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만남을 위해 기다리는 시간은 어색했다.
지난 몇 년간 내 인생에 새로움이란 거의 없었으니까. 지겨울 정도로 매년 마주하는 익숙한 얼굴들, 오 년째 반복되는 업무, 한정된 작업 공간. 모두 나를 과거에 묶어두기에 충분했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 낡은 익숙함이 싫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그런 편안함에 기대 살아왔다. 재하도- 그중 하나였다.
목 안까지 차오른 어색함을 삼키며, 약속 장소로 향했다. ‘남색 카디건을 입은 남자’라는 선배의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창가 쪽에서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을 보고 있던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향해 시선을 맞췄다. 그 순간, 조금 낯이 익은 것도 같은데... 눈가를 살짝 찌푸리며 기억을 더듬고 있을 찰나, 그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단단한 손을 내밀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정 남우입니다.”
“안녕하세요. 남 봉우예요.”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그의 손을 살짝 쥐었다 놓았다. 그리고 습관처럼, 수줍게 웃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수줍은 척했다. 그가 나를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봉우 씨, 그날 식사까지 같이 했는데, 설마 모른 척하려고요?”
장난처럼 웃는 얼굴이 보였다. 그제야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처음 눈이 마주쳤을 때부터, 어딘가 낯이 익다고 생각했지만 소개팅 자리에서 마주하게 될 줄은- 감독님을, 여기서. 그건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아, 감독님을 소개팅 자리에서 뵙게 될 줄은 몰랐어요. 하하.”
“저도요. 그래도 좀 반가운데요.”
그가 컵을 들어 조용히 입을 축였다. 나보다 두 살이 많다고 했었나.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말투나 눈빛 같은 데서 ‘연상’ 특유의 단정함이 났다. 넥타이 색이 괜히 고급스러워 보였고, 긴 다리로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도 꽤 멀끔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눈가에 단정히 박힌 두 줄의 주름. 그리고 피부 여기저기 패인 자국들. 시간을 정직하게 맞은 얼굴이랄까. 그런 건 묘하게 신뢰를 주기도 하니까.
며칠 전까지만 해도 회의실 반대편에서 진지하게 내 글을 읽던 그가, 지금은 내 앞에서 웃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우스웠고, 조금은 괜찮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사람 말 한마디마다 ‘이건 재하가 들으면 웃겠는데’ 같은 생각이 자꾸만 튀어나온다는 거였다. 나는 대답하는 척, 웃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재하에게 전할 문장을 고르고 있었다. 가볍게 넘길 얘기 하나, 적당히 흥미 끌 만한 얘기 하나, 그리고 마지막에 ‘괜찮은 사람 같아’ 정도는 덧붙일 수 있도록.
소개팅 자리에서 이러고 있는 나도 좀 웃겼고, 그 와중에 되게 성실하게 머리 굴리는 내 뇌가 슬슬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커피 잔을 한 번 들어 올렸다가, 다시 천천히 받침에 내려놓았다. 손끝이 컵의 옆면을 짧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 움직임이 괜히 눈에 들어왔다.
“사실… 소개팅 제안받았을 땐 별생각 없었어요.”
창밖을 바라보며 말한 그의 목소리는 낮고 느렸다.
“근데 선배가 ‘남봉우’라는 이름을 꺼냈을 때, 잠깐 멈칫, 했죠.”
잔을 들고 있던 손이 아주 조금, 멈췄다. 무심하게 움직이던 손끝이 공기 속에 걸려버린 것처럼. 그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정작 소개팅 상대의 이름조차 모른 채로 이 자리에 나온 셈이었다.
“그 이름, 흔하지 않잖아요.”
그가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툭 말을 던졌다. 눈매가 가늘게 휘었고, 장난기가 스치듯 지나갔다.
“혹시, 내가 아는 그 작가?라는 그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나는 아무 말 없이 입꼬리만 살짝 올려 보였다. 시선을 피하듯 잔 안을 들여다봤다. 식은 커피 위에 얇게 비친 조명 불빛이 느리게 떨렸다.
“그래서, 이름 듣고 나올 마음이 생겼던 거예요?”
잔을 입에 대며 그에게 물었다. 목소리는 평범했는데, 입안이 조금 마른 것도 같았다. 그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반쯤은 호기심, 반쯤은… 그냥 그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요.”
