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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킴 starkim Apr 06. 2018

라테파파 : 작가 인터뷰

 * '육아는 어느 한 사람의 몫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은 이전부터 하신 생각인가요? 아니면 육아를 하면서 깨달은 부분인가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보고 배운 부모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일요일 아침은 늘 된장찌개를 먹었어요. 아침에 된장찌개 냄새가 나고, 추운 겨울에도 창문이 활짝 열렸죠. 아버지와 함께 대청소를 하는 거예요. 저와 동생은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고요. 집 안의 모든 문을 열려있는데 단 한 곳, 안방만 닫혀 있었어요. 어머니가 주무시고 계신 곳이었죠. ‘엄마에게 휴식을!’ 아버지의 뜻이었어요. 어머니는 일요일 오전 늦잠을 주무시고, 저와 동생은 청소를 하고, 아버지는 (유일하게,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요리인) 된장찌개를 끓이셨죠. 자연스럽게 보고 배운 것 같아요. 육아, 집안일은 ‘함께’ 하는 것. 생각도 분위기도, 가정 안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집안일에 대한 남녀의 생각 차이가 출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역할의 문제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작가님께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저는 운이 좋은 경우입니다. 사실 저도 많은 생각을 하지는 않았어요. 저희도 아빠, 엄마가 처음이었으니까요. 뭐가 중요한지, 어떤 인식이 필요한지 몰랐죠. 아이가 세상에 처음 태어난 날, 저희도 아빠, 엄마가 된 첫날. 우리 세 식구는 함께 병실에 있었어요. ‘모자동실’이라는 제도가 있더군요. 엄마, 아빠가 힘들더라도 태어난 순간부터 부모와 아이가 함께 지내는 제도였어요. 어떻게 보면 잘 몰랐기 때문에 할 수 있었죠. 얼마나 힘든 건지를 가늠할 수 없었으니까요. 처음 부모가 된 두 사람과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아이, 미숙한 세 사람은 작은 병실에서 거의 밤을 새웠습니다. 저와 아내는 아이를 안는 것도, 설탕물을 주는 것도, 씻기는 것도 같이 배웠어요. 처음부터요. 전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처음 배울 때부터 ‘엄마 역할’, ‘아빠 역할’이 없었던 거죠. 처음부터 ‘함께’. 처음부터 역할이 나뉘지 않으니, 당연히 ‘내 일’이라는 책임감이 들더군요. 모든 것이 여기서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함께’, ‘내 일’이라는 생각. 





 


모든 것이 여기서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함께’
‘내 일’이라는 생각. 




* 남성 육아휴직이 보편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육아휴직을 결심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육아휴직에 대한 결심이 흔들린 적은 없나요?  


결심이 흔들린 적은 없어요. 아이를 만나기 두 달 전에 교통사고를 겪고, 아이를 만나면서 제 인생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가족’이라는 게 명확해졌거든요. 물론 어려운 점도 있었습니다. 육아휴직을 마음먹고 회사에 이 사실을 알리면서 수많은 ‘설득’과 ‘설명’이 필요했죠. 법적으로 정해진 제도지만, 남성 육아휴직이 흔하지 않다 보니 ‘진짜’ 하는지를 많이 물어보셨어요. 회사에서 가장 바쁘고,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방송도 제일 많이 하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오히려 제 결심은 굳건해졌어요. '아이의 성장과 행복을 놓칠 수는 없다.' 어쩌면 가장 화려한 순간에, 제가 육아휴직을 선택한 이유였죠. 


 


* 아이가 태어나면 대개 엄마들이 출산휴가에 이어서 육아휴직을 하는데요, 아내보다 먼저 육아휴직을 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육아휴직 시기를 결정한 기준이 궁금합니다. 


일단 ‘주말 부부’라는 상황이 많이 작용했어요. 현재 연고도 없는 지방에서 근무하는 저로서는, 가족들을 포함한 모든 것이 서울에 있었으니까 육아휴직을 선택한다면 제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의 꿈도 일도 중요하지만, 가족과 함께하지 못한다면 의미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도 바로 육아휴직을 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고요. 과감하게 제가 결단을 내렸습니다.  

‘시기’에 대한 고민도 많았습니다. 아이가 아빠의 육아휴직을 기억할 수 있을 때 쓰는 건 어떨까? 하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지금 눈앞에 있는 행복을 포기할 수는 없었거든요.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저희에게 정답은 ‘바로 지금’이었을 뿐이에요. 


