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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하이 SG Nov 13. 2022

프러포즈 그리고 두 번의 결혼식

상하이 여자 vs. 한국 남자 - 아내의 관점 5

드디어 나왔네 ~ 프러포즈.

이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연애 & 결혼 과정 이야기는 없을 듯해. 




내심 기대는 했지만 그가 막상 프러포즈를 할 줄은 몰랐어.

상하이에서의 SAP ERP 프로젝트가 끝나고 그는 약속대로 착실히 중국에 한 달에 한 번씩 왔어. 그때마다 스케줄을 세워서 여행도 하고 데이트도 하는 일석이조로 시간을 보냈고 말이야. 만난 지 거의 1년에 다되어 갈 때쯤 상하이에 방문 계획을 세우면서 그가 이번엔 상하이에서만 있자고 하더라고. 그리고는 이번에는 공항에 마중 나오지 말라고 하고 푸동에서 만났어. 그리고선 예약을 했다며 연애할 때 갔던 상해에서 당시 가장 높은 88층 건물인 하얏트 건물의 비싸기만 하고 맛없는 음식점을 또 예약했다는 거야~ 근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는데 어라~ 방으로 가는 거야. 물어보니 서툰 거짓말을 하더라고~~ 방에다 음식을 준비했다고... 첨엔 아무 생각 없다가 혹시 하며 예감을 했지. 


이 사람이 드디어 프러포즈하려고 하는구나~ ㅎㅎ 짐짓 모르는 척했지. 방문을 열곤 눈을 감으라고 하고 손 잡고 나란히 배열된 티라이트 사이를 걸어갔어. 꽤 기분이 좋았어. 구불구불 꽤 걸어가서 눈을 떴는데 수많은 풍선들과 함께 우리 둘이 막 연애 시작할 때 찍은 사진으로 대형 현수막을 만들었고, 거기에 중국어로 쓰인 프러포즈 글과 선물 그리고 자그마한 책자가 있더라고~ 감동이었지. 지금은 유치해서 못 볼 우리 둘이 편지를 주고받았던 걸 그가 엮어서 만들었던 그런 책자인데 그때는 좋았어. 내 경력은 어떻게 할 것이며, 결혼은 언제 하고 우리는 도대체 어디서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냥 그땐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지. 자고 가고 싶었지만 여행한다고 부모님께 당일날 말할 수는 없잖아? 대신 밤 12시에 집에 들어갔다가 아침 일찍 6시에 다시 왔지... 비싼 호텔인데 나도 누려는 봐야지 말이야~  


그다음은 일사천리였어. 

쉽진 않았지만 1달 넘게 걸려서 각자 작전을 써서 부모님 허락을 받았어. 허락을 받은 뒤엔 그가 먼저 우리 부모님께 인사를 했고, 참 통역하느라 혼났네~ 그때까진 그가 중국말을 하나도 할 수 없었거든. 그다음엔 내가 한국에 방문해서 그의 부모님에게 인사를 했어. 듣던 대로 좋으신 분들 같긴 했어.


그리곤 상견례

그의 부모님 이왕 오시는 거 항주/소주/상해 여행 스케줄로 와서 그중 마지막 날 여행사 가이드에게 양해를 얻어 상해 스케줄은 독립적으로 다니고 공항에 알아서 가겠다고 했어. 저녁 상해에서 한 식당에서 양가 부모님이 만나 식사를 했어. 대화가 안 되는데 뭐 있겠어. 그냥 얼굴만 보고 식사하면 끝나는 거지. 엄마 아빠가 이야기하면 내가 영어로 통역을 하고 그가 그 부모님께 다시 한국으로 통역하는 2번을 통역해서 겨우 대화가 되는 그런 복잡한 과정을 거쳤어. 일단 나쁜 사람들은 아니구나 ~ 정도를 보고 양가 부모님들이 안심하셨겠지 싶어. 


