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하는 만나는 사람 있어?"
엄마의 물음에 재하의 숟가락이 잠깐 멈췄다. 그는 고개를 들어 익숙한 웃음기를 띠며 말했다.
"없어요. 아직은."
할머니가 그 말을 받아 웃으며 덧붙였다.
"너도 이젠 색시 만나서 결혼해야지. 계속 혼자 살 거야?"
재하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게요.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봉우가 해준다면 생각은 해볼 텐데. 할머니도 그렇게 생각하죠?”
그 말에 젓가락을 한 번 놓고, 다시 들었다. 뭔가 대꾸를 해야 하나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농담, 이제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듣고 나면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눅눅해졌다.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왜 자꾸 그런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고. 또, 왜 그걸 듣고 이렇게 가만히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말투는 늘 장난처럼 가볍고, 분위기도 그렇긴 했다. 그런데 그 말끝에 남아 있는 표정은 늘 어딘가 딴 데를 보고 있었다. 꼭 지금 이 자리가 아니라, 아무 데나 상관없는 곳을 바라보는 눈. 그게 더 신경 쓰였다.
재하가 그런 말을 툭 던질 때마다, 나는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이곤 했다. 입맛이 뚝 떨어지거나, 괜히 물컵에 손이 갔다. 그럴 때마다 내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뭐가 기대된다고. 이걸 몇 번이나 겪었는데, 아직도 마음이 쓸린다니.
할머니가 눈을 크게 뜨며 내 쪽을 보았다.
"그래? 봉우야, 그럼 너희 둘이 진짜 같이 살면 되겠네."
"네? 제가요?"
국을 삼키던 나는 목이 메어 헛기침이 났다.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듯했고, 순간 숨이 멈칫했다. 그런 식의 반응이 나오고 나면, 대체 내가 뭘 바라고 있는 건지 더 모르겠어졌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앉아 있는 재하 옆에서, 나만 괜히 민망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곧장 물 잔을 내밀었다. 눈가가 부드럽게 접혔고, 그 속에는 오래 본 사람만 알아챌 수 있는 농담의 결이 있었다.
"그렇게 놀랄 일이야? 천천히 먹어."
그 말이 농담인 걸 알면서도, 젓가락을 드는 손끝이 괜히 느려졌다. ‘천천히 먹으라’는 말에 천천히 숨을 쉬게 되는 순간이 있다. 마음이 들키는 것 같아 조심스럽고, 안 들키는 것 같아 초조한 그런 순간.
엄마가 곧바로 한마디 거들었다.
"너희 어릴 때부터 줄곧 붙어 다녔잖아. 둘이 좋아서 그런 거 아냐?"
나는 억지로라도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도 재하만 싫지 않다면, 뭐-"
말은 아무렇지 않게 흘러나왔지만, 입술 끝에 뭔가 걸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반쯤 던진 말이 의외로 가장 오래 남는 법이다. 진심이 절반쯤 묻은 말은, 농담보다 무겁게 가라앉는다. 그게 웃으며 던졌다고 해서 가벼운 건 아니라는 걸, 요즘은 자주 실감한다. 재하는 대답 대신 짧게 웃었다. 습관처럼 웃는 얼굴이었지만, 이상하게 그 웃음이 나한테는 자꾸만 문장처럼 들렸다. 뭔가를 말하는 대신, 그 웃음으로 모든 걸 다 넘기는 사람처럼.
할머니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
방 안 공기가 조금 더 환해졌다. 엄마도 웃으며 반찬을 내 앞에 더 놓아주었다. 나는 젓가락을 들면서도, 재하의 옆얼굴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 그리고 동시에, 보지 말았어야 했단 생각이 들었다. 그의 눈가에 걸린 웃음은 금세 지워졌다. 마치 방 안의 공기도 그 웃음을 따라 한순간 흔들렸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는 것처럼. 그러니까, 나 혼자만 아직 그 여운 안에 남겨져 있었다.
창문 너머 햇빛이 식탁 끝에 걸쳐 있었다.
어느새 저녁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때, 할머니가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참, 재하야, 저 방에 챙길 거 더 없니?"
말이 끝나자마자 공기가 슬쩍 눅눅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웃음으로 가득하던 분위기가, 낮은음 하나처럼 내려앉았다.
안쪽 방. 여름에도 바람이 잘 들지 않던 그 방은, 계절과 상관없이 눅눅한 기억들을 오래 붙잡고 있었다. 재하가 가족을 모두 잃고, 할머니를 따라 내려와 함께 지내던 시절 머물렀던 방이었다. 오래된 창문, 삐걱거리는 문고리, 벽과 서랍 어딘가에 남겨진 재하의 흔적들. 먼지에 덮인 책들, 낡은 기타 케이스, 서랍 속 맨 아래 칸에 있던 어린 시절의 편지들. 하나도 특별하지 않은 것들이, 이상하게 잊히지 않았다. 그 모든 게 한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마치 오래된 필름이 들리지 않는 소리를 품은 채 돌아가는 것처럼.