 

*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육아를 하셨는데요,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육아는 체력이더군요. 특히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의 생체리듬에 적응하는 게 정말 힘들었습니다. 저는 육아휴직을 하기 바로 전날까지 '새벽뉴스 앵커'였습니다. 보통 사람들과도 조금 다른 시간을 살았고, 당연히 생활 패턴도 달랐죠. 그런 상황에서 3~4시간에 한 번씩 깨는 아이를 챙기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제 몸 하나 챙기기도 벅차더군요. 아이가 잠들기도 전에 제가 먼저 잠들기도 일쑤였고요. 한동안 (아내가 출산 휴가에서 복직하기 전) 아내는 저와 아이를 동시에 챙겨야 했습니다. 미안했죠. 함께 육아를 하려고 육아휴직을 했는데 아내에게 짐만 되고 있으니. 제 몸부터 추스르기 시작했습니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체력도 키우고요. 시간이 지나니 금방 회복되긴 했습니다만 참 힘들었던 게 기억나네요.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지금 눈앞에 있는 행복을 포기할 수는 없었거든요.




* 퇴근 없이 일상이 반복되다 보면 우울감이 찾아오기 쉬운데요, 외롭고 지치고 힘든 순간을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육아하는 모든 부모가 마찬가지지만 아이 때문에 힘들고, 결국 아이 덕분에 힘이 납니다. 방법이 있나요? 내가 아니면 목도 못 가누는 아이인걸요. 마냥 의지하고,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존재. 그래도 신기한 게, 그렇게 답답한 순간에도 아이의 웃는 모습, 잘 먹고, 잘 싸는 모습에 힘이 나더라고요. 저는 오히려 안에서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 너무도 당연하던 것들이 특별하게 다가와요. 평범하던 시간 속에서 의미가 보이더군요. 라디오를 듣다가 좋아하던 음악이 나오면 기쁘고요. 자연스럽게,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물론 혼자서는 힘드니까 배우자가 함께 이해하고 보듬어줘야겠죠. 제가 아내에게 힘을 많이 얻었던 것처럼. 제가 다시 일을 하면서도 그때의 마음을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그때 힘들었던 마음, 위로받고 싶던 생각들을 아내도 똑같이 할 수 있겠다. 그 마음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육아휴직이 저에게는 큰 의미입니다. 


 

* 육아휴직을 하고 나서 달라진 점이 있나요? 


공감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의 상태나 생각을 읽으려 많이 노력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늘었어요. 또한, 아내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것도 저에게는 큰 의미입니다. 회사에 있었다면 절대 몰랐을 시간을 알게 된 거죠. 예를 들어 매일 듣는 ‘언제 들어와?’라는 말속에는 참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단순히 들어오는 시간을 묻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더군요. 외롭다는 의미였습니다. 감정적인 외로움. 힘들고 외롭다는 얘기를 꾹꾹 참았다가 돌리고 돌려서 한 얘기였어요. 밖에서 힘든 일 많겠지만, 집에서 아이를 보는 것도 힘든 일이라는 것, 그래서 그 마음을 좀 알아달라는 의미였어요.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함께하기만 해도 안정감이 들더군요. 온종일 아이와 있다가 그나마 ‘말이 통하는’ 존재가 함께할 때 얼마나 기쁜지, 그 마음을 좀 알아달라는 거였어요. 그런 마음들을 알게 된 것. 그리고 그렇게 공감한 것들을 표현하는 것에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육아휴직을 통해서 그 마음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육아를 통해 저도 많이 성장하고 자란 것 같아요. 어떤 선배의 말처럼 육아(育兒)는 육아(育我)더군요. 


 

* 육아휴직을 반드시 했으면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세상의 모든 아빠가 육아휴직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기간이 중요한 건 아니에요. 육아휴직을 경험하면서 아이와 아내, 그리고 가족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거든요. 세상을 보는 눈이 정말 달라집니다. 저도 아직 부족하지만, 육아휴직을 하면서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은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많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상황이나 여건도 아직 육아휴직을 생각하는 아빠들에게 녹록지 않고요. 우리 사회는 아직 육아휴직을 생각하는 아빠들에게 절대 친절하지 않아요. 하지만 누군가는 시작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러다 보면 세상도 조금씩 바뀌지 않을까요? 가족과 함께하고 싶은 평범한 아빠들이 육아휴직을 위해 큰 용기를 내야 하는 ‘슈퍼맨’이 되지 않아도 되는, 누구나 쉽고 즐겁게 육아휴직을 생각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육아를 통해 저도 많이 성장하고 자란 것 같아요. 
어떤 선배의 말처럼 육아(育兒)는 육아(育我)더군요. 



