늴리리야 늴리리 늴리리 맘보
12. 아무것도 쓰지 않으면 고칠 수 없다
호밀밭 새여 글에 올린 글을 11번까지 브런치에 연재했다. 브런치 작가 승인이 난 뒤 처음 시작한 글은, 『그저 매일 쓰고 있는 힘껏 읽어라』였다. 30화를 연재하고 글을 바탕으로 두 편의 수필을 담은 공저로 쓴 책이 나왔다.
이번에 브런치에 두 번째 연재할 내용을 구상하다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 연재를 잠시 중단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호밀밭 새여 글에 쓰고 있는 글을 그대로 올려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일주일 동안 열심히 써야 할 동력이 생겼다.
짧게 잘 쓰는 법, 그 책이 생각났고, 그 책을 모티브로 하기로 했다. 『아무것도 쓰지 않으면 고칠 수 없다』. 일단 써놓고, 책이 출간될 무렵 퇴고를 거듭하면 된다. 짧은 일기 같은 글들이 모여,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부끄러워질 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하루를 지나고 나면, 일주일쯤 살아냈을 때 문득 ‘이건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르기를 바란다. 벌써 꿈을 꿔 보는 마음이다.
『쓰지 않으면 고칠 수 없다』
저자 박수경|마음 편한 책방
꿈꾸는 건 마음껏 사치를 부려도 된다.^^
13. 잘 자라 우리 아가
이제 제법 칭얼거리는 채은이
돌이 지난 채은이는 잘 노는 편이지만
혼자 놀기보다는 함께 놀아 달라고,
계속 옆에 와서 아빠, 엄마, 언니, 오빠를 부른다.
지금도 옆에서 모두를 부른다.
까꿍놀이 하는 걸 제일 좋아한다.
까꿍 하면 까르르 웃는다.
아기랑 노는 건 생각보다 체력이 많이 든다.
누워서 뒹굴뒹굴하다가, 안아주고, 뽀뽀해 주고, 눈 마주치고, 손바닥 치고, 머리 맞대기.
아니면, 이마 맞대기.
눈 깜박거리기 배꼽에 부르르 하기
반짝반짝 작은 별 노래 부르기
요즘은 “신발 신고 나갈까?”
“가자.” 하면 제일 좋아한다.
아기랑 노는 건, 참 어렵다.
대화를 하기보다는, 눈짓, 몸짓, 손짓.
언어가 없는 대부분의 몸동작으로 함께 한다.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자주 심심한지 보챈다.
간지럼 태우기, 오늘은
“비야, 그만!”
동화책을 읽어준다.
그러다 다시 비행기 태우기
시간이 지나면
밥 먹이기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아기와의 일상
잠시 놀이터 다녀와 씻겼더니 이제야
코 잠이 들었다.
그래도 어쩌면 옛날 어른들 말씀처럼
지금이 행복한 때인지도 모른다.
내 품에 우주를 품고 있는 거니까,
아기가 잠들면 나도 눈이 스르르 감길 때가 많다.
아주 나중에 난 할머니가 되어 있고 딸은 내 곁에 있지 않고 훌쩍 자라 있겠지.
지금을 소중히 아껴 살자.
14. 앵그리버드
요 근래 몸이 아프고 피곤을 자주 느끼면서 화가 많아졌다. 오늘 새벽만 해도 6시도 안 되어 일어난 채은이가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서 나를 피곤하게 하나 싶어 슬며시 화가 나기 시작했고, 학교 갈 준비 안 하고 핸드폰에 코 박고 있는 아이들 때문에 세수하라며 핸드폰을 빼앗았다. 일찍 간다고 성화를 부리던 딸이 인사도 없이 나가버려서 보니 실내화 가방을 안 가져가 4층에서 불러 다시 오라고 해서 쥐어 주고 보냈다. 징징거리는 딸에게 나 역시 왜 갑자기 학교를 빨리 가려고 하느냐, 인사도 없이 나가버리느냐며 화를 냈다. 어젯밤에는 한 달에 5100분의 통화를 해서 6000분이 되면 과금된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 고2인 아들에게 화를 냈다. 여자 친구랑 공부할 때 서로 통화하면서 공부를 한다는 게 말이 되냐며 화를 냈다. 요즘 왜 이렇게 화를 내고, 화가 많아졌는지 모르겠다. 앵그리버드가 바로 나다. 아무래도 긴 쉼이 필요한 것 같다. 아니면 원인이 정확히 무엇인지 가만히 짚어봐야 할 것 같다. 아이들에게 왜 자꾸 화를 내는 걸까, 지쳤다고 몸의 반응이 화로 전달되나, 아… 미안해서 오늘은 잘하겠지. 다정해지고 싶은데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 몹시 속상한 시간들이다.