잔을 놓은 손이 잠깐 멈췄다가, 자연스럽게 테이블 위를 지나갔다. 그 말도, 손끝과 함께 테이블 위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마치 오래 듣지 못했던 내 이름이, 불쑥 누군가의 입에 실려 다시 돌아온 기분이었다. 조금은 쑥스럽고, 조금은 낯설었다. 이름이라는 건, 이렇게도 낯설게 기억될 수 있구나.
나는 천천히 웃었다. 입술만 살짝 열렸다가 닫혔다.
“생각보다 되게 솔직하시네요.”
그 말을 꺼낸 뒤, 괜히 얼굴이 뜨거워졌다.
“저요? 원래 좀 그래요. 괜히 멋 부리는 거 잘 못 해서.”
그가 웃었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웃음이었다. 투명한 얼굴. 표정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데, 말은 자꾸 깊은 데로 떨어졌다.
“근데 진짜로 작가님이 앞에 계실 줄은 저도 확신은 없었어요.”
그가 잔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인연이란 참 이상하죠. 일로 한 번, 소개팅으로 또 한 번.”
“그러게요. 저희 참 바쁘네요.” 나는 웃었다. 장난처럼.
두 사람 사이로 잠깐 정적이 흘렀고, 창밖의 빗소리가 테이블 위까지 조용히 번졌다. 그와의 대화는 생각보다 자연스러웠다. 낯선 사람 앞에서 늘 그렇듯 조심스레 단어를 골라 쓰긴 했지만, 중간중간 터지는 웃음이나 한 박자 늦게 겹치는 말들이 어색하기보다는 오히려 편했다. 그는 말을 건넬 때마다 눈을 곧게 마주쳤고, 고개를 조금씩 기울이며 내 말에 집중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처음 내어졌던 음식은 접시 위에서 거의 사라졌고, 식사를 마무리할 무렵 가져다준 커피는 잔 속에서 끝을 보이고 있었다. 무릎 위에 놓인 냅킨으로 조심스럽게 입가를 닦아낸 그의 손짓에서, 이제 곧 이 자리를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때였다. 그가 문득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름이 비슷하네요, 서로.”
만남의 끝 무렵에 어울리는 말이었다. 헤어지기 직전, 갑자기 떠오른 듯 꺼낸 가벼운 이야기.
“정말, 그러네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도 잔잔하게 웃었다. 굳이 어떤 인상을 남기려 애쓰지 않으면서도, 마지막까지 흐트러짐 없는 태도였다. 계산서가 테이블 위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나는 지갑을 꺼내며, 자연스럽게 말했다.
“이번엔 제가 낼게요. 저번엔.. 감독님이 사셨으니까요.”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때는 미팅이었고, 오늘은 소개팅이잖아요”
말끝이 길게 남았다. 그 뒤로 살짝 웃은 얼굴이 이어졌다. 나는 괜히 커피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래도 이번엔 제가 내야지 공평하잖아요.”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손을 뻗어 계산서를 가져갔다. 손끝이 종이를 넘기다, 내 손등 근처를 가볍게 스쳐 지나갔다.
“첫 소개팅 계산은 저한테 기회를 주세요.”
“좋아요. 그럼, 다음엔 꼭 제가 살 수 있게 해 주세요.”
“알겠어요. 근데 그거, 에프터죠?”
그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말은 장난 같았지만, 눈빛은 그렇지 않았다. 나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손에 쥐고 있던 냅킨을 괜히 한 번 더 접었다 폈다. 그는 계산서를 가볍게 들었다가, 말없이 반으로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곤 조용히, 마치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소개팅에서 여자가 계산하는 건 원래 좀 실례죠.”
말끝에 잠시 뜸을 두더니, 눈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러 천천히 마주 온 눈빛이었다.
“보통은… 마음에 없을 때 그러잖아요?”
잔잔하게 깔린 음악 위로, 그의 말이 얹혔다. 나는 웃지도, 대답하지도 못한 채 그 말의 끝에 머물렀다. 잠시, 그대로.
식당 밖은 빗물에 젖어가고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던 빗줄기는 여전히 가늘고 일정하게 내렸고, 우리는 출입문 앞에 나란히 선 채, 잠시 말없이 그 빗속을 바라보았다. 천막 아래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바닥에 작은 원을 그렸다. 젖은 아스팔트 위로 간판 불빛이 물기를 머금고 퍼졌고, 그 위로 희미하게 발끝 그림자가 겹쳐졌다. 남우 씨가 옆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데려다 드릴까요?”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짙은 회색의 실루엣 너머로 그의 눈매가 고요하게 담겨 있었다.