재하는 숟가락을 들던 손을 잠시 멈추더니, 짧게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다 정리했어요."
그 말이 지나가자, 밥상 위로 얇은 막이 드리워지듯 정적이 깔렸다. 할머니는 젓가락을 한 번 들었다가, 금세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제 그럼, 다 정리해도 되는 것들이지?"
말은 무심했는데, 그 순간 공기가 묘하게 가라앉았다. 접시 위에서 식어가는 된장국 김이 느릿하게 흩어졌다. 엄마가 빈 그릇을 옆으로 밀며 말을 받았다.
"그 방도 참 오래됐지. 손볼 데가 많더라고요."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숟가락을 손에 쥔 채 멈춰 있던 그녀는, 창가를 향해 한 번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는 다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제 슬슬, 방도 좀 비워야지. 나중에 나 죽고 나면, 재하가 다 해야 할 텐데. 그땐 혼자 하려면 힘들 거 아니냐."
'죽고 나면.'
할머니의 입에서 그 단어가 흘러나오자, 방 안의 공기가 눈에 보이지 않게 바뀌었다. 그 단어는 밥상 위로 조용히 내려앉아, 숟가락과 그릇 사이를 차갑게 가로막았다. 방 안 한쪽에서 졸졸 흐르던 찌개 냄비의 소리조차, 그 순간 작아졌다. 조금 전까지 퍼지던 웃음은 그 순간부터 다른 결을 띠었다. 여전히 이 집에서 '죽음'이라는 단어는 늘 조심스러운 그림자처럼, 웃음 가장자리에 기어이 따라붙었다.
재하는 그대로 밥을 씹는 듯했지만, 젓가락이 밥 위에서 잠시 멈췄다. 시선은 접시에 머물렀고, 숨이 아주 느리게 고였다. 그제야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눈동자가 흔들린 건 그다음이었다.
"… 할머니."
짧고 낮은 목소리였다.
그 한 단어가 방 안 공기를 단숨에 눌렀다. 재하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그 말의 밀도는 높았다. 마치, 허공 어딘가에서 묵은 먼지를 털어낸 듯한 무게로. 가볍던 공기가, 어느새 목 아래쪽에서 무겁게 웅크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잠시 멍하니 재하를 바라보다가, 손에 쥔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그의 등을 천천히 쓸었다.
"아이고야… 미안하다. 아무런 뜻도 없었어."
그녀의 손은 조심스러웠지만, 어딘가 무력했다. 손끝은 재하의 등에 닿기 직전에 멈춘 듯했고, 말은 끝까지 가지 못한 채, 부엌 쪽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할머니의 말은 끝내 재하에게 닿지 못하고 흘러내렸다. 손길도 마찬가지였다. 조심스럽고 부드러웠지만, 등 어디에도 완전히 닿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갔다. 식지 않은 밥상 위로, 말끝이 남긴 열기와 슬픔이 엉겨 붙었다. 차마 다 말하지 못한 마음들이, 천천히, 조용히 내려앉았다.
나는 그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 속이 아득하게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말할 수 없다는 것. 닿지 못한다는 것. 그건 위로와는 거리가 멀었고, 차라리 아무도 열지 않는 서랍처럼, 마음 한쪽에 고여 있었다.
밥을 다 먹은 뒤, 재하와 엄마는 떨어진 살림을 챙긴다며 집에서 조금 떨어진 큰 마트로 향했다. 문이 닫히는 순간, 남겨진 집 안은 천천히 가라앉는 물처럼 조용해졌다. 나는 남아 할머니와 함께 뒷정리를 도왔다.
그릇을 씻고, 물기를 닦고, 식탁을 정리했다. 숟가락이 부딪히는 소리, 물이 흐르는 소리, 접시를 쌓는 소리가 차례로 흘러갔다. 소리가 모두 그치자, 집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소파에 등을 깊숙이 기대앉았다.
창밖에서 오후의 빛이 기울어진 각도로 거실 안으로 스며들었다. 시간은 잠시 그 자리에 멈춘 듯, 더디게 흘렀다. 말소리도, 발소리도 없어진 공간 속에서, 불현듯 문 하나에 시선이 머물렀다. 조금 전 할머니께서 정리하겠다던 재하가 머물렀던 방이었다. 오래 닫혀 있던 문은 아니었지만, 그 앞엔 설명하기 어려운 침묵이 걸려 있는 듯했다. 그 침묵은 문 너머에서부터 흘러나와, 바닥을 타고 길게 그림자를 늘였다.
옆에서 할머니가 과일을 깎고 있었다. 칼날이 사과 껍질을 따라 느리게 돌았다. 얇게 벗겨진 껍질이 무릎 위로 길게 늘어졌고, 그 움직임은 마치 시간의 흐름을 대신하고 있는 듯했다. 그 소리는 작고, 길고, 얇았다. 나는 등을 소파에 붙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공기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조용한 공포에 가까운 정적이었다. 할머니는 말없이 손을 움직였고, 방 안쪽의 고요는 오히려 더 또렷하게 다가왔다.
