렸죠
전문 전달자인 아나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근 우리나라에서 열풍를 일으키고 있는,

음성을 매개로 한 SNS 플랫폼 <클럽하우스>에서는

누구나 모더레이터, 스피커가 되어서 얘기합니다.

모두가 같은 선에서 얘기하고 듣고, 생각을 공유하죠.

'기술적으로 뛰어난' 전달자의 역할은

클럽하우스에서는 필요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콘텐츠, 즉 내공이 필요할 뿐이죠.


음성을 이용한 SNS 플랫폼 <클럽하우스>


더 이상 전달자가 필요 없는 세상이라면,

전문 전달자인 아나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송이 줄고, 역할이 줄었다면서

푸념만 하고 있어야 할까요?

더욱 거리가 좁아진 제작자와 소비자의 간극을

멀리서 바라봐야만 할까요?


우리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의 콘텐츠를 말이죠.

아나운서라는 이름을 내려놓고.


‘아나운서’라는 이름을 놔줄 수 있어야, 

아나운서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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