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던 하루였다. 창밖은 밝았고, 누군가에겐 그게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잘 모르겠다. 유리문에 비친 얼굴이 낯설었다. 아마도 조금 피곤했던 것 같다.
재하에게 호기롭게 이별을 선언한 이후, 처음 며칠은, 그저 그런 날들인 척하기가 힘들었다. 하루가 멀다고 보던 얼굴을 사흘에 한 번, 나흘에 한 번 겨우 스치게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일상의 균형이 서서히 어긋났다. 보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니다. 못 본 거였다. 그 간극은 생각보다 더 멀고 깊었다. 괜찮다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뇌었지만, 그 말은 금방 들켜버릴 거짓말처럼 자꾸만 겉돌았다.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대충 밥을 뜨고, 알림 창을 닫고, 잠든 척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휴대폰을 들었다 놓았다. 손끝으로 미끄러지듯 쓸어 넘기다가, 다시 화면을 꺼두기를 반복했다. 메시지를 열까 말까 망설이는 동안에도, 아무 일도 없던 날의 통화 목록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숫자 하나, 초 단위까지 표시된 시간들. 그것들이 마치,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듯한 착각을 불러왔다.
테이블 위에 엎드려 있던 팔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손바닥 안쪽이 눅눅해져 있었다. 오래 쥐고 있었던 폰이 점점 무게를 더해오는 것 같았다. 기계는 가벼운데, 그 속에서 전해지지 못한 말들은 자꾸만 손을 무겁게 했다.
재하에게서 전화가 온 건 연락을 끊고 닷새쯤 지난 저녁이었다. 화면에 ‘이재하’라는 이름이 뜨는 걸 보고, 그걸 한참 들여다봤다. 진동은 계속 울리고 있었고,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볼 안쪽이 천천히 뜨거워졌다.
“밥 먹자. 남봉우-”
전화기 너머로 그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방금 전까지 다른 앱을 열어보다가 화면을 켠 채 멈칫하고 있던 나는, 실수처럼 전화를 받아버렸다. 그는 평소처럼 말했다. 어제도 통화했던 사람처럼. 내 안은 아직 조용해질 틈이 없는데도, 나는 응, 하고 짧게 대답했다. 목소리가 조금 떨렸는지도 모르겠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손에 힘이 빠졌다.
그제야 숨을 제대로 들이켰다. 짧은 통화는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고,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의 목소리를 들은 뒤로 몸 어딘가가 찌릿, 살아난 것 같았다. 심장이 아니라, 무릎 뒤나 쇄골 언저리 같은 데가. 말랑한 신경이 툭 건드려진 듯한 기분.
휴대폰 화면엔 짧은 통화기록이 남아 있었다.
‘저녁이나 같이 먹을까?’라는 그의 말과, 내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 그 순간이 담겨있는.
가방부터 챙겼다. 원고지 위엔 아직도 한 줄도 쓰이지 않았고, 마감은 이번 주 금요일이었다. 글은 손에 안 잡혔고, 마음은 자꾸 허공을 따라 흘렀다. 현관 앞에서 신발을 신다가 벗었다가, 다시 신었다.
밖으로 나서자, 바람이 살갗을 스쳤다. 잠시 설렘과 망설임이 동시에 끌려 나왔다. 뭐랄까, 오랜만에 외출한 강아지처럼,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다.
그를 다시 만난 건 내 기준에선 정말 오랜만이었다. 멀리서 얼굴이 보이자, 안쪽에서 툭, 하고 정리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준비해 간 말도 없었고, 꺼내려던 말들은 다 흩어졌다. 그냥, 그 자리에 그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말은 거의 없었다.
테이블 위에는 김 다 빠진 맥주랑, 맛이 다 빠진 어묵탕이 놓여 있었다. 대화보다는 숟가락 소리, 맥주 거품 빠지는 소리가 더 컸다. 그런데도, 이 별거 없는 밤이 참 괜찮았다.
“이 집, 너 좋아했잖아.”
그가 젓가락으로 어묵을 집으며 말했다.
“응. 아직도 맛은 없네. 그래서 더 좋아하기도 하지만.”
