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복도 끝, 노랗게 칠해진 오피스 문 앞에 섰다.
벽과 문 사이, 장식 하나 없는 복도는 희미하게 울리는 발소리만 남겨두고 있었다. 회색 타일에 반사된 빛이 낮은 형광등 아래서 퍼졌고, 노란 문짝만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금속이 손바닥에 달라붙었다. 문을 열기까지 시간이 길게 늘어졌다.
신청이 필요한 건 아니었을까, 괜히 찾아온 건 아닐까.
그런 망설임 끝에 복도 중간의 작은 화장실로 발길을 돌렸다.
거울 속 얼굴은 낯설었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통화 버튼 위에서 손가락이 한참 머물다, 자판기 버튼을 누르듯 눌렀다. 신호음이 두 번 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봉우니?”
“네, 선생님. 저, 그게…”
“혹시, 여기 온 거야? 어디니? 나 지금 나왔는데.”
화장실 문을 나서자, 복도 끝 노란 문 앞에서 그녀가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키 큰 화분 옆에 선 얼굴은 반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미소는 햇빛처럼 밝지는 않았지만, 오래 기다린 사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었다.
“잘 왔다, 봉우야. 들어가자.”
방 안은 생각보다 아늑했다. 작은 원형 테이블 주위로 몇 명이 둘러앉아 있었고, 벽 한쪽엔 따뜻한 차와 과자가 놓여 있었다. 김이 천천히 퍼지며 공기를 적셨다.
“어서 오세요, 처음 뵙는 분이시네요.”
한 여성이 다가와 웃었다.
나는 학생처럼 어색하게 몸을 세우고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작았다. 그녀는 손짓으로 자리를 권하며 말했다.
“편한 곳에 앉으시면 돼요. 모두 처음엔 그랬거든요.”
회색 천으로 덮인 소파에 앉자, 살짝 꺼진 쿠션이 몸을 감쌌다. 심장이 조금 늦게 뛰는 기분이었다. 몇몇 시선이 스쳤지만 오래 머무르진 않았다. 곧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고, 방 안엔 낮은 숨소리와 잔잔한 기척만이 흘렀다.
곧 이 모임의 리더가 자리에 앉았다. 짙은 니트 차림에 단정한 얼굴, 안경 너머 눈빛은 방을 한 바퀴 훑었다. 그는 입술을 한번 눌렀다 떼고 말했다.
“오늘은 처음 오신 분도 계시네요. 이곳은 누구에게도 이유를 묻지 않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그저 앉아 있기만 해도 괜찮습니다.”
창밖에서 자동차 소리가 지나가고, 누군가 숨을 들이쉬었다.
“누구는 슬픔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고, 누구는 그걸 알아봐 주길 바라면서도 끝내 입을 닫죠. 이곳은 그런 마음이 잠시쯤 쉴 수 있는 곳이면 좋겠습니다.”
말이 멈추자, 방 안은 수면 아래로 천천히 가라앉는 듯했다. 컵을 들어 올리는 손, 소매를 매만지는 손길이 이어졌다. 작은 움직임들이 고요한 공기를 메웠다.
중년의 여성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는 두 달 전에, 남편을 떠나보냈어요.”
목소리는 작았고, 단어 하나하나가 눌려 나왔다.
“갑작스러운 사고였고, 아직도 현실 같지가 않아요. 매일 밤 꿈속에서 그의 목소리를 듣다 깨어나요. 그 순간이 제일 괴롭웠어요. 눈을 뜨면, 아무도 없다는 걸 다시 확인해야 하니까요.”
그녀의 눈은 먼 곳을 향했고, 표정은 감정을 감춘 듯했지만 그래서 더 아파 보였다. 방 안엔 숨조차 가벼웠다. 이후로도 이야기는 흘렀다.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남자, 부모를 동시에 잃은 청년, 친구를 보내고 다시는 가까워질 수 없었다는 사람.
어떤 이는 소매 끝만 만지작거렸고, 어떤 이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다들 중심에 서려 하기보다 자기 안에서 조금씩 꺼내놓는 듯했다. 울지 않았고, 다독임도 없었다. 그런데도, 이상할 만큼 내 마음이 조금씩 자리를 찾는 듯 옮겨졌다.
마지막으로, 구석에 앉아 있던 노인이 말했다.
“나는… 손녀를 잃었어요.”
목소리는 평범했지만, 오래된 먼지처럼 눅눅한 냄새가 묻어 있었다.
“네 살이었는데요. 아직도 그 아이가 자주 보입니다. 특히 냉장고 앞에 설 때. 늘 뭐가 없냐고 묻곤 했거든요. 그 작은 발로 슬리퍼 끌며 와선, 집엔 맨날 똑같은 것밖에 없다고요. 그래도 자꾸 냉장고 문을 열어요. 이번엔 뭔가 있을까 봐. 그래서 저도 어직까지도 그 냉장고 문을 열어봅니다. 그 아이가 돌아와 맛있다고 할 만한 게 있을까, 싶어서요.”