잠시 숨을 고른 뒤에야,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파에서 떨어져 나온 몸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발자국마다 마루가 작게 울렸다. 문고리 앞에 섰을 때, 손끝이 살짝 젖어 있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방 안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모서리마다 접힌 이불, 가지런한 책상, 벽에 걸린 오래된 캘린더. 시간을 잘 접어 넣은 듯한 공간. 그런데도 숨이 막혔다. 나는 문 안쪽에 서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공기는 묵직했고, 그 안엔 사람 대신 시간이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내 숨소리만 희미하게 섞였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묵은 먼지가 은은하게 일었고, 그 속엔 말없이 쌓인 계절들이 층층이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시선을 옆으로 돌리다 책상 앞에서 멈췄다. 바람도 없는데, 책상 위의 커튼 자락이 살짝 흔들렸다. 방 안에 들어온 오후 햇빛이 유리창을 타고 흘렀고, 공기엔 오래 닫혀 있던 방에서 나는 묵은 책 냄새가 은근히 섞여 있었다. 그 위로 얇은 먼지가 내려앉은 표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처음엔 스치듯 바라보다가, 손끝이 저절로 다가갔다.
책상 모서리는 어릴 적에도 그랬듯 둥글게 닳아 있었다. 재하가 무릎을 부딪히며 자주 앓던 그 자국 그대로였다. 반쯤 가려진 공책의 표지를 살짝 쓸자, 낡은 종이의 바래진 그림이 드러났다. 햇빛이 그 위를 스치자, 먼지가 공중에 작은 입자로 떠올랐다. 잠시 망설인 끝에, 나는 천천히 표지를 펼쳤다. 그 안에서 무심한 문장 몇 줄이 흘러나왔다.
‘누구랑도 말하기 싫다. 근데 혼자 있는 건 더 싫다.’
‘숨은 쉬는데, 왜 이렇게 답답하지.’
삐뚤빼뚤한 글씨였다. 멈칫거린 흔적이 군데군데 박혀 있었고, 눌린 자리마다 잉크가 진하게 번져 있었다. 글씨 끝마다 떨림이 있었고, 어떤 문장은 한 번 썼다가 지운 듯, 연하게 흔적이 남아 있었다. 적어 내려간 것이 아니라, 견디듯 눌러놓은 말들이었다. 끝내 닿지 못한 말들이 종이 가장자리에 매달린 듯, 놓이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그 순간, 혼자 남은 재하가 이 책상 앞에 앉아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니, 상상이라기보다 오래된 기억이었다. 유난히 더웠던 어느 여름날 오후, 그 애는 창밖을 등지고 앉아, 연필을 움켜쥐고 있었다. 말은 없었고, 팔뚝 위로 땀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나는 문턱 너머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고, 방 안은 말 대신 벌레 소리와, 벽에 반사된 햇빛으로 가득했다.
지금 그때와 다를 것 없는 공기였다. 시간이 지나도 방은 같은 결을 유지하고 있었다. 움직이는 것 하나 없는 고요 속에서, 나는 손가락을 페이지 위에 올렸다가 이내 떼었다. 그다음 페이지를 넘기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그 애의 더 깊은 어둠이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그 자리에서 멈췄다. 공책을 덮지도, 다시 펼치지도 못한 채, 나는 그대로 주저앉듯 자리에 앉았다. 바닥에 손을 대자, 차가운 나뭇결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누구의 체온도 아닌데, 묘하게 그가 남긴 온기처럼 느껴졌다. 조금 전, 할머니와의 대화 속에서 본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날의 침묵, 숟가락을 내려놓던 손끝, 웃지 못한 표정.
그 날 이후로, 그에게 정말 괜찮았던 날이 있었을까. 나는 단 한 번도 그 질문을 제대로 붙잡아본 적이 없었다. 그 애를 이해한다고 믿었지만, 돌아보면 그것은 이해라기보다 내 멋대로의 짐작에 가까웠다. 머릿속에서 문장 하나가 맴돌았다.
‘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필요했을 뿐인데.’
그건 그의 마음일 수도 있었고, 내 마음일 수도 있었다. 흘러내려간 말은 한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그런 그의 마음을 덜 아프게 한 적이 있었을까. 그런 순간이, 과연 단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생각이 길어질수록, 가슴 어딘가에 오래 눌러두었던 바람이 서서히 불어오는 듯했다. 그건 미안함이 아니라, 어디에도 닿지 못한 채 흐르던 무력함의 잔재 같았다. 그 방 안에서 나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다만, 이제는 정말 그를 더는 괴롭히지 않겠다고 마음속에 조용히 새겼다. 결심이라 부르기엔 모호했고, 체념이라 하기엔 다정한 마음을. 마치 오래된 여름밤이 남기고 간, 식은 마루의 온기 같은 감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