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머리 아빠, 그리고 만두 봉투

by 이랑

아빠에게 서울은 고단한 일터였다. 아침 해가 뜨기도 전에 집을 나서 새벽 공기를 가르며 떠났고, 달이 한참 높이 뜬 후에야 돌아오셨다. 늦둥이인 내가 태어나자 술도 담배도 끊고 오직 건강만을 생각하던 아빠는, 엄마의 고향인 경상도에 터를 잡았지만 아빠의 삶은 늘 서울과 우리 집 사이의 먼 길 위에 있었다.


아빠는 매일같이 새벽과 밤의 경계에 서 있었다. 그 길고 고단한 여정 속에서도, 집으로 돌아오는 아빠의 손에는 언제나 같은 것이 들려 있었다. 하얀 종이봉투. 겉모습은 늘 같았지만, 그 안에는 아빠의 마음처럼 다채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휴게소마다 달랐던 간식들. 어느 날은 따끈한 군밤이었고, 또 어떤 날은 달콤한 호두과자였다.


하지만 그 봉투 속에 어떤 간식이 들어 있든, 딱 한 가지 예외 없이 들어 있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왕만두였다. 식탁 위에 올려진 봉투를 풀면, 뭉근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만두 한 알 한 알에 담긴 따스한 온기는 아빠의 피곤함마저 녹여주려는 듯했다. 우리는 뜨겁다며 호호 입김을 불어가며 만두를 먹었고, 아빠는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상한 건, 그 만두가 늘 우리 식탁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는 사실이다. 꼭 아빠 얼굴처럼, 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람은 언제나 사소한 것에 기억을 묶는다. 냄새, 억양, 음식. 그 작은 것들이 결국 한 사람의 얼굴이 된다. 그래서일까. 나는 아직도 만두가 지겹지만도, 나는 여전히 그 봉투를 기다린다.


아빠는 요리하는 것도 좋아했다. 문제는 늘 레시피대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된장찌개에 만두를 넣고, 김치찌개에 어묵을 잔뜩 풀어넣었다. 국물 맛은 종종 괴상했고, 우리는 얼굴을 찌푸리며 수저를 들었다. 그러면 아빠는 일부러 더 크게 웃었다. 장난 같기도 했지만, 자식들에게 무언가를 해줬다는 뿌듯함이 그 웃음에 담겨 있었다. 어쩌면 사랑은 완벽함이 아니라, 그런 엉뚱함 속에서 더 오래 남는 건지도 모른다.


아빠의 억양도 독특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고향이 북한이었기에, 아빠의 말씨에는 서울 말투와 북쪽 억양이 묘하게 뒤섞여 있었다. 나는 그 억양을 흉내 내며 깔깔 웃었다. 어릴 땐 장난이었지만, 지금은 그마저 지워지지 않는 아빠의 목소리다. 부모의 말투와 버릇은 시간이 흘러도 몸 어딘가에 남아, 우리가 무심코 내뱉는 말 속에 따라 나온다.


내가 태어났을 때 아빠는 또래 아버지들보다 나이가 많았다. 머리카락은 이미 온통 희었고, 햇빛에 반짝이면 은빛으로 빛났다. 친구들이 “너희 아빠, 할아버지 아니냐”고 놀릴 때도 있었지만, 나는 그 백발이 괜히 자랑스러웠다. 내 어린 눈엔 그 모습이 누구보다 멋져 보였다.


흰 머리, 만두 봉투, 엉뚱한 찌개, 낯선 억양. 나의 어린 시절은 언제나 그 얼굴과 함께였다. 그 시간들은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지만, 정작 그 주인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나는 여전히 만두가 지겹다. 그러나 언젠가 다시 그 봉투를 마주한다면, 웃으며 젓가락을 들 것이다. 뜨거운 김 사이로 아빠의 얼굴이 따라올 테니까.


사라진 사람은 오히려 기억 속에서 더 오래 산다. 사소한 풍경 하나가 불현듯 눈앞에 떠오를 때, 그 얼굴 또한 다시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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