그 말에, 찻잔을 꼭 쥐는 손이 눈에 들어왔다. 고개 숙인 사람도 있었고, 두 손을 무릎에 얹은 이도 있었다. 말 대신 작은 움직임이 방 안을 채웠다.
슬픔이란 건, 어느 날 문득 찾아와 울리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렇게 천천히 살갗 아래로 스며드는 것이라는 걸, 이제야 조금은 알 거 같았다. 지워지지 않고, 끝나지 않고, 어딘가에 여전히 남아서 어떤 날의 우리를 조용히 멈추게 만드는 것.
그 이야기 하나하나가 마치 내 안의 무언가를 조용히 두드리는 것 같았다.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어떤 감각이, 아주 천천히 부서지고 있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선생님이 조용히 내 손을 잡았다. 작은 손,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온기. 말은 없었지만, 그 감정은 또렷했다.
입술이 한 번 열렸다가 이내 닫혔다. 내 안에서 오래 웅크린 말들이 목구멍에 걸려, 끝내 바깥으로 흘러가지 못했다. 방 안의 이야기들은 천천히 나를 스쳤지만, 나는 그 흐름 속으로 섞이지 못한 채 한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아직도 내 안에는 재하가 남긴 그 문장이 있었다. 마치 금기처럼, 꺼내려는 순간마다 목을 가로막는 한 줄기 그림자. 그 문장에 사로잡힌 채, 나는 말 대신 숨만 내쉬었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의 모임이 끝나갈 무렵, 이야기를 마친 사람들은 조용히 서로에게 인사를 건넸다. 누군가는 눈가가 부어 있었고, 누군가는 물 잔을 천천히 비우며 가방을 챙겼다. 말보다 움직임이 앞섰고, 그 움직임은 오래된 종이를 접듯 조심스러웠다.
나도 선생님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매 끝을 정리하며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처음이라 어색했지?”
선생님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조금요. 근데… 생각보다 마음이 더 무거워졌달까.”
그녀는 내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나도 처음엔 한 달 동안 아무 말도 못 했어. 그냥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힘들더라. 근데 말은 안 해도 돼. 여기 오는 것만으로도, 조금씩 달라질 거야.”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말을 못 하는 것도, 괜찮은 걸까요?”
“괜찮아. 말은 언제든 꺼낼 수 있어. 하지만 어떤 마음은, 오래 침묵해야 겨우 모양을 드러내기도 하거든. 마치 흙 속에 묻힌 씨앗처럼, 바로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 안에서 조금씩 싹이 자라잖아.”
그녀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사람마다 마음속엔 건드리기 어려운 풍경이 하나씩 있어. 그걸 꼭 꺼내 보여줄 필요는 없어. 다만 그 풍경을 혼자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면, 조금은 가벼워질 거야.”
그녀의 손이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차가 떠난 뒤에도,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조금씩 어두워지는 하늘 아래, 차들이 길 끝으로 흘러갔다.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바람이 어깨너머로 지나갔다. 그 바람 속에서,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만을 되뇌었다.
가방 안에서 진동이 울렸다. 낮게 떨리다 멎었다가, 다시 이어졌다. 나는 가방 속을 더듬어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 위로 [재하]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잠시 멈칫했지만, 결국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응, 재하야.”
“어디야?”
나는 차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의자에 앉아 문을 닫은 뒤, 창문 너머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 잠깐 볼 일 보고 있어.”
짧은 침묵. 그 사이, 말하지 못한 말이 입 안에 고였다가 끝내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래? 너 좋아하는 빵집 지나가길래, 빵 샀어. 문고리에 걸어둘게.”
“고마워. 요즘 애들 중간고사라 바쁘지?”
“응. 시험 문제 만들다 머리 터지는 줄 알았어.”
“빨리 들어가서 쉬어. 내일 또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잖아.”
“그래. 너도 조심히 들어가.”
통화가 끝나고도 한동안 휴대폰 손에 쥔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조금 전까지 머물던 방의 공기, 말없이 건네졌던 손길,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전해졌던 감정들. 지금은 다 멀리 흩어진 듯했다.
차창 너머 저녁노을이 창백하게 번졌다. 시동을 걸지 못한 채, 손등 위로 남아 있던 잔열이 서서히 식어갔다.
그가 사다 준 빵을 문고리에서 조심스레 빼 들고, 문을 열었다. 집 안은 고요했다. 누구의 목소리도, 기척도 없이, 익숙한 어둠이 방 안에 내려앉아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봉지 안을 뒤적여 빵 하나를 꺼냈다. 포장을 뜯는 소리가 공기 속에 또렷이 퍼졌다. 식탁에 앉아 한 입 베어 물었지만, 맛은 잘 느껴지지 않았다. 생각은 자꾸 오늘로 돌아갔다. 처음 간 모임. 처음 본 사람들. 낯선 이야기들. 그 안엔 이상하게 따뜻한 것이 있었다. 병원 상담과는 전혀 다른 결이었다. 말투, 눈빛, 침묵의 간격.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그 모든 게, 아직 꺼지지 않은 불빛처럼 마음 한쪽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
빵 하나를 다 먹고 나서, 나는 휴대폰을 들었다. 문자창에 짧게 타이핑했다.
