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윤희 Jul 16. 2019

03. 양조장에서 아빠와 보물찾기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양조장

안녕하세요?

브런치 홈 메인에 제가 소개되나니... 감사합니다.

<볼 빨간 부녀의 우리 술 여행기>는 지난 일 년간 여행 매거진 트래비 Travie에 연재한 후, 현재 에세이로 다듬는 중입니다.


브런치 연재를 하다 퇴고 후 출간을 위한 작업을 하다 보니 잠시 중단했지만, 소개해 주신 감사에 힘입어 연재를 계속 이어가고자 합니다. 참고로 연재 원고는 출간 전 원고입니다.


이 글을 보는 모든 이들에게 아빠와 딸의 사랑이 전해지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03. 양조장에서 아빠와 보물찾기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양조장




어릴 적 소풍을 가면 빼먹지 않는 하이라이트는 바로 보물찾기 게임이었다. 가장 귀한 물건을 찾은 사람이 이기는 보물 찾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곤 했었다. 내 기억 속 가장 큰 보물은 ‘돈’이었다. 지폐를 보물로 찾은 횡재를 얻어 신나서 엄마에게 달려가면 저금을 해야 한다며 가져가곤 하셨다. (물론 그 뒤의 행방이 묘연했다.)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보물은 갖고 있기 마련인데 아빠의 가장 큰 보물은 ‘주목 테이블’이다. 양팔을 다 벌려도 감싸 지지 않는 큰 테이블은 내가 태어난 해부터 지금까지 거실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다.


이 테이블에는 사연이 많다. 신혼 시절, 대관령에서 지내던 아빠는 어느 날 벼락을 맞고 쓰러진 주목을 발견했다. 알고 보니 한국전쟁 때에도 무사히 살아남은 귀한 주목이었다고. 그 길로 아빠는 주목 뿌리를 가져와 테이블로 만들었고, 지금도 매일 애지중지 닦으신다. 당시 70만 원이라는 큰돈을 들여 테이블을 만들어 오자, 엄마는 앓아누우셨단다.

주목 테이블 (출처: 네이버)


그렇게 35년,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집 한가운데를 차지했다. 아기자기한 집이 좋았던 나는 주목 테이블이 맘에 들지 않았다.


철없던 10대 시절, 거실에 예쁜 테이블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저것 좀 치웠으면 한다고, 누가 죽은 나무를 집에다 두냐고 대들었다. 심지어 아빠 묘지에 함께 묻어 주겠다며, 세상 다하는 날까지 함께하라는 거친 말도 내뱉기도 했었다.


아빠는 왜 그리 그 나무를 아꼈던 걸까? 아빠는 담담하게 말씀을 꺼내셨다. 주목은 살아도 천년, 죽어도 천년이라고. 아주 오래 사랑받는 귀한 보물이라고 말이다.

충청남도 논산시에는 보물처럼 소중히 지키고 싶은 양조장이 있다. ‘볕이  드는 마을’이라는 이름을 가진 양촌면에는 100여 년의 여운이 서린 양촌양조장이 있다. 그곳으로 아빠와 여행을 떠났다.



1920년부터 가양주로 막걸리를 빚고 1931년에 지금의 모습을 갖춘 양조장은 2016년 찾아가는 양조장이 되었다. 양조장을 들어서자, 어릴 적 할아버지 댁을 온 것만 같은 기분을 자아내는 영락없는 오래된 집이다.


양조장은 1층과 2층으로 나뉘어 있는데 2층 발효실 천장을 올려다보면, 대들보에 ‘소화 6년 신미 6월 9일’이란 글자가 적혀 있다. 오랜 시간을 대변하듯, 이곳은 살아 있는 보물섬 같다.



양조장 안에는 발효실과 우물이, 마당에는 발효 항아리, 소주 독, 술 빚는 도구 등 골동품들이 가득하다. 영조 임금이 하사한 ‘군신제화도’, 천문도 ‘천상열차분야 지도’, 옛사람들의 술 예법이 소개된 <향음주례 홀기> 등 귀한 문헌들까지 대대손손 보유하고 있다. 2,000여 점에 가까운 양촌양조장의 유물은 현재 충남역사박물관 수장고에 위탁, 관리되고 있다.






양조장 마당을 지나면, 막걸리 카페가 나온다. 이곳은 과거 막걸리 판매장을 개조해 만든 공간이다. 이곳에서 빚어지는 양촌 생동동주, 양촌 생막걸리, 양촌 우렁이쌀 & DAY 막걸리 등 다양한 막걸리들을 마셔 볼 수 있다. 대둔산 자락 천연암반수로 빚은 양촌 생동동주는 10도 청량한 감칠맛이 난다.





아빠가 고른 양촌 생막걸리는 100년 동안 사랑받은 논산 대표 막걸리로, 6도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면서도 진한 맛이 일품이다. 내가 고른 술은 100% 무농약 논산 햅쌀로 빚은 7.5도 우렁이쌀 막걸리. 한 잔의 막걸리에도 우러난 깊은 맛과 향은 안주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다.


양촌양조장은 현재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1970년대 맥이 끊긴 약주를 다시 양조하고 있다. 40여 년 만에 다시 선보이는 양촌양조장의 ‘신상’ 술, 14도 양촌 우렁이쌀 청주가 새롭게 사랑받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빠와 양조장 뒤로 볕 잘 드는 마을, 양촌 돌담길을 함께 걸었다.


“아빠, 주목 테이블만큼 나도 귀한 보물이죠?” “그럼. 그렇고 말고. 우리 딸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지.”


이대로 시간이 떠나가지 않았으면, 아빠와 함께 보내는 지금이 영영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의 시간이, 사랑이, 아빠의 보물 주목 테이블처럼 안녕한지도 궁금해하면서 말이다. 죽어서도 천년이 간다는 주목처럼 우리 사이도 영원하길 바라면서.



글 오윤희

전국 방방곡곡 우리 술 양조장을 탐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제맥주 여행에도 함께하곤 했던 ‘볼 빨간’ 동행, 아빠를 벗 삼아 말이죠. 인스타그램 sool_and_journey


사진 김정흠

일상처럼 여행하고, 여행하듯 일상을 살아갑니다. 아빠와 딸이 우리 술을 찾아 전국을 누빈다기에 염치없이 술잔 하나 얹었습니다. 사진을 핑계로. 인스타그램 sunset.kim




양촌양조장


주소: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매죽헌로 1665번 길 14-7  
오픈: 매일 10:00~18:00
전화: 041 741 2011  
홈페이지: www.iyangchon.com



이전 02화 02. 꿈을 서치 해 준 아빠와 딸의 양조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