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우리는

2025.01.12 율이 생후 223일의 기록

by 곰곰

율이가 새벽 5시경에 울었다. 율이를 달래고 화장실에 갈 겸 거실로 나왔는데 부엌 쪽이 환했다. 가보니 남편이 율이 이유식 큐브를 만들고 있었다. 주말 이틀을 나누어서 ‘당근, 애호박, 브로콜리, 단호박, 시금치, 쌀오트밀죽’을 만들자고 했었는데 혼자 하겠다고 하더니, 새벽부터 만들고 있던 것이었다.


남편은 율이 이유식뿐만 아니라 우리가 먹을 점심도 직접 만들어주고, 저녁도 직접 만들어주었다. 평소에도 퇴근하고 오면 내 밥을 챙겨주곤 한다. 저녁 식사 후엔 고마운 마음에 내가 뒷정리를 했었는데 이유식을 시작한 후로는 남편이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서 저녁 설거지와 젖병 설거지를 해놓고 출근을 하고 있다.

고마운 마음은 물론이거니와 내 체력도 비축되고 시간적인 여유도 생긴다. 특히나 남편이 이토록 ‘애써준 덕분에 생긴 시간’은 허투루 쓰기가 아깝다. 정말 오랜만에 책을 읽게 됐는데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 아이의 뇌, 내 아이의 사생활’ 이란 책이다.


특히 ‘감정코칭’을 읽으면서는 놓칠 뻔한 것들, 그중에서도 평소의 언어 습관들을 되돌아보게 됐다. 감정코칭을 율이 에게 나름 연습하면서 남편에게도 적용하려고 하는데 습관은 참으로 고치기가 어렵다.

아까는 아차 싶은 일이 있었는데 남편이 올려놓은 이유식 다지기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남편 다리에 부딪혔다. 남편은 순간 유리 소재인 다지기가 깨진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나는 바로 "왜 거기가 놨어?" 하며 물었다. 그리고는 "아, 이렇게 얘기했어야 했는데!" "많이 놀랬지? 다치진 않았어?"


남편은 순간 웃었다. 그 웃음을 알 것 같았다. 평소에 나는 감정코칭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기 때문. "요즘 감정코칭 책 읽는 거 알지? 한 번 더 읽어야겠다." 하며 웃음으로 넘겼지만, 순식간에 습관처럼 나온 반응에 조금 아쉽기도 했다.


차려준 저녁을 먹고서는 뒷정리를 바로 했다. 내일은 월요일인데 출근하는 사람에게 짐을 남겨두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나 역시도 남편의 행동이 고맙다는 것을 말로는 했지만, 보답하고 싶었다. 최근 남편의 행동들을 보면서, 가족 안에서, 정말 중요한 가치들이 무엇인지 살펴보게 된다. 어떤 것을 중심으로 두느냐에 따라 일상에 대한 만족도는 상당히 달라진다.


작년 11월, 신촌 세브란스로 율이 요로감염 역류검사를 하러 갔을 때 나는 상당히 긴장상태였는데 의료진의 ‘친절한 태도’는 그 자체로 ‘큰 도움’이 되었다. 검사를 해주신 의료진은 검사 전부터 율이와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진료를 대기하는 중에도 우리 쪽으로 오셔서 율이를 놀아주고 가셨었다. 이날 알게 된 것은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하다는 것’이었다.


어떤 일이든 태도가 참 중요하다 생각했었는데 나의 곁에 있는 남편에게 태도를 배우고 있다. 모든 것을 녹아내리게 하는 힘, 그것은 배려이고 사랑이다.



20250112.jpg 남편이 만든 율이 이유식, 중기에 접어들며 전체적으로 질감을 높였는데 율이가 잘 먹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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