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씨, 아기씨, 우리 아기씨. 나 없으면 어느 누가 우리 아기씨 웃음 짓게 할 수 있을꼬.”
꽃잎이 아스라이 떨어지는 어느 날, 연지곤지 찍고 가마에 올라타는 아기씨 얼굴 한순간이라도 놓칠세라 돌쇠는 아등바등 언덕으로 올라갔다.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 아기씨 모습에 돌쇠의 두 눈에서 눈물 한 방울 또르르 떨어진다.
따스한 봄 햇살처럼 곱디고운 우리 아기씨, 또다시 불 때지 않은 냉골 쪽방처럼 차디찬 냉기 뚝뚝 떨어지겠네.
돌쇠가 언덕 위 말라비틀어진 나무 하나를 쓸쓸하게 바라본다. “내 몸 기대도 되겠느냐.” 돌쇠는 비틀거리는 몸뚱이를 나무에 기댔다. 그리고 아기씨 계신 알록달록 화려한 앞마당을 뿌옇게 흐려진 눈으로 하염없이 내려다봤다.
“아기씨다. 아기씨가 웃으신다. 나를 보고 웃으신다.”
돌쇠는 울퉁불퉁 투박한 손등으로 뿌옇게 흐려진 눈가를 사정없이 비벼댔다.
우리 아기씨 웃는 모습, 마지막일지 모르는데. 언제 또 저 환한 웃음 짓게 해 드릴 수 있을꼬.
돌쇠는 있는 힘껏 똑바로 서서 아기씨를 향해 두 손을 번쩍 들었다. 굽은 등에 절뚝거리는 다리, 반듯이 서도 아기씨의 반도 안 되는 몸뚱이. 두 손을 번쩍 들면서 “이럼 아기씨와 비슷해지는가요?” 할 때마다 아기씨는 “우리 돌쇠, 예쁘네.” 하며, 환한 웃음 지어주셨는데.
아기씨, 우리 아기씨, 저 고운 웃음 한양 김 판서 둘째 도련님은 짓게 하실 수 있을꼬.
돌쇠의 머리 위로 꽃잎 하나가 사뿐히 내려앉는다. 돌쇠는 굳어버린 두 손을 간신히 움직여서 분홍색 꽃잎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후후 불어 아기씨에게 날려 보낸다.
이 꽃잎 아기씨의 손바닥에 사뿐히 내려앉겠지. 아, 꽃잎 되어 따라가고 싶구나.
갑자기 청아한 아기씨의 웃음소리 귓가에 들려온다. 이 소리가 환청이 아니기를. 마지막으로 주신 아기씨의 고귀한 선물이기를.
***
“돌쇠, 불쌍한 우리 돌쇠, 나 없으면 어느 누가 우리 돌쇠에게 웃어줄꼬.”
일찍이 어미 잃고 형제 없던 나, 많은 날을 홀로 지새웠지. 정 없는 아비 얼굴 몇 번이나 볼 수 있었나. 외로운 맘 달래며 홀로 지새운 수많은 밤. 속은 삭고 삭았지만 죽지 못해 사는 이 몸뚱이, 한겨울 꽁꽁 언 연못처럼 냉기가 뚝뚝 흐르네.
돌쇠가 처음 온 날, 유난히도 눈부시게 빛나던 햇살이 아기씨의 머릿속에 선명하다. 언덕 위 수줍게 피어 있던 배롱나무 꽃, 지나가던 바람에 흔들려 돌쇠 주위를 분홍색 꽃잎으로 수놓으며 춤을 추었다. 하늘에서 꽃구름 타고 내려온 동자가 이 아이 같을까? 맑고 투명한 돌쇠의 눈동자를 본 순간 아기씨는 넋을 잃고 말았다. 돌쇠가 울퉁불퉁 뭉툭한 손가락을 조심조심 움직여 꽃잎 하나를 머리에서 떼어낸 걸 본 아기씨는 “후~ 불어. 내 쪽으로 후~우 하고 불어서 보내.” 라며 돌쇠에게 말을 걸었다. 일그러진 한쪽 얼굴에 살짝 보이는 돌쇠의 미소가 눈이 부시게 빛났다. 사뿐히 날아와 손바닥 위로 살며시 내려앉은 꽃잎을 보며, 아기씨는 돌쇠를 향해 환한 웃음을 보낸다.
