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18 율이 생후 229일의 기록
며칠 전부터 율이가 잡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중심을 잃고 넘어져서 머리를 쿵.
로켓배송으로 주문하면 빠르게 도착하겠지만, 당장 다음날 아침부터 머리 보호대를 착용해야 할 것 같았다. 마침 당근 어플로 집이랑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곳에서 아기용 헬멧을 구할 수 있는 상황이라 남편이 퇴근 후에 찾아왔던 일이 있었다.
헬멧을 씌워놔서 한시름 놨다고 생각했었는데 화장실에 볼 일을 보러 갔다가 당황했던 일이 생겼다. 화장실에 갔는데 율이가 문을 긁다가 치다가 하는 것 같았다.
"설마 문을 잡고 서 있는 건 아니겠지...?" 하며 문을 살짝 열었는데 무릎을 굽힌 채 한쪽 손은 벽면을 잡고 있고 반대쪽 손으로 문을 치고 있는 모양새였다. 이대로 문을 열면 율이는 뒤로 머리를 쿵하고 부딪힐 것 같았다. 문 하나를 두고 율이와 내가 대치한 이 상황.
화장실 문 뒤에서 잠시 기다리며 고민하다 율이를 다른 곳으로 보내려고 시선을 유도하고자 욕실 선반에 있는 물건 하나를 꺼내 밖으로 던졌다. 물건을 향해 이동할 줄 알았는데 율이의 시선은 나에게 고정돼 있었다. 그렇게 진땀을 빼고 있는데 다행히도 율이는 밑으로 스스륵 내려와 주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로 화장실을 갈 때마다 왠지 불안했다. 친정 엄마에게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니 화장실 문을 열고 볼 일을 보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다음번 화장실을 갈 땐 문을 열어봐야겠다 싶었다.
오늘은 화장실 문을 열고서 볼 일을 보려고 앉았는데 율이가 내 쪽으로 오는 거다! 율이의 배밀이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나는 소변이 쪼르륵 나오는 상태.
"어어어, 율아 율아 율아! 어어 거기 거기 잠깐만!" 다급한 목소리에 율이를 부르는 빈도가 높아지고, 율이는 이미 화장실 문턱까지 왔다.
"아니 아니, 율아 율아 율아! 아니 잠깐! 스탑 스탑!"
율이는 무릎을 굽힌 채 서서 오른손으로 화장실 문 옆의 벽면을 잡고 있었고 왼손은 허공에 뜬 채로 있었다. 몸은 살짝씩 앞뒤로 흔들리고 있었다. 소변 뒤처리를 하기 위해 오른손으로 잡고 있던 휴지를 왼손으로 옮기고, 몸을 앞으로 숙여 율이의 오른쪽 손을 잡았다.
"율아 율아 율아, 내려가 내려가 앉아" 오른손에 힘을 주어 율이 몸이 내려가도록 했다.
율이는 나를 보고 웃으며 내려갔지만, 다음 단계가 남아있었다. 빠르게 뒤처리를 하고 변기 물을 내린 후 손을 닦으려고 세면대로 이동했는데 율이는 그 사이 화장실 문턱을 턱 잡고 있었다. 표정은 문턱 아래로 내려올 기세였다.
"율아 율아 율아 잠깐만! 옳지 옳지, 잠깐만!" 하며 율이에게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손을 빠르게 씻었다.
또 한 번 화장실에서 진땀을 뺐다는 이야기.
어제도 진땀을 뺐던 일이 있다. 율이가 오전 낮잠을 잘 때 나도 함께 자곤 했었는데 어제는 일을 처리하느라 깨어있었다. 일 처리가 거의 마쳐갈 때쯤 배가 아파왔다. 전날 밤에 치킨을 먹었는데 청양고추가 들어가서 맵게 느껴졌었다. 그 영향인 듯했다. 화장실에 후다닥 가서 볼 일을 보는데 항문이 맵게 느껴졌고, 대변의 상태는 어쩐지 변기까지 더럽힐 것 같았다.
난데없이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출산 후 기억력이 감퇴한 것인지 정신이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서인지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꼭 잊지 말이야 할 일들은 알람을 맞추어 놓곤 했었다.
"율이 깨면 안 되는데... 무슨 알람인거지?"
어떤 일로 알람을 맞추어놨던 건지 도무지 생각은 나지 않았고 알람 소리는 계속 울렸다.
"내가 미쳤던 게 아닐까. 왜 알람을 맞춰 놓은 거야. 율이 깨면 안 되는데..."
알람은 해제가 될 때까지 계속 울릴 듯했다. 멈추지 않는 알람. 벗어나지 않는 예감. 율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이지 몸이 두 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화장실은 진땀 빼는 곳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