형식은 치렀으니 그다음 날 우린 바로 상하이에서 결혼 등록을 했지. 상견례는 정말로 요식행위였어. 상견례 다음날 결혼 등록을 하다니 말이야 ~ 상하이에서 먼저 등록할까? 한국에서 먼저 혼인 신고를 할까? 잠시 고민을 했는데 한국에서 먼저 혼인신고를 하면 중국에선 결혼증이 나오지 않아. 난 결혼증이 갖고 싶었거든. 그래서 상하이에서 먼저 결혼 등록을 해서 수첩처럼 생긴 결혼증을 당일 바로 발급받았고, 그다음 다시 서류를 준비해서 내가 한국 갔을 때 한국에서 등록을 했지. 서류가 상당히 복잡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잊었네. 기억나는 서류 중 하나는 서로 다른 장소에서 찍은 연애 사진 3장. 이거 보고 한참 웃었네. 가짜 커플인 줄 보려고 다른 장소 3장의 사진을 요구한 건데 그런다고 가짜 커플이 걸러지는가 말이야. 


사실 우린 어디 살지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어. 둘 다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 누군가 한 명은 다른 한 나라로 와야지 같이 살 수 있을 텐데 그가 중국어를 할 줄 아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한국어를 할 줄 아는 것도 아니고 어느 회사가 나나 그를 상대국가에서 채용하겠는가 말이야. 그땐 참 미쳤나 봐 ~ 언제 어디서 살지도 모르는데 결혼 등록과 결혼식부터 하다니 말이야. 


그가 묻더라고, 자기가 열심히 중국에서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알아볼 텐데 만약 10년 동안 회사를 못 찾으면 어떡하겠느냐고 말이야. 그래서 10년 동안 정말 열심히 했는데 그때까지 중국에서 일할 회사를 못 찾았으면 내가 한국에 가겠다고 했어. 사실은 정말 가기 싫었지만 결혼을 하고 10년 넘게 따로 살 수는 없었으니까 말이야. 후에 그걸로 한참을 싸우기도 했지.


몇 달 후 한국에서의 결혼식 그리고 다시 4개월 후 중국에서 결혼식을 했어.


한국 결혼식은 우리 쪽에선 극비에 부쳤어. 심지어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도 말이야. 결혼식을 다른 나라에서 이미 했고, 중국에서 다시 한다면 여기 결혼식은 흥행에 실패할 거 아냐? 외국인과 결혼했다는 것도 부모님 입장에선 조심스러웠을 테고 말이야. 엄마 아버지만 한국에 방문을 해서 결혼식을 했어. 특히 아버지는 한국에서 결혼식을 했더라도 중국에서는 아직 결혼식을 한건 아니니 잠을 같이 자면 안 된다고 할 정도였어. 그리고 4개월 후 중국에서 결혼식을 했고 말이야. 그땐 그의 부모님과 친척분들 4분도 함께 오셨더라고.

우린 두 번이나 결혼식을 했지만 신혼여행이 없었어. 한국에서 결혼식 했을 땐 우리 부모님 한국 여행을 시켜드렸고, 중국에서 결혼할 땐 그의 부모님과 친척분들 여행시켜드리느라고 녹초가 되었지. 여행 가이드가 힘들다는 걸 그때 안 것 같아.


그리고 그의 취직

한국 결혼식 후 그가 드디어 중국에 일자리를 잡았어. 꿈만 같아서 믿을 수가 없더라. 최소 3년은 걸릴 줄 알았는데 말이야. 한국에서 결혼식까지 하고 보니 아버지가 안 되겠나 봐. 올해까지 남편이 중국에 취직을 못하면 한국에 가라고 말씀하시더라고. 10년에서 1년으로 단축이 된 거야. 한국에 가서 낯선 문화와 말도 안 될 텐데 일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 과연 살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긴 했지만 남편 하나 믿고 한국에 가보려고 했어. 상하이에선 결혼은 선택 일은 필수인데 그 필수인걸 잃는다고 생각하니 막막하긴 했어. 그래도 그를 선택한걸 어떻게~ 


그에게 무척 고마웠어. 중국말 한마디도 못하는 사람이 중국에서 일할 수 있는 회사를 찾다니 말이야. 그것도 한국 결혼식 끝나고 2달 만에... 그럼 중국 결혼식은 그가 중국으로 온 다음에 할 수 있다는 뜻이니 함께 살 수 있게 되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드디어 함께 살게 된 거야~~~


이젠 고생 끝 행복 시작이어야 하는데 ~~ 반대일 줄이야... 


