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여자 vs. 한국 남자 - 아내의 관점 8
이건 정말 잊을 수 없는 이야기야.
아직도 혈압이 올라 ~~
지난번에 임신했다고 이야기했지? 한 달에 2번 쉬는 상황에 임신한 나를 두고 골프장 갔던 이야기 하고 말이야.
고민했어.
내가 상하이에서 300km 떨어진 난징에서 아이를 놓을 수 있을까? 한국지역 기준으로 보면 지난번 말했던 서울에만 살던 사람이 대구에 갔고 대구에서 아이를 가졌는데 나를 돌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남편이란 작자는 아침 7시부터 저녁 11시까지 매일 야근을 해서 잘 때밖에 얼굴을 볼 수 있는데 막상 아이 놓을 때가 되면 누가 나를 봐줄 거냔 말이야.
아무래도 난징에서는 어렵겠다고 봤지. 남편과 상의하고 예정일 3개월 전에 상하이 엄마 집으로 갔어. 남편은 매주 토요일 밤에 300km를 운전해서 상하이 와서 자고 일요일 밤에 다시 난징에 돌아가는 일정이었지. 뭐 매주 600km 운전하려면 피곤했겠지 싶어. 한 달에 2번 쉬는데 임신한 것을 핑계로 매주 일요일 쉴 순 있었나 봐~ 그땐 매주 오더라고.
보통 커플처럼 병원에 함께 갈 순 없었지만 그래도 피곤할 텐데 매주 오는 그가 고생하는 건 알겠더라고. 몇 달 후 드디어 통증이 시작되었어. 아이는 7월 7일 저녁 7시(한국시간)에 태어났는데, 선물이라 생각해. 우리가 한 달에 한번 만난 것을 기념하듯이 말이야. 물론 음력, 양력 차이는 있겠지만 그 정도는 눈감아주길 바라.
그 전날인 6일에 아침부터 통증이 시작되었어. 곧 나오겠구나 싶어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지. 아이 놓을 듯 하니 오라고 말이야. 아~ 아직도 안 믿겨. 남편의 첫마디가
"내일까지 아이 놓는 거 확실해?"
아이가 오늘 나올지, 내일 나올지, 내일모레 나올지 일주일 후가 될지 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처음 아이 놓는 건데 말이야.
그냥 오면 될 것이지 확실하냐고 묻는 인간이야 그 인간이.
화를 버럭 내니 알겠다고 하고 차를 가지고 난징에서 상하이로 300km 운전해서 왔어. 난 엄마랑 짐을 챙겨서 병원으로 갔고 말이야. 예정일 근처라 짐은 준비해 두었고, 아이 놓을 때 힘이 없으면 먹으려고 초콜릿과 과자 몇 가지도 준비해 두었지.
오전부터 증상이 조금 있었고, 오후에 또 잠시 왔고 통증 시간이 그 시간이 짧아졌어. 그날 밤에 난 아파서 잠을 잘 수가 없었어. 내 침대 옆에 기다란 의자 옆에 남편이 쪽잠을 잤는데, 잘 자더라 ~ 그다음 날도 통증이 계속 짧아졌고 본격적으로 아파왔지. 난 자연분만하기로 마음먹었고, 허리 마취주사도 안 맞으려고 했어. 그런데 1손가락부터 아프기 시작하더니, 3손가락 수준이 되니 너무 아픈 거야 ~ 나중에는 의사에게 안 아플 수 있는 어떤 것이든 놓아주세요.(医生, 我什么都要~)라고 얘기하기도 했어. 허리 마취주사를 맞은 그때부터 좀 나아졌지.
아이 놓을 때가 점점 가까워오고 있었어. 중국에선 딱 한 명만 함께 분만실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당연히 남편이 들어왔고, 옆에서 꼭 손을 잡아주고 있었어. 근데 자세가 이상한 거야. 머리는 뒤로 빼더라고...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한국 드라마 보면 아이 놓을 때 여자들이 남자들 머리채를 잡고 흔드는걸 너무 많이 봤데, 그래서 손만 할퀴든 뭐하든 손만 희생(?)하고 머리채는 안 잡힐 목적이었던 거지. 힘을 주어야 해서 웃으면 안 되는데, 잠깐 웃었어. 그리고 성질냈어. 말 한마디도 하지 말라고 말이야. 남편은 말하면 웃길 때가 많거든. 유머감각이 있어서가 아니라 엉뚱해서야. '그 입 다물라~'라고 했지. 그리고 본격 통증이 온후 8시간 만에 드디어 딸이 태어났어. 나 스스로 참 기특해했던 것 같아. 엄마도 무서워서 자연분만을 못했고, 주위도 그런데 내가 자연분만을 하다니 말이야.