내 말에 그가 피식 웃었다.
“역시. 넌 원래 이상한 데서 취향 확고했어.”
“그럼 넌 맛있다고 생각했어?”
“아니. 그래서 나도 계속 왔잖아.”
잔이 가볍게 부딪혔다. 웃음이 짧게 스쳤고, 공기가 다시 가라앉았다.
그가 앞에 놓인 물 잔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뭐 하고 지냈어?”
낮고 조용한 목소리였다. 오래 안 본 사람에게 건네는, 특별할 것 없는 인사처럼. 대답은 준비돼 있지 않았지만, 떠오르는 말은 하나 있었다. 하루 종일 너 생각만 하며 시간을 다 써버렸다고. 말은 목까지 올라왔지만, 결국 거기서 멎었다. 삼킨 건 말인지 감정인지, 입천장 뒤로 눌린 침묵만이 남았다. 고개를 들고 그를 봤다. 고요한 얼굴, 익숙한 눈빛. 익숙해서 낯설지 않았고, 그만큼 그리웠던 얼굴.
“원고 정리 좀 하고, 다음 책도 슬슬 생각하고 있어.”
그는 고개를 천천히 두어 번 끄덕였고, 숟가락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어묵탕 속 둥근 무가 떠올랐다가, 물살에 밀려 조용히 가라앉았다.
“넌? 너는 어떻게 지냈어?”
내가 물었다.
“나도 똑같지 뭐. 학교 가서 애들 가르치고, 집 오면 뻗고. 뻔하지.”
“너도 다를 건 없구나.”
노래가 느릿하게 흘렀다. 어디선가 들어봤던 멜로디가 기억 저편을 건드렸다. 나는 무심코 고개를 한 번 흔들었다. 음악을 따라한 것도, 감정을 털어낸 것도 아니었지만, 몸이 먼저 그렇게 움직였다.
“참, 봉우야.”
사실 아직도 재하가 나를 그렇게 부르는 게 완전히 익숙하진 않았다. 오랜만에 듣는 것도 아닌데, 이름이 붙는 순간마다 마음 어딘가가 움찔거렸다. 꼭 누가 내 이름을 빌려 쓰는 것처럼. 싫은 건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낯설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이름을 불렀다. 빈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꺼내기 전처럼 잠시 숨을 골랐다. 그 눈길 하나에 목 아래로 짧은 숨이 걸렸다. 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물었다.
“왜.”
중요한 말을 하려는 눈빛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자꾸 마음을 쏟게 만들던 옛 얼굴이 겹쳐졌다. 뭐가 좋은지도 몰랐던 무렵부터, 나는 그런 눈에 약했다. 다 담지 못한 무언가가 머무는 듯한 눈. 말보다 먼저 닿아버리는 눈. 지금 그 눈이 다시 내 앞에 있었다. 나는 웃지도 않았고, 피하지도 않았다. 괜히 등을 의자에 붙였다. 아직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는데, 눈빛이 먼저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목소리보다 눈이 더 가까웠다.
그가 입을 열려했다. 그 순간, 가슴 안에서 낯선 불안이 꿈틀거렸다. 그 말이 무엇이든, 듣는 순간 지금껏 붙들고 있던 다짐이 흩어질 것만 같았다. 내가 겁낸 건 말이 아니라, 그 말에 담긴 마음이었다. 나는 무심결에 손을 들었다. 그의 입술을 막으려는 듯, 아주 짧은 순간. 하지만 닿기 직전, 허공에서 멈췄다. 그 거리만으로도 숨이 걸렸다. 그가 아직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마음이 먼저 흔들렸다.
“너, 진짜 그렇게 쳐다보지 마.”
공중에 멀뚱히 멈춰진 손을 내리며 중얼거렸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단정하고 아무렇지 않은 웃음. 꼭 나만 허둥거린 것처럼.
“어떻게?”
“나를… 어떻게 해보려는 눈빛. 그러면 내가 흔들릴 거라 생각하는 거잖아.”
말끝에 묻은 숨이 잔 위를 스쳤다. 그 말이 내 안에 가라앉고 있었다.
