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그럴 수 있지
시간이 다 해결해줘, 괜찮아질 거야.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어.
뭐 그런 걸로 그래?
의지가 약해서 그래.
아직도 지나간 일로 그러고 있어?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는 말을 따라 어떤 일이라도 덮고 외면하며 지나가면 되는 건 줄 알았다.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기억에서 흐려지고 잊히게 되는 건 줄 알았지. 그래서 괜찮냐고 물으면 ‘괜찮다’고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우며 이 정도는 누구나 겪는 일이라 여겼다.
일은 앞으로도 많을 텐데 벌써부터 힘들면 안 된다.
겨우 이런 일로 누군가에게 징징대고 싶지 않다.
각자의 짊어진 무게에 나까지 올라갈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해왔기에 어떤 일이 있어도 나의 답은 '괜찮아'였다. 괜찮다는 말을 되뇌며 나는 괜찮아야 했다.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며 불쑥 튀어나오는 감정들을 꾹 눌러내면 정말로 다 괜찮아진 것 같았다.
정말 괜찮은 걸까?
아파하거나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면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말이 있다.
"괜찮으세요?", "괜찮아?"
생각해보니 상대의 상황을 살피는 동시에 나를 안심시키기 위한 말이다. 도움이 필요한지를 확인하고, 상대의 괜찮다는 말로 내 마음이 편하기를 바란 물음이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있어도 도움 요청은 입 밖으로 내기 쉽지 않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상대에게 피해가 가지는 않을지... 생각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먼저 괜찮냐고 물어도 "괜찮아."라고 답하기도 한다. 가끔은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야 한다.
'서로 도우며 사는 세상'이라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도움은 쉽지 않은 일이다. 유치원에서부터 모르는 사람을 돕지 않도록 배워야 하고,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하자.'라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거리를 두고 살아야 안전한 시대가 왔다. 대가 없는 도움과 호의는 만나기 힘들 뿐 아니라,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것도 조심해야 하는 삶이다.
그럼에도 내 힘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현실이라 분명 어떤 이의 '도움'이 필요한 때가 온다. 이때는 '용기'를 내야 한다.
누군가의 도움을 청할 용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용기
누군가의 도움 요청에 응해줄 수 있는 용기
'시간이 약'이란 말은 그 시간을 지나오며 조금 더 자란 내가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을 때에 해당되는 말이다. 극복하는 것 없이 피해 오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피해온 문제들이 더 큰 숙제로 남게 되어 나를 자꾸 넘어뜨린다.
스스로의 일을 해결하는 것이 어쩌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매번 혼자 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타인의 개입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법도 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지만, 요청하지 않으면 도움을 받을 수가 없다. 준비가 되어야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처럼, 구해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크고 작은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다. 모든 요청에 도움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분명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소한 순간에도 수없이 많은 배려와 도움을 받아왔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은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꽃밭을 뛰노는 것처럼 이상적인 생각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작은 일이나마 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누군가의 인생을 책임져줄 수 없지만 지금 내민 손이 안전한 곳에 닿을 수 있게 작은 빛을 비춰줄 수 있도록 말이다.
이건 누구보다 나에게 하는 말인데, 지금 만난 상황이 괜찮지 않다면 "괜찮지 않아. 도움이 필요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낼 수 있기를 바란다.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지려는 마음은 알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애정 어린 시선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면 좋겠다. 꼭 괜찮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괜찮다는 말로 피하고 덮어두는 것보다 직접 마주하고 부딪쳐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