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감정을 담아내는 일은, 오늘도 여전히 어렵다

오늘도 무사히, 그러나 마음은 그렇지 않다

by 잎새

무수히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런데도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겼다.

무사히—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게
지금의 나에겐 그나마 다행인 일이다.

어떤 날은,
맛있는 걸 먹고,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보며
머릿속을 털어내고 싶어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있었던 일들은 아스팔트에 바르는 타르처럼
머릿속에 들러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그냥 그 타르가 내 생각이고, 내가 그 타르인 것만 같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다.


우울함을 느끼고 싶지 않아 항우울제를 꾸역꾸역 먹어본다.

그렇다고 생각이 멈춰주는 건 아니다.

오히려 더 또렷하게 남는다.

예전엔 명상이라는 것도 해봤다.

호흡을 가다듬고, 온 정신을 현재로 모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명상이 끝나면 늘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나.

생각은 원점으로 돌아오고,

나는 거기에서 늘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든 시도가 아무 의미 없게 느껴지는 순간.


“오늘의 일은 묻어두자.”
라고 말해도,
그건 결국 내일의 내가 꺼내서 다시 감당해야 한다.
나는 6년째, 사람의 감정을 상대하고 있다.

처음엔 돈이 필요해서 시작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일이 직업이 되었고
한때는 상급자 제안도 받았다.
그런데 나는 그 길을 고르지 않았다.
악성 민원인을 전담하고,
상담사라고 하기엔 무책임한 팀원까지 끌고 가야 하는 구조 속에서
아무리 많은 돈을 준대도,
그건 내게 너무 거북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일반 상담사로 남았다.
고집처럼 보였겠지만,
그 고집이 나를 지키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여전히 이 일은 어렵다.
제도를 설명하고, 프로세스를 안내하고,
문제를 듣고 가능한 해결책을 알려주는 일—
그것만 하면 좋겠는데
사실 그게 다가 아니다.

정작 제일 어려운 건,
사람의 감정을 받아내야 할 때다.

그 감정이 내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자꾸 내 몸 어딘가에 파고든다.
내 목소리는 말끝이 닳고,
내 마음은 자꾸 안쪽으로만 무너진다.

아무리 오래 해도,
아무리 여러 번 겪어도,
그건 오늘도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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