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오른손

짧은 이야기

by 윤다서영

“저 어르신 아직도 저러고 계시네. 어르신! 거기 그러고 있다가 얼어 죽습니다. 어서 들어가세요.”

“가까이 오지 마! 내 걸 뺏으려고 하는 거지? 오지 마! 저리 가!”


5년 전 깊은 산골, 영주의 손이 미치지 않는 우리 마을에 낯선 이 하나가 들어왔다. 꼬질꼬질한 옷차림에 며칠을 굶었는지 핼쑥한 얼굴이었지만, 특유의 깐깐함이 엿보이는 낯선 노인의 모습에 설왕설래 말이 많았다.


“분명히 고귀한 집안 출신일 거야. 낡긴 했지만, 색색으로 화려하게 수 놓인 옷 봤어? 그런 옷은 영주나 입을 수 있는 옷이라고. 지금 산 아래 난리 났다며? 영주가 사는 성도 폭도들에 의해 약탈당했다고 하던데, 혹시 저 노인도.”

“그러게. 저 노인 분명히 뭔가 있어. 우리가 근처에 가기만 하면 소리 지르고 난리잖아.”

“근데 저 오른손. 도대체 뭘 가지고 있기에, 저리도 꽉 쥐고 있을까?”


동네 사람들은 노인에게 ‘쫓겨난 영주’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노인은 폐허가 되다시피 한 작은 움막에서 동정심 많은 어느 노파가 가져다주는 하루 한 끼 식사로 근근이 살아갔다.


노인은 언제나 혼자였다. 누군가 곁에 오는 걸 극도로 꺼려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호기심 많은 청년 몇 명이 새벽녘 노인의 움막에 몰래 들어갔다가, 미친 듯이 질러대는 노인의 괴성에 기겁하고 도망 나온 적이 있었다. 그 이후, 노인은 더욱더 자신의 주변을 경계했다. 특히, 움켜쥔 오른손은 병적으로 살피곤 했다.


언젠가 노인의 집에 밥을 가져다주던 노파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노인네 도대체 오른손에 뭘 쥐고 있기에 손이 다 짓물러서 피가 철철 나는데도 풀지 않는지 모르겠어. 멀리서 봐도 심각해 보이더구먼.”


노파의 말에 우리는 노인의 손에 쥐어진 것이 어마어마한 보물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어떤 보물 일지 내기하는 이들이 생겨날 정도로 노인의 오른손은 조용하고 한적하던 우리 마을 최대 관심사가 되었다.




“이봐, 자네는 안 가?”

“어딜?”

“그 노인이 죽어간대. 그래서 지금 마을 사람들 모두 움막 주위로 가고 있어. 오른손에 든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서 말이지.”


나는 고민했다. 옆에 선 5살 난 딸이 순진한 눈망울로 올려다본다.


“아빠, 어디 가려고요? 동화책 읽어준다고 했잖아요.”

“소피아, 아빠랑 움막집 할아버지네 잠깐 갔다 올까? 갔다 와서 읽어줄게.”


노인의 오른손에 뭐가 있을지 궁금했다. 물론, 힘이 없는 나는 보물을 차지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금은보화가 나올지 보고 싶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작은 보석 조각 하나 얻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움막 근처에 다다르니 횃불을 든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마을 주민들 모두가 모인 것 같았다. 그중 힘이 센 몇몇 젊은이들이 움막 가까이에 자리하고 앉아서 노인이 죽기만을 기다린다.


“그래도 저 노인네 죽으면서 외롭진 않겠어. 좋은 의도든 나쁜 의도든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곁에 있으니 말이야.”


힘센 이들에게 밀려서 움막 근처에도 가지 못한 어떤 이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서글프게 들려왔다.


“죽었다!”


그 소리가 신호였다. 사람들이 우르르 앞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를 번쩍 안아 옆에 있던 나무 위에 앉혔다.


“소피아, 잠시 여기서 기다려. 아빠, 빨리 갔다 올게.”


아주 작은 보석 조각 하나라도 얻을 수 있기를 빌어보며, 나는 다른 이들에 섞여 움막 안으로 한 발씩 들이밀었다.


움막 안은 끔찍했다.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이들부터, 벌써 피범벅이 되어 나가떨어진 이들까지,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노인의 시체까지 갈 엄두조차 안 났다. 누군가 노인의 움켜쥔 오른손을 잡기만 하면, 뒤에서 잡아끌고 때리며 다들 필사적으로 막았다. 결국, 커다란 도끼를 들고 있던 청년 하나가 노인의 오른팔을 잘라내는 데 성공했다. 그가 잘라낸 팔을 품에 안고 문밖으로 달려갔다.


 “막아!”


팔을 들고 도망가던 젊은 사람 위로 사람들이 덮쳤다.


나는 소동에 휩쓸릴까 두려워 구석진 곳으로 조용히 이동했다. 움직이다 보니 팔이 잘린 째 눈을 부릅뜨고 죽어 있는 노인의 시체까지 오게 되었다. 노인의 잘린 팔에선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그 주위를 나처럼 밀려난 이들이 작은 보석 조각 하나라도 찾길 바라며 샅샅이 훑고 있었다. 나 역시 그들과 함께 온몸에 피가 묻는 줄 모르고 노인의 옷 주위와 시체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악! 청년이 죽었어.”


모두의 움직임이 멈췄다. 잘라낸 팔을 들고 도망가던 청년이 막아서던 주민들에 의해 압사당하고 만 것이다. 그 청년의 두 손에는 여전히 주먹 쥔 노인의 오른팔이 들려 있었다. 청년은 죽어가면서도 끝까지 노인의 오른팔을 놓지 않았다. 사람들의 눈에 두려움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러다 우리 모두 죽겠습니다. 그냥 같이 나누죠. 여기 있는 사람 모두 공평하게 나눕시다.”


적막을 깨고 누군가 외쳤다. 아직 욕심을 버리지 못한 몇몇 이들에게서 불평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대부분은 침묵으로 동의했다. 같이 나누자고 제안했던 이가 노인의 움켜쥔 오른손을 펴기 시작했다. 아비규환이던 움막 안에 숨 막히는 긴장감이 감돈다. 꿀꺽꿀꺽 침 삼키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온다. 그런데 굳어진 노인의 손가락이 잘 펴지지 않았다. 힘센 이들이 합세하여 힘껏 굳어진 손가락을 하나씩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그리고 다섯. 그리고.


 “말도 안 돼!”


사람들이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노인의 오른손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래서요? 할아버지 손엔 아무것도 없었어요?”

“응. 아무것도 없었어.”

“그런데 왜 그렇게 꽉 쥐고 다니셨을까요?”

“글쎄, 아빠도 모르지.”

“혹시, 바람을 잡고 계셨나?”


아이의 천진난만한 답변에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할아버지가 꽉 쥐고 계셨는데, 사람들 때문에 도망간 거 아닐까요? 헤헤”

“그럴 수도 있지.”

“근데 아빠는 뭘 잡고 있어요?”


나는 뭔가를 움켜쥔 나의 오른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입가에 편안한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딸아이와 눈을 마주하며 말했다.


“아빠는 아주 소중한 것을 잡고 있지.”


목마를 태운 딸의 여린 발목을 움켜쥔 나의 양손에 눈부신 힘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