남편은 막 태어난 아이와 눈을 맞추려고 엄청 노력하더라고... 아이들은 눈을 뜰 수 없는데 말이야. 나중에 들어보니 동물들이 처음 눈 맞춘 사람을 엄마로 생각하니 처음 딸아이와 눈을 맞추면 부녀관계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그랬더 고 하더라고. 그리고 이제 의사가 봉합(?) 수술을 한다고 남편보고 나가라고 했어. 남편이 아무 생각 없이 아래쪽 방향으로 나가려고 하니 의사가 소리를 질렀어. 의사가 소리 지르니 남편은 영문도 모르고 멀뚱멀뚱하게 있더라고. 그래서 내가 아래쪽 말고 내 머리 위쪽으로 나가라고 알려줬지. 나중 부부생활에 영향이 있을까 아래쪽은 보질 못하게 하거든. 사실 당연한데 아무 생각 못했던 거지.
2일 후 퇴원했어. 그리고 집에서 한 달간 요양을 했어. 산후조리원이라는 게 지금은 흔하고 친구들 보면 2주에 300만 원, 500만 원 심지어 1,000만 원을 내고 하던데 그땐 많지도 않았고 돈도 부담이 되어 그냥 집에서 했어. 남편은 아이 놓고 2일 더 있다가 회사로 갔어. 주말이 껴있었으면 좋았겠으나 아이 놓은 날이 화요일이라 금요일에는 일한다고 하고 갔지. 나도 거기 분위기 대충은 알아.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거. 그리고 2일 일하고 다시 토요일 밤에 운전해서 또 왔고 말이야.
그 이후로도 여전히 매주 난징에서 상하이로 차를 끌고 오는 생활이 지속되었어. 한 4개월 더 지속되었을까. 그때 좋은 소식이 들렸어. 남편이 상하이에서 일자리를 잡았다고 알려온 거야 ~
그것도 난징의 작은 회사가 아니고 나도 한국에서 봤던 대기업이었어. 얼마나 기뻐했던지...
<남편 생각>
할 말이 없는 것 안다.
아내는 아이 놓는데 내일까지 놓는 게 확실하냐고 묻다니...
예전 드라마 보면 아니 실제로도 그런 경우들이 있었다고 지인 형님들을 보면 전해진다. 아이 놓는다고 연락이 왔으나 출장 중 혹은 일을 중간에 멈출 수가 없어 아이 놓는 때 함께 있어주지 못했다고 말이다.
변명을 하자면 그때 난징의 LCD 공장들 분위기가 그랬고, 거기다 허탕(?)이라면 더 힘들었던 분위기였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변경인 것 안다. 하여간 그랬다. 그럼에도 할 소리는 아니었는데...
참 그때 꽤 난징과 상하이 매주 600km를 운전하면서 몇 번의 위험한 순간들 아니 사실은 자주 있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밤 11시까지 일하고, 토요일에는 오후 6시까지 일하고 운전해서 가면 오후 9시 도착. 졸음운전을 했을 때였다. 몇 번 사고가 날뻔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다. 차문을 활짝 열고 사탕과 껌을 준비하고 허벅지를 꼬집으며 그렇게 6개월간 운전했던 기억이 있다. 더 길어졌다면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종교는 없지만 신에게 감사할 일이다.
아내는 아이 놓기 3개월 전에 갔고, 아이 놓고도 최소 3개월은 난징으로 돌아오지 못할 터였다.
멀리(?) 한국에서 왔는데 6개월이나 떨어져서 살아야 하다니...
'궁즉통이라고 했지 않나' 전화위복이 되었다. 그전에도 생각은 있었으나 중국어도 아직 잘하지 못하고, 뭔가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있어서 상하이에 취직하려고 원서를 내본 적이 없었다. 아내가 상하이로 아이 놓을 준비 하러 가고 나니 이젠 더 진심이었던 것 같다. 결국 6개월 만에 상하이에 있는 한 회사에 취직이 되었다. 예전에 포스팅했던 아래 회사다. 아내 때문에 갔고 아내 덕분에 취직한 회사였다.
03화 상하이 출신 아내 덕분에 한국 대기업에 취직한 사연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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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은 브런치 북으로 발행했습니다.
속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래 1부가 도움이 될 듯해서 아래 링크를 걸어둡니다.
[브런치 북] 상하이 여자 vs. 한국 남자 (brunch.co.kr)
전편은 우리나라의 이웃인 중국. 그중에서도 한 도시인 상하이의 일반적인 이야기와 우리와 다른 문화 그리고 약간의 저희 경험을 담았습니다.
속편은 12화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전편: 10화, 속편: 12화)
주 2~3회로 생각하고 있고요. 글쓰기 초보라 일정이 늦어지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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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