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
예진은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는 가족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촉박한 출근 시간에 허겁지겁 식사하는 아빠, 그 옆에서 이것저것 음식을 챙기는 엄마,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느릿느릿 숟가락을 놀리는 남동생까지, 다른 날과 다를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아침 풍경이었다.
그런데, 왜 가족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걸까?
“예진아, 어서 먹어. 너도 아침 수업이라며?”
“네.”
“여보, 밥 먹는 동안 넥타이 좀 꺼내놔. 저번에 예진이가 사준 거 있지? 그거 꺼내 줘.”
아빠는 예진을 보며 찡긋 윙크한다. 누가 딸 바보 아니랄까 봐 아빠는 예진이라면 껌벅 죽는다. 아빠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남동생의 손을 내리친다.
“왜요.”
“누가 밥 먹는데 휴대폰 보라고 했어.”
“아, 진짜. 아빠는 왜 나만 가지고 그래요. 누나한테는 아무 말도 안 하면서.”
“누나가 너처럼 밥 먹는데 휴대폰만 쳐다보고 있냐?”
“안 봐요. 안 봐.”
“여보, 여보. 지금 정훈이 혼낼 시간 없어. 어서 가요.”
여느 때와 다를 바 전혀 없는 소란스러운 아침 풍경인데, 이 이질감은 도대체 뭘까?
예진은 서둘러 학교로 향했다. 단, 1분의 지각도 용납하지 않는 교수 수업이라 서둘러야 한다. 예진이 아침 출근 시간과 맞물려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몰려나오는 지하철 입구에 우두커니 섰다.
“비켜요,” “아, 진짜 왜 밀어요?” “짜증 나.”
예진은 언제나처럼 들려오는 지옥 출근 소음에 시달리며, 간신히 지하철 안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습관적으로 미간에 주름이 지어진다.
나는 왜 미간을 찡그리고 있는 거지? 내 몸에 맞닿은 사람들의 온기가 불쾌해서? 아니면 저들이 내지르는 소음이 듣기 싫어서?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지하철 풍경인데 처음 겪는 듯한 낯선 느낌에 예진은 당황했다. 알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 휩쓸려가는 듯한 기이한 느낌에 예진은 답답한 가슴을 움켜쥐었다. 점점 숨을 쉬는 것조차 불편해지자, 예진은 서둘러 지하철에서 내렸다. 예진은 플랫폼에 길게 늘어선 의자 하나에 등을 기대며, 긴 한숨을 토해냈다.
뭐지? 왜 지하철에서 내린 거야? 도착하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예진은 멍하니 앉아서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바쁜 출근길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예진에게 관심을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예진은 그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있는 힘껏 미간을 찡그리며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예진은 조금 전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윤예진, 너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지각하기 전에 학교에 가야 하잖아, 오늘은 과제 제출 날이라 빠지면 안 된다고.
예진은 일어나기 위해 상체를 들썩들썩 움직였다. 그런데 온몸이 뭔가에 묶인 것처럼 꼼작도 하지 않는다.
“학생도 그래요?”
“네?”
낯선 중년의 남성이 예진에게 말을 건다.
"학생도 몸이 움직이지 않아요?”
“아저씨도요?”
“네. 오늘 아침에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빨리 가봐야 하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네요.”
“저도요. 오늘 수업 빠지면 안 되는데.”
나란히 붙어 있는 의자의 양 끝에 앉아 있던 예진과 중년의 남자는 무기력한 모습으로 입만 벙긋거린다.
“그런데 학생, 갑자기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우리는 언제까지 이 상태로 있어야 하는 거죠?”
예진은 그의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질문은 모두 예진이 하고 싶었던 질문들이었다.
“그런데 학생, 이상한 말일 수 있는데, 몸을 움직일 수 없는데도, 두렵지가 않아요. 이번 회의를 망치면 상사에게 단단히 찍힐 텐데. 그러면 진급에도 영향을 미치겠죠. 먹여 살려야 할 아내와 아이들이 내 등을 떠밀고 있는데, 그런데도 마음이 불편하지가 않아요. 이상하죠?”
“그러게요. 저도 이번 과제 제대로 못 내면 분명히 학점에 영향을 받을 테고, 그러면 기대하고 있던 장학금은 물 건너갈 텐데. 착한 딸만 바라보는 부모님이 제 팔을 잡아끄는데도, 불안하지가 않아요.”
“혹시 우리 포기한 걸까요?”
“뭘요? 사는 거요? 설마요. 저는 살아있는 게 좋은데요.”
“살아 있는 게 좋아요? 왜요?”
“이유가 있나요? 죽을 수는 없잖아요.”
“음, 죽을 수는 없으니 살아있는 것이 좋다라.”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요? 어제까지는 아무 일도 없었는데요.”
“그러게요. 갑자기 왜 이럴까요. 어젯밤 늦은 퇴근을 할 때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요.”
“맞다. 혹시 아저씨도 그랬어요?”
“뭘요?”
“익숙한 가족들이 낯설게 느껴지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낯설지 않은 느낌.”
“신기하네요. 나도 그랬는데.”
“우리 미친 걸까요?”
“그럴 수도요. 아니면 미치고 싶어 하는 사람이거나?”
“미치지 않기 위해 빈 의자를 찾고 있던 사람이거나."
예진은 앞뒤로 몸을 세차게 흔들었다. 그리고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난다.
“학생은 이제 움직이네요. 가려고요?”
“네. 전 이제 가야 할 것 같아요. 아저씨는요?”
“나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있어야겠어요.”
“아저씨, 너무 오래 있지는 마세요.”
“그래요. 잘 가요. 학생."
예진은 막 플랫폼에 도착한 열차 안으로 폴짝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학교를 향해 평상시처럼 달려 나갔다.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건,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는 거겠지.”
중년의 남성 역시 앞뒤로 크게 상체를 움직였다. 그러나 예진이 그랬던 것처럼 발딱 일어나지는 못한다. 중년의 남성은 힘에 겨운 듯 두 팔로 있는 힘껏 허벅지를 누른 채 간신히 몸을 일으킨다.
“학생은 발딱 일어나던데. 젊어서인가? 아니면 억누르는 무게가 덜 해서인가? 늦기 전에 나도 어서 잡아타야겠다.”
중년의 남성은 지하철을 타기 전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다시 가서 앉고 싶은 강한 충동에 휩싸인다. 하지만, 중년의 남성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일어났으니 지하철을 타야지.”
중년의 남성이 지하철 안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들여놓는다.
플랫폼에는 빈 의자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