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암환자인 시아버지와 함께한
나의 6개월

feat. 나의 2020년, Prologue

by 마침내

지난 2019년 12월 말일경.

시아버지께서 집 근처 큰 병원에 입원하여

어떤 시술을 받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우리 부부는 소견서를

전달받아 소위 말하는 BIG 5 병원 중 한 군데에

급하게 예약을 했고 입원 후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시아버지는 우측 신장까지 전이된 췌장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병원에서 이야기 한 그의 여명은 3~6개월,

본인과 자식들 간의 상의 끝에 항암치료는 받지 않기로 하고 퇴원 후 아들의 집이자 나의 집인 우리 집으로 거처를 옮기셨다.


이 글은 2019년 12월 30일부터 2020년 6월 6일까지.

39년생 토끼띠인 시아버지와 빠른 86년생 소띠인

며느리가 함께 살며 겪었던 이야기들이다.


지금부터 나는 누구보다 아득한 반년을 지내며 있었던 일들을 하나둘씩 써내려 가보려 한다.


이것은 나를 위한 자기 고백이자,
누구나 뜻하지 않지만 어쩌면 반드시 겪게 될
인생의 한 고비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게 암이라는 큰 병에 걸린 환자들이 거치는

일련의 과정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선 2가지 경우가 제일 많지 않을까 싶기도 한

일련의 과정들의 첫 번째는 평소에 전혀 자각하지 못하다가 건강검진 중에 이상을 발견하고 자신이 암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이다.

(그래서인지 국가차원에서도 국민건강보험 가입자를 대상으로 만 20세가 지나면 2년에 한 번씩 일반 건강검진을 받도록 하고 있으며 만 40세 이상의 성인남녀에게는 국가 암 검진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나머지 하나는 본인의 컨디션에 이상을 느끼거나

어떠한 통증을 느끼고 동네 의원 혹은 2차 병원 등을

찾았다가 이상 징후에 대한 심각성을 느끼고

큰 병원을 가보라는 의사의 권고에 의해

3차 병원에 가서 더욱 정밀한 검사 후 확진을 받는

두 번째 경우이다.


대부분 1, 2차 병원에서 진단을 받으면

진료의뢰서(흔하게 소견서라고 말함)를 받아

3차 병원을 찾아간다.


이때, 1· 2차 병원에서 조직 검사를 통해 의심이 되는

부분의 조직이 악성인지 양성인지를 알게 된다면

3차 병원에 갔을 때, 담당 의사 선생님의 판단하에

수술 가능 여부, 향후 치료 방향 등을 환자, 보호자와 함께

보다 빠르고 쉽게 결정할 수도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조직 검사를 포함한 모든 검사를 처음부터 다시 하기도 하는데 이에 대한 판단, 그에 따른 검사의 진행은 진료를 보는 의사 선생님의 진단 하에 이루어진다.)


1· 2차 병원에서 조직 검사를 시행하기 어려운 부위에

발병하거나 CT나 MRI 등으로 추정 진단을 받게 되면

진단명 앞에 R/O라는 단어가 붙은 채로

진료의뢰서가 발급된다.


시아버지가 처음 찾은 병원에서는 암의 원발 지점으로

의심되는 췌장의 조직 검사를 진행하기 어려워

확정 진단을 받을 수가 없었고 서울에 와서야

조직 검사를 받은 후 pancreas tail cancer라는

진단명이 명확하게 적힌 진단서를 받게 되었다.


흔히 침묵의 장기라 말해지는 부위에 발생하는 암은

앞서 말한 두 번째 경우에 포함될 때가 많고

대부분 예후가 매우 좋지 않은 편인데,

보통 증상을 자각할 때쯤엔 이미 진행이 많이 되어 있어

손을 쓸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췌장암·담도암·담낭암은 장기의 위치 자체가

조기 발견이 어려운 곳인 데다 특성상 전이도

빠르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 보니

대부분이 3-4기에 이르러야 몸에 이상을 느끼고

진단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시아버지 역시 두 번째 경우에 속하는 췌장암 환자였고

췌장 꼬리에서 시작한 암은 대장, 복막, 우측 신장까지

이미 전이가 되어있었다.




잠깐 시댁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결혼하고

1년 정도 지나 시어머니께서 느닷없이 뇌출혈로 쓰러져

4년 가까이 누워계시다 3년 전 돌아가시고

시아버지는 혼자 지내고 계시는 중이었다.


사실 시아버지는 약간의 건강 염려증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던 반면,

시어머니는 전형적인 우리네 어머니 스타일이셨기에

돌이켜보면 전조 증상이라 할만한 것들이

몇 가지 있었음에도 병원에 갈 생각 조차 하지 않으셨고

그러다 하필 혼자 계시던 때에 쓰러지시는 바람에

너무 늦게 발견이 되면서 흔히 말하는 골든 타임을

놓치게 되었다.


수술을 하셨지만 돌아가시기 전까지 너무나 고생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우리 부부는 본의 아니게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해 또래의 부부보다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었다.


어찌 되었든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혼자 계시던 시아버지를 걱정하고 있었지만

워낙 정정하게 활동하고 계셨던지라

(예를 들자면 여든이 넘으셨지만 큰 비가 오지 않는 이상

허리 꼿꼿하게 펴고 아침저녁 산책을 즐기셨고,

산책하다 좋은 풍경은 스마트폰으로 찍어

자식들에게 카톡으로 전송하기도 하셨다.)

혼자 계신 시아버님의 건강을 당연히 걱정을 하면서도

췌장암이라는 병명은 너무나 당황스럽고 상상하지

못하던 것이었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시아버지의 진단에 대한

첫 번째 느낌은 당황스러웠다는 것이 맞는 것 같다.

혼자 외출을 하시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고 되레

정정하신 편이셨기에 입원을 하셨다는 사실 조차

당황스럽고 놀라운 상황에서 의사의 췌장암 소견은

우리에겐 그야말로 날벼락같은 소식이었다.


그래서 모두가 당황스러웠고 정신이 없을 수밖에 없었고 시아버지 본인 역시 자신이 이런 몸 상태에서 다시 혼자 살던 집에 가서 살 수 없는 것을 걱정하며 우리 집에서 같이 살 수 없겠냐는 의사를 내비치셨다.


나 역시, 시아버님이 살던 곳이 더 편할지라도 큰 병이

발견된 상황에서 더 이상 홀로 지낼 실 순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예감은 하고 있었다.


물론, 불편한 건 사실이었다.

나는 친할머니와도 함께 살아본 적 없이 결혼 전

성인이 되어서도 그저 엄마 아빠와 함께 살며

집 안에서는 철부지 코스프레(?)에 힘쓰는

못난 딸이었기에 시어머니도 아닌 홀시아버지를

모시고 산다는 사실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가장 큰 실의에 빠졌을 남편에게 그나마 힘이 되고 싶은

마음이 반이었다면 내가 아무리 싫다고 우는 소리 해봤자

뾰족한 해결책도 없었거니와 정황 상

모두가 나를 이해하지만 결국은 이해와 손가락 질을

함께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리고 남편은 한두 달 정도 계시다 요양병원으로

모실 생각이라고 하기에.


그냥 편하게 받아들이자 라는 생각을 가지 기기 위해

정말로 노력했다.




그렇게 39년생 토끼띠인 만 81세의 시아버지와

빠른 86년생 소 띠인 35.5세 며느리인

나의 함께 살기가 시작되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