<남편 입장>


쑥스러워서 여자아이들에게 말도 잘 못하고 과연 연애란 건 할 수 있을까 한 내가 결혼을 하다니... 그것도 외국인과 게다가 결혼식을 2번이나 말이다. 이때만 해도 고생 끝, 영화에서 보는 그런 해피엔딩 일 줄 알았다. 장거리 연애에 어렵다는 해외 취업(1년 걸렸다) 그리고 해외 거주까지 되었으니 말이다. 착각인걸 깨닫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불과 두 달 후 깨닫게 되었으니 말이다. 남들은 신혼이고 마냥 행복할 때 나는 이 결혼생활 그거 쉽지 않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그건 그거고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센스도 없고 배려도 부족했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여자 쪽 부모님은 당연히 민감할 터. 여자 쪽에서 먼저 결혼식을 했었어야 했는데 말이다. 한국에서 먼저 결혼한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웨딩 사진이 당시 중국 쪽이 별로였다. 한국 쪽 것을 웨딩 사진으로 사용해야 하는데 그럼 결혼식을 한국 먼저 해야 한다는 아무것도 아닌 이유 때문이었다. 다행히 아내는 젼혀 상관없다고 했고 나만 나중에 아내의 부모님 입장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이런 것들이 모여서 장모님, 장인어른으로부터 인정을 받는데 오래 걸렸을까 싶다. 


참 프러포즈 이야기는 잠시라도 하긴 해야겠다.

네이버에서 "프러포즈하는 법"이라고 정말 이렇게 검색했다. 당시 그런 종류의 검색이 인기가 있었다. 분위기 좋은 카페 등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했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준비했다. 풍선 100개, 현수막, 선물 그리고 뭔가 특별한 걸 해야 하는데 하며 작은 책을 만들었다. 아내와 내가 주고받은 주요 이메일과 우리들이 함께 찍었던 사진을 엮어서 말이다. 그 당시 역시나 센스가 없어서 제대로 된 책이 아닌 회사에 일찍 출근해서 회사 컬러 프린트를 활용했고, 제본하는 곳에 가서 2,000원 정도 주고 제본을 맡긴 것으로 기억한다. 참 회사는 나를 첫 해외출장을 갈 수 있도록 해 주고, 아내를 만나게 해주기도 했고 심지어 컬러 프린터까지 제공한 정말 고마운 회사였다.  


한국 결혼식 - 한국에선 중국과 달리 점심때 간단히 결혼식을 하더라고~  나중에 들어보니 중국 결혼식이 긴 걸 아는 남편이 그나마 결혼식을 길게 2시간을 안배했다고 하더라 ~ 
중국 결혼식 -중국은 한국과 달라 많이 바빠. 결혼식만 달랑(?)하는 한국과 달리 5시 기상, 부모님 인사, 웨딩사진, 결혼식장 도착 1시간 동안 하객 인사 및 사진 그리고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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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은 브런치 북으로 발행했습니다. 

속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래 1부가 도움이 될 듯해서 아래 링크를 걸어둡니다.


[브런치 북] 상하이 여자 vs. 한국 남자 (brunch.co.kr)


전편은 우리나라의 이웃인 중국. 그중에서도 한 도시인 상하이의 일반적인 이야기와 우리와 다른 문화 그리고 약간의 저희 경험을 담았습니다.

속편은 12화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전편: 10화, 속편: 12화)

주 2~3회로 생각하고 있고요. 글쓰기 초보라 일정이 늦어지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좋아요 & 댓글을 주시면 초보인 제게 힘이 되어 글을 마무리하는 힘이 될 것 같습니다.

혹 글이 공감이 되어 구독하시면 알람이 되실 거고요.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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