“너, 그렇게 보면 나 흔들려. 그러니까 하지 마.”
“알겠어.”
그는 웃었다. 작고 조용하게, 아무 말도 없이.
그 웃음 하나에, 애써 세운 마음이 모래처럼 흘러내렸다.
나쁜 놈. 그러는 게 어떤 의미인지, 다 알면서.
“근데 왜 불렀어?”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탁자 위의 컵을 괜히 만지작거렸다. 대답 대신 시선을 들며, 오히려 물었다.
“근데 내가 어떻게 본 건데? 나 그냥 쳐다본 건데. 갑자기 억울하네.” 그리고는 눈썹을 살짝 추켜올리며 혼자 웃었다.
“아니, 너 그 이상한 눈빛 있잖아. 나는 그게 싫다고.”
나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조절해? 나도 모르는 내 눈빛을.”
그의 말에 내가 피식 웃었다.
그의 말이 진짜 웃긴 건 아니었는데, 왠지 웃음이 났다. 허탈하면서도 익숙한 기분. 그는 곧 따라 웃었고, 그 웃음은 조금 길었다. 테이블 위를 휘돌아 다시 우리 앞에 머물렀다. 웃고 있는 우리 얼굴이, 오래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잠시지만, 쓸쓸했던 공기가 조금 덜 무거워졌다.
한참을 그렇게 웃고 나니, 목이 말랐다. 나는 컵을 들어 물을 마셨고, 입가를 한번 문질렀다. 그는 앞에 놓인 물 잔을 만지작거렸다. 탁자 위엔 마시다 만 잔이 두 개. 식은 김과 잔잔한 웃음기, 그리고 아직 식지 않은 무언가가 남아 있었다. 괜히 마음이 저려왔다. 별 말도 안 했고, 별일도 없었는데, 그 순간이 어딘가 다시 돌아가고 싶은 장소처럼 느껴졌다. 내가 먼저 놓겠다고 했던 마음인데. 왜 자꾸, 이렇게- 돌아서면 또 돌아보고 싶어지는 걸까.
“재하야.”
그가 고개를 들었다. 느리게, 천천히, 마치 무언가를 삼킨 뒤처럼. 시선이 올라와 나를 마주했다. 빛도, 그림자도 붙지 않은 눈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그 안에는 이미 말이 묻어 있었다.
“너는 진짜로…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해도 괜찮아?”
입 안에서 오래 맴돌던 문장이, 불쑥 흘러나왔다. 가볍게 던지면 깨질 것 같고, 솔직히 꺼내면 나만 무너질 것 같은- 그런 질문이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눈빛에 작은 파장이 번졌다가 사라졌다. 그 미세한 흔들림 하나에 내 속이 먼저 무너졌다. 나는 억지로 웃었다. 오래전부터 익어버린 표정이었다. 진심을 감추기엔 그게 제일 쉬웠으니까.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정말로?”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끝자락이 흔들렸다.
그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긴 침묵 끝에, 물었다.
“네게?”
“응.”
그는 잠시 시선을 떨구었다가 다시 나를 보았다.
“글쎄.”
짧은 단어였다. 그런데 그 말 하나가 마음 어딘가를 스쳐 지나갔다. 입술에서 떨어진 건 또렷했지만, 말끝은 희미했다. 마치 끝내고 싶지 않은 말처럼. 분명한 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분명한 건, 나는 아직도 그의 말에 흔들린다는 것이다. 이미 괜찮아졌다고 믿었는데, 그 한마디에 마음이 조용히 비틀렸다.
바람에 쉽게 기우는 나뭇잎처럼, 그의 눈빛 하나에도 중심이 어긋났다. 미적지근한 잔이 조용히 식어가는 동안, 나는 젓가락을 들어 찬 반찬 하나를 입에 넣었다. 별 의미 없는 행동이었지만, 그 순간에 기댈 수 있는 건 식어빠진 반찬뿐이었다. 가게 스피커에선 다음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낮은 멜로디가 테이블 사이를 흘렀고, 나는 눈을 내리지도 못한 채 그를 마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