15. 좋은 책, 숙면
좋은 책을 읽고 아침에 평소보다 한두 시간 늦게 일어났습니다. 숙면을 취했습니다. 잠의 질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잘 자고 일어나니 ‘태초의 나는 이런 사람이었을 거야’ 싶을 만큼, 결이 부드럽고 노여움이 사라졌습니다.
아기가 낮잠을 자는 모습을 보았는데, 다리는 쫙 벌리고 두 손은 만세 하며 자는 얼굴이 고요했습니다.
기세등등하게 늘어져 자는 모습에 ‘나도 저렇게 자고 싶다’ 했는데, 정말 그렇게 자고 일어난 듯합니다.
며칠 동안 내게 이어지던 뒷목의 뻐근함과 두통도 사라졌습니다.
가끔씩 아프고 나면, 아픈 사람들에게 미안해집니다. 아픈 건 참 힘든 일인데요.
아픈 게 일상인 분들은 어떤 희망으로 버티며 사나 싶어 집니다.
아픈 와중에도 붙잡을 것이 있기를… 곁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게 됩니다.
16. 김창옥, 여자가 행복해지는 법
비 오는 날은 늘 특별한 일이 생기는 것 같다.
유튜브로 김창옥티브이 강연을 자주 듣는 편이었다. 강연 내용을 대부분 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가서 그분의 강연을 들어보니 웃음 너머 삶의 진리가 곳곳에 있었다.
나이 쉰을 넘기면 다 비슷해지는 걸까. 삶을 견뎌낸 흔적이 고스란히 몸짓과 말투에 배어 있었다. 여자는 나이가 들수록 전우애 같은 게 생겨 더 이상 라이벌이 아닌, 잘 살아줘서 고마운 사람이 된다더니. ^^ 하물며 편한 복장을 입고 온 이유조차 강연의 소재였다. 그 안에도 삶의 연륜과 유머가 녹아 있었다.
김창옥 선생님, 참 좋은 분이구나. 강연 내내 그 마음이 전해져 왔다.
웃고 또 웃다가, 나중에는 눈물이 났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오늘 김창옥 강연에 다녀왔어.”
라고 했더니,
“엄마가 좋아하잖아
자주 보는 그분?”
이런다.
아이들은 엄마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의외로 잘 알고 있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녀석들이다.
만약 소규모 강연이 열린다면, 비싼 티켓값을 지불하고서라도 가고 싶어진다.
짧지만 긴 여운이 남는, 김창옥 강사님이 쓸쓸히 뒤돌아 들어가는 게 참 눈에 담아지는 애틋한 시간이었다.
17. 30분
30분의 시간은 1800초이다. 1800초는 과연 몇 걸음을 걸을 수 있을까? 한 시간은 따릉이 자전거를 빌리면 씽씽 달리고 올 수 있는 거리다. 8시부터 8시 30분까지는 제일 바쁜 아이들이 등교 준비하는 시간이다. 채은이를 어린이집에 등교시킨 날이 16일, 그로부터 26일 열흘째 되는 날 엄마와 30분 떨어지는 시간이 생겼다. 나 역시 자주 가는 곳, 라베이커리 집 앞에 와서 30분이라는 귀한 시간을 아이스라떼와 크로와상을 먹으며 지금의 소중한 시간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전업주부는 설거지와 요리는 의무이지만, 글 쓰는 건 놀이다. 어쩌면 내가 글을 쓰는 건 놀이로서 부담이 없기 때문에 즐거운 것인지 모른다. 만약 글 쓰는 게 설거지나 요리·청소처럼 의무가 된다면, 난 매번 글을 쓸 때마다 힘들고 창작의 고통을 겪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오늘 내게 주어진 30분의 귀한 시간을 글 쓰는 데 쓰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쓰고 싶어 하는 것이다. 꽃씨를 심고 새싹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처럼 나는 나의 꽃이 피기를 기다린다.
