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시간

by 이랑

아빠가 떠났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장례식이 아니었다.


왜 아무도 내게 말하지 않았을까, 하는

그 의문이 마치 켜켜이 쌓인 먼지처럼 내 마음을 덮쳤다.


당시의 나는 미국에서 유학생으로 지내며, 가족 없는 외국 땅에서의 생활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고, 늘 불안의 그림자 속에서 살았다. 작은 문제에도 흔들렸고, 매일의 삶은 위태로운 균형 위에 놓여 있었다.


엄마는 그런 나의 모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 상황에서 아빠의 죽음을 전하면 내가 무너질 거라고 생각했을까. 혹은, 그 소식을 듣고도 한국에 오지 못하는 나의 현실이 더 가혹해질까 두려웠을까.


그렇게 엄마는 차라리 나를 모르게 두는 쪽을 선택했다.

알지 못하면 덜 아플 거라 믿은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이유도, 내가 삼 년 동안 모른 채 살아야 했던 시간들을 온전히 설명해주지 못한다. 아빠가 없는 세상에서, 나는 끝내 그 사실을 모른 채 웃고 떠들며 살아버렸다.

웃었고, 일했고, 사랑을 꿈꿨다. 생일을 챙겼고, 사진을 찍었고, 내일을 이야기하며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보냈다. 내가 너무 사랑했던 아빠의 부재 위에, 아무렇지 않은 일상들을 겹겹이 쌓아 올린 셈이었다. 그 평범함이야말로 내게 가장 잔인한 시간이었음을, 뒤늦게야 알았다.


그 사실을 알고 난 후, 나는 오래된 사진첩을 펼쳐봤다. 아빠와 찍은 마지막 사진이 언제였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은 오래된 사진처럼 희미해졌지만, 아빠가 사라진 그 공백만은 지워지지 않는 흑백 필름처럼 선명했다. 숨긴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애써도, 끝내 지워지지 않는 질문이 남는다.


정말 그것만이, 나를 위한 선택이었을까.






엄마는 늘 짧게 말하곤 했었다.

“괜찮아.”

“오늘은 조금 나아졌어.”

그 말들 뒤에 감춰진 표정을, 나는 보지 못했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 침묵은 나를 배려한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혼자 감당해야 했던 엄마의 무너진 마음이었을까.


아빠가 떠난 후에도 엄마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왜 말하지 않았냐고 묻자, 그녀는 그저 “네가 힘들어할까 봐”라고 대답했다. 그 말에 담긴 두려움과 무력감을 나는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내게 전화를 걸어 그 한마디를 꺼내는 순간, 엄마 자신도 무너질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중에는 면회가 힘들다는 이유로 전화조차 미뤄졌다. 그런데도 그때의 나는 도대체 뭐가 그리 치열하고 바빴던 걸까. 정말 삼 년을 그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 엄마의 말만 믿고 그 모든 의심스러운 상황들을 흘려보낼 수 있었을까.


나는 지금도 그 질문 앞에 서면 스스로를 변명하지 못한다. 어쩌면 그 사이, 알고도 모른 척했는지도 모른다. 차라리 알지 못하는 쪽을 택해버린 건 내가 아니었을까.


왜 아빠에게 자주 가지 않냐고, 아빠가 섭섭하겠다고 속으로는 수없이 생각하면서도 막상 엄마에게 묻지는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멀리 떨어져 있던 철없는 막내딸은, 옆에 남아 있던 사람들에게조차 아무 힘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아무것도 묻지 못했고,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만 사실이라 믿었다.


그 사실이 지금의 나를 더 무겁게 만든다.


하지만 숨겨진 부재는 결국 드러난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거라 믿었지만, 그것은 단지 진실을 유예했을 뿐이었다. 감춰진 시간은 다시 흘러와, 더 큰 무게로 내려앉는다. 나는 나를 위한 가족들의 선택을 이해하려 애쓰면서도, 끝내는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때 내가 알았더라면. 함께하지 못했더라도, 그들과 같은 시기에 함께 아빠를 보내며, 울 수 있었다면. 내 슬픔의 무게가 지금보다는 덜 무거웠을까.


끝내 돌아가지도, 돌이키지도 못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아빠가 보고 싶어 힘들어질 때마다 문득 그 질문을 붙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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