– 맛있다. 고마워.
전송 버튼을 누른 뒤, 빈 접시를 바라보며 기다렸다. 잠시 후, 화면에 답장이 떴다.
– 오늘은 술 마시지 말고 일찍 자.
나는 화면을 내려다보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술을 마셔야 일찍 자지.”
입꼬리가 조금 올랐다. 누가 들은 것도 아닌데,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손바닥에 남은 온기를 한 번 더 느꼈다.
그는 늘 딱 그만큼만 건넸다.
아무렇지 않은 문장 뒤에, 말보다 많은 무언가를 숨겨 두듯이.
소파에 몸을 기대고 눕자, 방 안이 고요히 내려앉았다. 주방 쪽을 향해 시선을 두었다. 불도, 소리도, 시간도 멈춘 듯한 공간. 그 정적 속에서만 마음이 가라앉았다. 낮게 깔린 조명이 손끝을 스치고 흘러갔다. 그 빛이 오래 머무는 동안, 묵혀둔 감정들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모임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냥 ,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 말이 어쩐지- 지금의 나에게 꼭 맞는 말처럼 느껴졌다. 오늘 하루가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지이잉. 침묵 위로 진동 소리가 낮게 울렸다. 소파 끝에 내려놓았던 전화기가 천천히 떨리고 있었다. 나는 누워있는 그대로, 화면도 확인하지 않고 손을 뻗었다. 습관처럼 익숙하게, 아무 의심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재하야.”
“어, 나 석호.”
익숙한 목소리에 순간 멈칫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자세를 조금 일으켰다.
“선배, 재하랑 문자 중이었어요. 그래서 그냥 받아버렸네.”
그럴듯한 핑계와 함께, 어색한 웃음소리를 꺼냈다.
“머릿속이 온통 이재하 생각뿐인 건 아니고?”
“아니거든요. 무슨 일이에요?”
소파 옆 테이블에 놓인 물 잔을 들어, 천천히 입술을 적셨다.
“너한테 어울리는 사람을 찾은 것 같아서.”
“어디서요?”
나는 몸을 일으켜 등을 기대며 묻는다.
“내 고등학교 후배야. 진짜 괜찮은데, 소개받아볼래?”
그의 목소리는 가볍고 확신에 차 있었다. 마치, 그 사람을 만나면 내가 조금 더 괜찮아질 것처럼.
“물론이죠.”
가볍게 대답했다.
“이번 주 일요일 어때? 오후 한 시쯤. 점심약속인데 괜찮지?”
“괜찮아요. 오히려 좋아요.”
“잘됐다. 너 분명히 좋아할 거다. 조용하고 배려 깊은 스타일인데, 그리고 웃는 모습이 쫌 괜찮아.”
나는 쿠션에 얼굴을 묻었다가 다시 들어 올렸다.
“선배, 그 사람한테도 저 이렇게 소개했어요?”
“걔한텐 담백하게, 너한텐 MSG 살짝 섞어봤어.”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 말투도, 농담도 싫지가 않았다.
“그날 뭐 입고 나가지? 토요일엔 미용실이라도 다녀와야 하나? “
“꾸미지 말고 나가. 너답게. 그게 남봉우지.”
선배의 목소리는 가볍고 단정했다. 마치 별말 없이도 나를 제법 잘 아는 사람처럼. 통화를 끊고 나서야, 나는 다시 한번 전화기를 들었다. 읽지 않은 메시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 이름을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재하]
그 두 글자를 천천히 바라보다, 작게 숨이 섞인 웃음이 흘렀다. 아무도 듣지 못할, 소리 없는 웃음. 혼자 있을 때만 지을 수 있는 표정 같은 것. 여전히, 재하는 거기에 있었다. 그건 그냥… 아직 거기에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데도, 마음이 조금은 다른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작게. 나는 그 문장을 한 번 더 읽고 나서, 손등으로 휴대폰을 툭 뒤집었다.
오늘은. 술을 마시지 말아 볼까,
오랜만에 따뜻한 차를 내려 마셨다. 김이 피어오르는 머그컵을 두 손으로 감싸고, 천천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깊어진 밤. 조용한 거리. 그리고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노을빛의 잔상. 늘 그렇듯, 무언가 끝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하루였다. 그 잔상처럼, 마음 한쪽도 아직 저물지 못한 채 어디쯤인가, 맴돌고 있었다.
끝나지 못한 감정은 언제나 그렇게- 다음 날을 밀고 들어왔다. 그리고, 어쩌면 그 감정은 누군가의 다른 기억 속에서도, 비슷한 모양으로 움직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