18. 인세
나는 소박하게 살기로 결심했다. 그 소박함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13년도에 어린이집 5세 교사를 마지막으로 퇴사하고, 월급이나 개인 소득은 없었다. 내게 순수 수입이 생긴 건 실로 12년 만이다.
5월, 『그렇게 우리는 문장이 되었다』 책이 총 69권이 팔렸다.
69권 862,500원에서 20프로 인세 172,500원을
함께 책을 낸 12인과 나눴더니 14,375원이 입금되었다.
와우! 대박이다.
어제 소식을 듣고 기분이 좋아서 얼마나 뿌듯하고 행복하던지.
인세라니, 신기하고 마음을 강아지풀로 간지럽히는 듯했다.
생각보다 금액이 커서 놀라웠다.
『그렇게 우리는 문장이 되었다』를 구매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인세를 받고 나니 나의 삶 한 편을 보상받은 듯
기쁨이 차오른다.
1만 4천 원 남짓으로 무얼 할까, 할 수 있는 게 참 많구나 싶다.
늴리리야 늴리리 늴리리 맘보—
늴리리야 늴리리 늴리리 맘보 ~~
노래가 절로 나온다. ㅎ
19. 모호함에서 분명해지기.
고백할 게 있다. 어제 단 만몇백 원의 수입에도 감사하며 실제로 늴리리 맘보를 부르며 춤을 추기도 했다.
마흔을 넘긴 나이에 여섯째까지 낳았다. 몸이 아프면서 헛헛해져 삶의 바운더리가 자식뿐인가 싶었고, 자식까지 포함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삼다라는 글쓰기 수업을 통해 책을 냈다.
그즈음부터 사람들은 나 자신을 여러 방식으로 아낌없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를 희생해서 남을 사랑하는 방식이 아닌, 나를 사랑하기에 그들 역시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소박하게 살고 싶지만 요즘은 슬쩍 누리는 것들에 자꾸 눈길이 간다.
욕망의 눈높이가 갈수록 높아진다.
소박하다는 건 적은 수입에 만족하자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형편으로 인해 자족하며 살아야 하기도 하지만 작은 것에도 힘껏 감사하자는 의미였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속이지는 말기로 한다. 나의 삶, 지금의 모습을 인정하면서 평화로워지는 방식으로 지혜를 구하자.
벌써 5년 남짓 남편의 수입이 생활비로 꾸준히 들어오며 삶의 여러 부분이 안정되니 좋아하는 물건들을 자꾸 구입하게 된다.
소소한 것부터 덜컥 큰 물건까지, 쇼핑의 즐거움에 빠진다. 물론 절제하려 노력하지만 가끔 지름신이 찾아오기도 한다.
규모 있게 살아야지 다짐하지만, 매달 카드값이 늘고 있다. 씀씀이가 커졌어도 저축은 계속하고 있지만, 가끔 불안하다.
오래전 궁색하게 살던 때를 생각하면 감사하면서도, 조금씩은 아껴야 한다. 되뇌게 된다.
아이들에게 더 노력하고, 나 자신에게 한발 물러서 차분히 바라보며 더욱 아끼는 방식으로 주변을 사랑해야 한다. 온통 나 하나이게 되면 결국 탈이 나게 되니까 늘 브레이크를 건다.
여러 방식으로 내 안에서 다시 태클을 걸며 새롭게 시작하도록 만든다.
예순이 되었을 때는 모호하기보다. 분명함에서 오는 평안으로 넉넉히 사랑하기를 바란다. 지금보다는 안팎으로 더 잘 살기를 꿈꾼다.
일주일 동안 쓴, 일상의 기록을 모았습니다.
다음 주에는 더 다정한 글로, 삶으로 만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