“차를 가져왔어요.”
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웃었다.
“그럴 것 같았어요.”
“오후에 비 온다길래.”
말끝이 흐려졌고,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말이 멎자, 빗소리가 조용히 틈을 메웠다. 공기엔 젖은 먼지 냄새와, 따뜻했던 식당 안의 온기가 얇게 섞여 있었다. 눈을 마주치기보다는, 그저 유리창 너머 흘러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는 게 서로에게 더 자연스러웠다. 비는 천천히 어두워지는 저녁 공기 속으로 젖어들고 있었고, 시간은 마치 잠깐 멈춰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산은 꺼내지 않았다. 출입문 아래 좁은 처마 밑에 나란히 서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남우 씨는 말없이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치고 있었다. 의식하지 않은 척하면서도, 그 움직임엔 조심스러운 망설임이 배어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아마도, 무언가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아직, 그 말이 입술까지 도달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대신, 천천히 말을 꺼냈다.
“이 소리, 금방 멈추긴 아깝죠?”
그가 나를 바라봤다. 살짝 놀란 듯, 그러나 금세 부드럽게 웃었다. 말하지 않아도, 꼭, 무슨 말인지 다 알겠다는 얼굴로. 그 말이 빗소리 사이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우리를 둘러싼 공기가 조금 느려졌고, 머무는 침묵에도 의미가 생겼다. 비가 내린다는 이유로 우산을 꺼내지 않은 것처럼, 서로의 곁에 잠깐 더 머물러도 좋을 것 같은 시간이었다.
갈 수 있지만, 가지 않아도 되는 순간. 굳이 이유를 붙이지 않아도 되는 감정. 우리는 말없이 조금 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바닥에 고인 물 위로 간판 불빛이 번지고 있었다. 빗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그 빛이 작게 흔들렸다.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을 땐, 조금 전까지 머물렀던 자리에 그가 아직 서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미러를 잠깐 들여다봤지만, 이미 물방울만이 흔적처럼 맺혀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재즈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도로 위의 불빛들은 비에 젖어 길게 번지고 있었다. 신호 대기 중, 전화가 울렸다.
석호 선배였다.
“여보세요?”
“어땠어?”
받자마자 다그치듯 건너온 목소리.
“남우 씨한테 먼저 물은 거예요? 아님 내가 먼저예요?”
“너랑 헤어지고 들어가는 길이라고, 전화 왔어. 너보다 먼저.”
나는 잠깐 웃고 나서, 그대로 물었다.
“나, 좋대요?”
그는 망설임 하나 없이 말했다.
“응.”
“나도 좋았어요. 근데, 내 말은 전하지 마세요.”
그가 허허, 하며 웃었다.
“아는 사이였다며?”
“그러니까요. 내 소설의 감독님이 나올 줄 누가 알았겠어요.”
“운명인가 보다, 두 사람.” 조금 들뜬 목소리였다.
“재하보단 아니지만, 나쁘진 않아요.”
“상처 줄 거면 시작도 하지 마.”
“거참, 친구라고 되게 챙기네요. 질투 나게.”
전화기 너머로 동시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기분 좋은 웃음이었다. 비 오는 저녁, 돌아오는 차 안의 온도는 따뜻했다.
그와 전화를 끊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내내 남우와 재하를 번갈아 떠올렸다. 두 사람은 너무 달랐다. 말투도, 눈빛도, 조용히 웃는 방식도. 오히려 그 다름 때문에, 자꾸만 재하와 함께했던 시간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하지만 그 비교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익숙한 것을 놓고, 새로운 걸 선택해 보려는 시도. 그 자체가- 지금의 나에게는 꼭 필요했다.
아파트 복도를 따라 걷는 발소리가 조용하게 울렸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실내엔 하루 종일 비를 맞은 공기 냄새가 은근히 배어 있었다. 불을 켜지 않아도 방 안은 희미하게 환했다. 가로등 불빛이 커튼 틈 사이로 스며들어, 바닥 위에 엷은 주황빛을 드리우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거울 앞에 섰다. 아무 말 없이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어쩌면 나는, 이제야 정말로- 재하를 놓아줄 준비를 아주 조금은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그건 누군가를 잊는다는 말과는 조금 달랐다. 그저, 한 시절을 조용히 보내주는 일. 더는 붙잡지 않고, 그대로 흘려보내는 마음 같은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