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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킴 starkim Mar 23. 2018

먹이는 일, 그 위대함에 대하여

나는 뭐든 빨리 배우는 편이다. 배우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 눈치도 빠른 편이다. 남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따라 한다. 육아를 할 때도 마찬가지. 미리 책도 많이 보고, 블로그, 다큐멘터리도 찾아보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난 다른 사람들의 육아 노하우를 배우고 있다. 아내와 어머니, 장모님께도 많이 배운다. 육아에 익숙해지려 노력했다. 어떤 영역은 아내보다 잘 해낸다고도 생각됐다. 그렇게 좋은 아빠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어 뿌듯했다. 노력하면 무엇이든 잘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지만. 


하지만 늘 작아지는 영역이 있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영역. 바로, 아이를 먹이는 일이었다. 아내는 그 어렵다는 완모(100% 모유 수유)를 한다. 모유 수유를 하는 아내를 옆에서 볼 때마다 여성의 위대함을 느낀다. 모유로 아이가 쑥쑥 자라니 그 모습이 경건해 보이기까지 한다. 아빠는 절대 할 수 없는 성역이다. 존경스럽다. 

“윤슬아 쭈쭈 먹자.” 

아내와 아이가 눈을 맞추며 교감하는 순간. 아이는 짜증을 내다가도 –짜증의 원인이 배고픔이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이내 평온을 되찾는다. 가끔 허무할 때도 있다. 둘 사이에 아빠가 끼어들 방법은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빠는 그 사이 묵묵히 다른 집안일을 한다. 아이와 아내의 교감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그 시간을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이다. 




늘 작아지는 영역이 있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영역. 
바로, 아이를 먹이는 일이었다. 



아내가 출근하거나 외출할 때, 그 위대한 ‘먹이는 일’은 아빠 몫이 된다. 밥때가 되면 아내가 유축해 놓은 모유를 준비한다. 준비 과정부터 일이다. 씻고, 소독하고, 온도를 맞춰 녹인다. 최적의 온도(알맞은 온도가 되면 봉투의 웃는 얼굴이 파랗게 변한다)를 기다린다. 준비 자체가 번거롭고 힘들다. 맞춰야 할 조건도 많다. 그만큼 먹이는 일은 쉽지 않다. 여기에 아이가 울거나 보채기라도 하면 초보 아빠들은 패닉에 빠진다. 

‘내 젖을 물릴 수도 없고….’ 

그러나 아내가 모유 수유를 할 때는 이 모든 과정이 생략된다. 모유의 힘이다. 외출할 때 짐도 훨씬 줄어든다. 분유, 젖병, 뜨거운 물, 보온병, 여분의 그것들이 모두 생략된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라면 언제든 가능한 일이다. 가고자 하는 장소의 수유실 정보나, 밖에서도 남들 시선을 피해 수유할 수 있는 가림막 정도만 챙기면 된다. 모유의 위대함. 존경한다. 엄마들.  


준비해야 할 것도 많지만, 먹이는 것도 전쟁이다. 절대 쉽지 않다. 엄마 모유가 아니면 아이는 일단 경계한다. 익숙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아이의 감정은 순식간에 변한다. 원하는 젖병이 날마다 달라지기도 한다. 아이가 먹기 편한, 원하는 자세를 생각하면서 동시에 먹이는 타이밍도 생각해야 한다. 울 때는 잘 안 먹는다. 억지로 먹일 수도 없다. 억지로 먹이려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아이는 이미 기분이 상해 있다. 내 경험상 딸꾹질할 때나 아이가 잠에서 덜 깬 상태에서 먹이면 잘 먹었다.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밥을 먹이려다 보니 아이를 재우는 스킬이 늘었다. 

밥을 먹인 후에는 트림을 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몸을 밀착해야 하는데, 이때 교류하는 아이와의 느낌이 참 좋다. 밥을 열심히 먹고 나면 아이는 잠시 지쳐 있다. 그 상태 그대로 쉴 수 있게 천천히, 부드럽게 아이의 등을 쓰다듬는다. ‘젖 먹던 힘까지’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아이는 그만큼 힘들게 밥을 먹는다. 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잘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충분히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감사해야 한다. 아이는 트림으로 치열했던 식사 시간을 마무리한다. 잠시 후 아이는 배변을 하고, 아빠는 아이의 다음 식사를 준비한다. 이런 과정의 반복. 반복은 절대 끝나지 않는다. 





먹이는 것의 위대함. 
존경한다. 엄마들.


이렇게 먹이는 일은 쉬운 게 아니다. 아이는 놔두면 알아서 크는 존재가 아니다.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영양적인 보충이 필요하다. 먹으니 크는 것이다. 50일, 100일 무서운 속도로 자라는 아이들의 성장에는 보이지 않는 부모의 노력이 숨어 있다. 모유 수유를 하는 엄마는 먹는 것도 조심해야 하고, 꿀잠도 포기해야 한다. 아이를 위해 먹고 싶은 것, 자고 싶은 본능을 누르는 것이다. 먹이는 일의 위대함이다. 

평범한 일상의 반복으로 아이가 자란다. ‘자식이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르다’던 말의 의미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참 특별한 일을 하는 우리 엄마들, 그 영역에 직접 들어갈 수는 없어도 여러 형태로 육아에 참여하는 아빠들, 모두 존경한다. 스스로 크는 아이는 없다.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다. 부모는 정말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 우리 모두에게 박수를.





스스로 크는 아이는 없다. 
부모는 정말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 
우리 모두에게 박수를.



<라테파파> 먹이는 일, 그 위대함에 대하여-김한별



<라테파파> KBS 김한별 아운서 육아대디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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