 

* 어떤 아빠가 되고 싶은가요?  


오랜만에 부모님이 계신 집에 갔다가 우연히 어릴 때 썼던 일기를 봤어요. 제 꿈은 ‘좋은 아빠’였습니다.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요. 그런데 이게 참 쉽지 않은 일이더군요. 아빠가 되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던 일들을 알게 되면서 우리 부모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게 됐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참 잘해오신 거였어요. 좋은 부모가 되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좋은 아빠’라는 평가는 내가 하는 게 아니잖아요. 먼 훗날 윤슬이가 아빠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겠지요. 저는 최선을 다했는데 윤슬이는 다르게 느낄 수도 있고요. 저는 그저 ‘포기하지 않는’ 아빠가 되고 싶어요.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꿈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고요. 조금 느리더라도 아이와 아내와 발맞춰 가면서, 일상의 속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일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무엇보다 윤슬이의 속도에 맞춰서 ‘기다려주는 일’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욕심이 많아지더라고요. 내 마음 같지 않아서 힘들기도 하고요. 내 마음대로 되는 아이가 과연 있을까요? 기다려주는 것. 포기하지 않는 것. 거기까지가 제 몫이겠죠. 윤슬이가 지금의 제 생각을 꼭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참 행복할 것 같습니다. 


 

* <라테파파>를 어떤 분들이 읽으면 좋을까요? 


자신과의 화해가 필요한 사람들이요. 사랑과 행복에 대해 고민하는 많은 분들이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이 책은 ‘육아 책’이 아닙니다. 제가 육아에 대해 얘기할 정도로 육아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저 사랑과 행복에 대해 고민하는 한 서툰 남자의 성장기입니다. 혼자도 행복했지만, 둘이라 더 즐거웠고, 아이를 만나 비로소 완성되어가는 충만한 감정이 참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변해가는 나의 상황과 환경에 혼란스럽고 힘들기도 했거든요. 그때 느낀 감정을 담담하게 들여다봤습니다. 결국 사랑과 행복,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확인하는 시간이었어요. 그 과정을 통해서 저는 제 자신과 화해할 수 있었고, 비로소 진짜 원하는 가치를 지금도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고민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분들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공감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요즘 크고 작은 공간에서 많은 분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있어요. SNS나 블로그, 브런치에도 많이 찾아주시고요. 정말 감사합니다. 책을 써서 좋은 점은 이렇게 많은 분들과 나눌 이야깃거리가 늘어난다는 거예요.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는 분들의 얘기를 들으며 저도 많이 배우거든요. 최대한 많은 분들과 얘기를 나누고 싶어요. 가능하면 다양한 공간에서 만나고 싶어서 열심히 기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글 외에 이야기를 나눌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책과 관련된 ‘낭독, 대화 콘텐츠’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 채널이나, SNS, 블로그 등에 올리고 있어요. 기회가 되면 다양한 분들을 초대해서 함께 대화하려고도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민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시절을 따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기록들이 먼 훗날 저에게 또 다른 에너지와 기회를 줄 수도 있겠죠. 항상 도전하면서 깨어있으려고, 꿈꾸려고 노력합니다. 이것도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되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라테파파>를 좋아하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행복해지고 싶었습니다. 단지 그것뿐이었습니다. 제가 행복해지고 싶었고, 아내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고, 그렇게 행복한 부모의 마음을 아이에게도 자연스럽게 전해 주고 싶었어요. 행복에 집중하고, 늘 붙잡고 기록하다 보니 이렇게 책도 내고, ‘네가 웃으면’이라는 노래도 발표했네요. 행복을 기록하며, 저 역시 행복해졌습니다. 모르던 것들을 알게 되고,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더군요. 행복을 위한 고군분투기, <라테파파>를 응원해 주셔서 가능했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이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따뜻하고 든든한 아빠가 있어서 윤슬이는 행복할 것 같습니다.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테파파> 육아휴직을 선택한 이유-김한별




행복해지고 싶었습니다. 
행복을 기록하며, 저 역시 행복해졌습니다.










<라테파파> KBS 김한별 아운서 육아대디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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