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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윤희 Sep 24. 2019

10. 제주에 왔으니 제주 술 한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제주 술익는집, 제주시 제주샘주




10. 제주에 왔으니 제주 술 한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제주술익는집, 제주시 제주샘주



“아빠, 신분증 챙기시고요. 빠진 거 없나 다시 확인해 주세요.”

제주로 향하는 길, 난생처음 딸과 비행기를 타러 가시는 아빠는 어린아이처럼 평소보다 들떠 계셨다. ‘딸 낳으면 비행기 탄다’라는 말도 있는데 왜 이제껏 비행기 한번 같이 못 탔을까? 미안한 마음을 가득 안고 제주 행 비행기에 올랐다.


아빠와 제주로 향하던 당시 나는 이국종 교수가 쓴 ‘골든아워’을 읽고 있었다. 저자는 골든타임과 골든아워에 대해 정확히 비교를 해주며 자신이 겪었던 경험담들을 덤덤하게 책 속에 풀어놓았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까지도.


당시 나는 일기장에 이런 글귀를 적어 두었다. ‘아빠와의 여행을 골든 아워, 골든 타임에 비교하긴 어렵겠지만, 아빠와 함께 하는 이 순간을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금 같은 시간으로 기억하려 한다. 두 손 꼭 잡고 오래도록 말이다.’라고.


아빠와 제주에 도착해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바닷가에 위치한 어느 중국집을 찾았다. 당연히 김치와 단무지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무말랭이가 나왔다. 예측이 빗나가자, 아빠가 주방에 다가가 주방장에게 큰 소리로 물어보셨다.


“제주는 김치가 없나 보네.” 그러자 주방장이 이런 질문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듯 능숙하게 답변을 해 주셨다. “제주는 배추가 금배추에요. 워낙 제주가 척박해서 무만 잘 자라서 어딜 가든 무말랭이가 김치 대신 나올 거예요.” 그러게 말이다. 생각해 보면, 척박한 제주에서 농사를 짓고 술을 빚는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대단한 일이었을까?




제주에 왔으니 제주 술 한잔 해야지. 제주 성읍민속마을에서 대대손손 제주 고소리술을 빚고 있는 ‘제주 술익는집’이 있다. 2018년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된 곳으로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11호인 고소리술을 빚고 있다. 고소리술을 전수한 김을정 할머니의 며느리이자 전통식품명인인 김숙희 대표가 운영하는 양조장으로 현재는 며느리와 아들이 양조 비법을 전수하고 있다.



제주 옛집처럼 꾸민 양조장을 들어서자, 층층이 돌로 쌓은 담과 아담한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실제 김희숙 대표의 가족이 이곳에서 지내며 술을 빚어 오던 공간이었다고. 앞마당을 지나 들어선 집에는 안방, 사랑방, 마루 할 것 없이 술 향기가 그윽하게 퍼진다.  제주다운 양조장답다.



제주 술 익는 집에서 빚는 술은 40도 증류식 소주인 제주 고소리술과 16도 청주 오메기맑은술이다. 고소리술은 2017 대한민국 주류대상을 받은 술로, 쌀이 잘 자라지 않는 제주에서 좁쌀과 보리쌀로 술을 빚던 옛 방식을 이어가고 있다.





쓰다가도 달고, 깔끔하다가도 은은해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맛이 고소리술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양조장을 둘러보다 아빠와 제주 방언도 한 수 배웠다. 제주에서는 소줏고리를 고소리라 부르고, 술을 증류하는 걸 술을 닦는다고 한다. 이곳의 모든 술은 오로지 항아리 숙성으로 정성껏 소량만 빚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 택배 주문으로 인기가 많다.



곧 안거리(안채의 제주 방언)에서 술 시음과 밖거리(바깥채의 제주 방언)에서의 체험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라는 김숙희 대표의 얘기를 들으니 제주 술익는 집을 아빠와 다시 찾을 이유가 분명해졌다.




제주에는 제주에서 빚는 다채로운 우리 술을 한데 만날 수 있는 양조장이 있다. 2014년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된 제주샘주는 마실 거리뿐 아니라 볼거리, 즐길 거리가 풍부한 제주를 품은 양조장이다. 현무암으로 된 대형 고소리술이 반갑게 맞이하는 입구를 들어서니, 술 빚는 여정을 아기자기하게 표현한 닥종이 인형들이 반긴다.



개성소주와 안동소주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소주로 꼽히는 술인 제주 고소리술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양조장 마당에 있는 탱크에 그려진 아기자기한 그림과 벽화는 인증숏 찍기에 좋다. 제주샘주는 김숙희 대표가 직접 견학을 안내하고,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샘주에서 만들어지는 술은 고소리술과 오메기술, 세우리, 니모메. 모든 술은 양조장 마당에서 나오는 샘물로 술을 빚고 있다. 그중 오메기술은 2018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 추석선물로 지정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옛 제주 선인들의 지혜를 느끼고 싶다면 고소리술을, 약주로는 오메기떡을 사용해 만든 오메기술을 추천한다. 한라산에서 자란 산양 삼산을 넣었다는 세우리, 트렌디한 술을 원한다면, 니모메는 선물용으로 좋다. 귤피를 넣어 만든 니모메는 제주 방언으로 ‘너의 마음에’라는 의미로 이름처럼 사랑스러운 술이다.




“제주에 왔으니 오늘 밤엔 우리 딸이랑 제주 술을 마셔야지.” 양조장을 둘러본 아빠 손에는 어느새 고소리술이, 내 손에는 니노메가 한 병씩 들려 있었다. 양조장을 나서 길을 돌려 아빠와 천천히 바닷길을 걸어 보았다.


제주 바다를 품은 우리 술과 아빠와 나. 처음 함께 비행기 타고 온 여행 마무리에 아빠가 넌지시 한마디 하신다. “우리 딸, 고맙다. 사랑한다.” 척박한 제주에서 오래 사랑받은 제주 술처럼, 우리의 삶도 어쩌면 이를 닮지 않았을까. 파도 소리를 배경 삼아 보낸 제주에서의 밤이 술 향기에 취해 저물어간다.



글 오윤희

전국 방방곡곡 우리 술 양조장을 탐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제 맥주 여행에도 함께하곤 했던 ‘볼 빨간’ 동행, 아빠를 벗 삼아 말이죠. 인스타그램 sool_and_journey


사진 김정흠

일상처럼 여행하고, 여행하듯 일상을 살아갑니다. 아빠와 딸이 우리 술을 찾아 전국을 누빈다기에 염치없이 술잔 하나 얹었습니다. 사진을 핑계로. 인스타그램 sunset.kim




제주술익는집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귀포시 중산간동로 4726  
오픈: 월~토요일 10:30~17:00(일요일 휴무)  
전화: 064 787 5046  
홈페이지: www.jejugosorisul.com




제주샘주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원로 283  
오픈: 매일 09:00~18:00
전화: 064 799 4225  
홈페이지: www.jejusaemju.co.kr
요금: 쉰다리 체험, 오메기떡 체험, 칵테일 만들기 체험 각 1만5,000원(10인 이상 예약 가능)


제주특별자치도 술 익는 집, 제주샘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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