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에 아빠는 우리를 떠났다.
아빠가 세상을 떠난 걸, 나는 삼 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2023년 봄, 이미 모든 것이 끝난 뒤였다.
병원에 계시던 아빠의 병실은 면회조차 쉽지 않았고, 아빠의 몸은 암 치료로 인해 이미 많이 약해져 있었다. 나는 미국에 있었고, 전화기 너머로는 엄마의 목소리만 들려왔다. 아빠는 원래 말이 적었지만, 그때는 더더욱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수화기 속의 아빠는 언제나 고요했다.
당시 미국에서 여러 문제에 얽혀 있었다. 신분 문제도, 개인적인 일들도 겹쳐 하루하루가 복잡했다. 한국에 가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코로나의 그림자는 점점 더 짙어졌고, 그 덕에 입국하면 2주 격리라는 것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모든 이유를 다 떠나서, 나는 아빠의 죽음을 알지도 못한 채로, 아빠의 마지막 순간을 곁에서 지키지 못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삼 년 뒤였다.
2023년 4월, 이미 모든 것이 지나가고 난 후였다.
내게 아빠의 죽음은, 사건이 아니라 공백이었다.
애도할 기회조차 잃은 채,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살다가 뒤늦게 부재를 마주한 시간. 나는 아직도 그 순간의 감각을 붙잡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묻는다.
꼭 내게 숨겨야만 했을까, 꼭 그 방법밖에는 없었을까.
2023년 4월. 사 년 만에야 한국을 다시 찾았다.
코로나는 한풀 꺾였고, 격리도 사라져 있었다.
가기 전날까지도 엄마와 통화했다. 아빠가 계신 병원에 들어갈 수 있는지, 코로나 검사를 하면 만날 수 있는지. 엄마는 그저. “볼 수 있으니까 빨리 와라-”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 말 하나에도 나는 보고싶은 모든 마음을 붙들었다.
열여섯 시간의 비행. 창밖의 하늘빛은 계속 바뀌었지만, 내 마음은 제자리였다. 인천에 도착해 오빠를 만났고, 또 네 시간을 달려 집으로 갔다. 길은 낯설지 않았는데, 내가 낯설었다. 시간은 그대로였지만, 꼭 나만 늦게 도착한 사람 같았다.
긴 시간을 이동해 드디어 도착한 집에서 엄마를 만났다. 얼굴엔 웃음이 있었지만, 그 안에 묘한 주름이 더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세 식구가 오랜만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반가움이 있었고, 어색함이 있었고, 채워지지 않는 공백도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 난 우리는 함께 밥을 먹었다. 익숙한 식탁위의, 그리웠던 엄마의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지만, 어쩐지 낯선 자리가 하나 비어 있는 듯했다. 나는 무심히 물었다.
“밥 먹고 나면 아빠 병원부터 가야겠지?”
엄마와 오빠가 눈빛을 주고받았다. 오빠가 망설이다 말했다.
“그전에… 해야 할 말이 있어.”
나는 웃으며 되물었다.
“뭔데?”
오빠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용히 말했다.
“아빠가….”
그 말을 끝까지 듣기도 전에,
불현듯 내 머릿속에 한 문장이 떠올랐다.
아, 아빠가 죽었구나.
단 한순간도 의심한 적 없었다. 아빠가 없을 거라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만큼은 너무 당연하게, 너무 자연스럽게 그 생각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오빠의 말이 그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나는 그 순간, 아무런 방어도 없이 무너졌다. 울음이 너무 갑작스럽게 터져 나와, 나 스스로조차 놀랄 만큼이었다. 그렇게 나는, 이미 모든 것을 삼 년 전에 끝낸 사람들 사이에서, 나 혼자만 아직 시작도 하지 못한 애도를 맞이해야 했다.
부재는 늦을수록 더 잔인하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