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를 하지 않기로 했다.

feat. 말기 암환자인 시아버지와 함께한 나의 6개월

by 마침내

고령이라는 점과 좋지 않은 체력 때문에 걱정이 되지만

1차 항암은 시도해보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의견을 듣고

퇴원 수속을 밟았고 우리 집으로 오고 나서 남편은

아버지와 오랜만에 단둘이 시간을 보내면서

아버지의 몸 상태에 대해 알려 드렸다.

시아버지는 본인 몸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짐작은 하고 계셨지만 그저 위(胃)에 무언가 있겠거니라는

막연한 생각이셨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시아버지는 말기 암환자였지만
항암치료는 받지 않기로 결정하셨다.

항암치료를 안 받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시아버지의 나이와 체력이었다.

165cm의 키에 55kg이 겨우 넘는 체중과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 체력으로

항암 받는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우셨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결정을 하는 데 있어 촉발제가 되는 일이

있었는데 바로 종양내과 선생님과의 면담이었다.


시아버지와 남편이 진료실에 앉자마자

종양내과 의사가 한 말은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췌장암 4기라고 하지만 연세나 다른 조건들로
봤을 때는 말기예요, 나을 수 없는 건 아실 테고
항암은 병의 진행을 늦출 뿐입니다.
통증은 마약성 진통제를 드셔야 하고요.
항암을 하시게 되면 힘드실 거예요.
머리도 빠지고요. 그래도 일단 저라면 항암을
시도는 해볼 것 같습니다.
나가셔서 간호사한테 안내받으세요."


속사포처럼 쏟아낸 그의 말이 끝난 후

시아버지와 남편은 의사의 안내(내지는 지시)를 받아

진료실에 들어간 지 채 3분이 지나기 전에 나왔다고 했다.


진료실에서 나온 시아버지는 지친 목소리로 남편에게

"그래서 치료를 받는 거나 안 받는 거나 남은 시간은 같다는

이야기가 맞냐"라고 되물으셨다고 했다.


그렇게 진료를 받은 후에, 자식들과 상의한 끝에

최종적으로는 항암치료를 받지 않기로 하셨다.




종양내과는 모든 과에서 암 진단을 받은 암환자들이

항암치료를 하기 위해 모이는 곳이기에

어쩌다 그 앞을 지날 때면 어두우면서도 바쁜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늘 아픈 암환자를 만 만나는

종양내과 의사들의 노고를 모르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그가 진단에 대한

그의 생각을 속사포 랩으로 쏟아내지 않았다면

또는 나을 수 없는 건 아실 테고 라는

너무나 정직한 워딩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시아버지에게 1차 항암이라도 시도해보자는 말을

건넬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일이 있고 나의 사정을 아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에게 이 일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어머니 역시 항암 치료를 받고 계셨기에

나는 그저 종양내과의 바쁜 분위기,

종양내과 의사의 속사포 진단 등을 공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와는 다르게 나이 든 시아버지가

느낄 수밖에 없었던 차가움을

보호자로서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를 듣고 그 친구는

의사의 그런 태도는 너무나 당연하다고,

그저 종양내과 외래를 처음 보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은 것뿐이라고 했다.


그런데 난 아직도 궁금하다.

우리 모두에게 태어남의 끝에 죽음이 있다는 것과 같은

절대적인 것 외에 당연한 것이 과연 무엇인지.


입원한 병동 담당 선생님은 당초 3시간으로 예상하고

시작한 수술이 7시간이 걸려서야 끝나게 된

본의 아닌 상황이 벌어졌으니 수술실에서도 특히나

더욱 온 신경을 쏟아 넣고 나왔음이

분명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수술을 끝내고 부랴부랴 달려와

병동에서 기다리던 보호자에게 늦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건네고

현재 상태와 예후를 설명해주며 환자를 다독이던

간담췌외과 선생님에게는

'보호자 분, 수술이 너무 늦어져서요,

면담을 내일 하면 어떨까요?'라는 말은

의사에게 허용될만한 당연히라는 범주에

포함되지 않았던 걸까?


그래서 담당 외과 선생님은 그렇게 바쁘게

지쳤을 법한 시간에 나를 만났음에도

젠틀하다는 인상이 남겨져 있는 것이고


종양내과 선생님은 늘 아프고 지친,

그것도 암이라는 큰 병에 걸린 외래 환자를 만나는

바쁜 의사이기에 그런 태도는 당연하다고 그러려니

너그럽게 넘겨야 하는 마음 넓은 보호자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병원이라는 곳은 아파서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어렵고 높은 문턱을 가진 곳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한 사람 인생의 마지막 장이 닫혀가는 중에 만난

첫 번째 선택지에서 우리는 일반적인 암환자들과

다른 길을 가는 환자와 환자 보호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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