'혹여 맑고 순수한 영혼에 내 더러움 물들면 어쩌나,
하늘의 동자님 다시 천상으로 못 올라가면 어쩌나'
***
“돌쇠야. 돌쇠야. 왜 거기 그렇게 서 있느냐. 가까이 오렴. 이리 오렴.”
아기씨가 비틀거리는 몸을 간신히 버티고 서서 두 손을 번쩍 든 돌쇠를 찾았다.
“우리 돌쇠. 예쁘기도 하지.”
아기씨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꾹꾹 참아내며, 가슴으로 슬픔을 쏟아낸다. 마지막 가는 모습, 곱디고운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데. 가마의 작은 창 밖으로 꽃잎 하나가 바람을 타고 날아들어온다. 돌쇠가 그랬다. 신부는 울면 안 된다고, 우는 신부는 안 된다고.
돌쇠야, 네게 웃음만 주고 싶은데.
아기씨는 꽃잎이 살며시 내려앉은 손바닥을 움켜쥐고, 새어 나오는 울음소리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꾹꾹 눌러 담는다.
이 소리, 저 언덕 위 너에게 가지 않기를. 이 슬픔이 환하게 웃고 있을 네 미소에 닿지 않기를.
***
언덕 위, 봄의 꽃잎과 함께 떠났던 아기씨가 겨울의 꽃눈과 함께 웃으며 걸어온다.
“아기씨, 오래 기다렸어요. 이왕 오실 거 날 따뜻한 가을에나 오시지 추운데 왜 지금 오세요. 추위도 많이 타시는 분이.”
돌쇠는 둘러매고 있던 구멍이 숭숭 뚫린 거적 대기를 들고는 아기씨에게 달려간다. 아기씨는 아무 말 없이 배시시 웃는다.
“그렇게 웃으신다고 제가 봐줄 거로 생각하셨어요? 안 됩니다. 이번엔 쉽게 용서 못 합니다.”
“힘들게 왔는데, 나 그냥 돌아가?”
아기씨 말에 돌쇠가 펄쩍 뛴다.
“돌아가긴 어딜 가요. 이번엔 절대 혼자 못 보내요. 혼자선 아무 데도 못 가요.”
돌쇠가 아기씨의 치맛자락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돌쇠야, 나중에, 나중에 데리러 올게.”
조금씩 내리던 눈이 함박눈이 되어 돌쇠와 아기씨의 머리 위에 수북이 쌓여간다.
“어서, 들어가야지. 이러다가 큰일 나.”
하지만, 돌쇠는 아기씨의 허락을 받기 전까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생각이다. 망부석이 된 돌쇠를 한참 바라보던 아기씨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에휴, 이 고집쟁이. 자, 손잡아. 치맛자락 붙잡고 갈 순 없잖아.”
아기씨의 허락에 돌쇠의 얼굴에 눈부신 미소가 지어진다.
“우리 돌쇠 예쁘구나.”
서서히 저물어가는 석양을 향해 아기씨와 돌쇠가 붉게 물든 눈 덮인 언덕 너머로 천천히 걸어간다.
***
“양평댁, 저 곱사등이의 밥버러지는 아직도 거기 있는가?”
“아휴, 말도 마. 내 우리 아기씨 부탁만 아니었으면, 쫓아내도 벌써 쫓아냈어. 어디 쓸모 있는 구석이 하나라도 있어야 말이지. 그나마 우리 아기씨 웃게 해 준 유일한 이라서 그냥 둔 거지. 에효, 불쌍한 우리 아기씨.”
“그러게나. 그 집 아기씨는 도대체 뭔 액이 들어 시집가자마자 그리 되셨누.”
“내 어찌 아나.”
“그나저나 오늘 참 눈이 많이도 오네그려.”
말라비틀어진 나무 아래 수북이 쌓인 눈을 덮고 돌쇠가 쉬고 있다. 입가에 환한 미소를 띠고 있는 돌쇠의 한 손에는 곱게 말린 꽃잎 하나 쥐어져 있다.
“내년 봄 저 말라비틀어진 나무에 다시 꽃이 피면 사람들 우리 돌쇠 기억해 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