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을 앞두고
7. 마늘즙
마늘즙이 한약 포장 되어 오듯 선물로 왔다. 남편껀데 본인은 안 먹는다고 나보고 먹으란다.
남편 친 삼촌께서 선물하신 것이다. 남편은 한 포 먹어봤는지 아무 맛도 안 난다며 츤데레처럼 내게 건넨다.
-왜 당신 먹지? 몸에 좋은 건가 봐.(막 검색해서 먹는 법 찾아보며)
-내가 이런 거 먹는 거 봤냐?
-헐, 난 이제 몸에 좋다는 건 다 먹고 싶어 ㅎ
아침에 이걸 먹고 어찌나 힘이 펄펄 솟던지! 꾸준히 먹어봐야겠다. 나 진짜 이제 늙었나 보다. 몸에 좋다는 건 다 먹고 싶어진다.
아유 아줌마스러워서 소녀 소녀는 무슨 이제 나이 드는 것을 실감한다.
이제 점점 중년이 되어 가는 걸, 슬프다.
올여름 마늘껍질까지 넣은 즙으로 튼튼해져야겠다.
8. 사랑
별건 아닐 수도 있지만,
어제저녁 먹다가 아침에 출근하면서도 선풍기를
고정시켜 나에게 돌려줄 때 참 근사해진다.
아침에 내가 마늘즙을 데워 먹으니 웃으면서
"너 진짜 몸에 좋은 거 잘 챙겨 먹는다."
"응 100살까지 살려고."
앞으로 56년이나 남았으니 느긋하게 생각하고,
인생 2막을
차근차근하고 싶은 걸 하면서 시나브로 늙어보려 한다.
그러니 영원한 삶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영원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삶이 있다는 걸
나는 자주 말해주고 싶어진다.
9. 시간
아이들 여름방학을 앞두고 2주 넘게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막내가 이제 어린이집 적응을 하고 3시 30분에 낮잠을 자고 만난다.
아이들 다섯이 여름방학을 한다 생각하니 점점 나의 달콤한 휴식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 글 쓰는 데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다. 아무것도 안 하기, 하고 싶은 것 하기! 생각보다 아이가 집에 오는 3시까지 시간이 얼마나 쏜살같이 흐르는지 우스갯소리로 나이만큼 그 속도로 간다는데 마흔 중반의 나도 그렇다.
책 한 권 읽는 것도 좋은 책이 아니면 시간이 아까워서 읽다가 과감히 팽개쳐 두어 버리는 것이다. 요즘에는 정말 시간이 금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여유조차도 시간 부자인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특혜라는 생각이 든다.
일에 시간을 투자하고 급여를 받는 사람들이 그 일에 대한 대가로 충분한 휴식과 보상이 시간으로 주어지길 바란다.
시간이 중요하다 설파해 놓고 요즘 잠들기 전에 자꾸 드라마를 보는 나를 어이할꼬. 계획한 대로 시간을 사용할 수는 없겠지만, 나에게 생겨난 육아의 공백 시간을 충분히 알차게 활용하고 싶다.
10. 글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짐작할 수 있을 만큼만 드러낸 채 수위를 조절해, 오히려 읽는 이로 하여금 슬픔을 더 깊이 느끼게 하거나 불편하지 않게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친한 친구에게 모든 걸 다 말하지 않아도,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예전에는 품위를 지킨 글들에서 왠지 모를 거리감이나 위화감을 느꼈지만, 요즘엔 단정한 글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 그 글을 쓰기 위해 얼마나 섬세하게 단어를 골랐을까 생각하면, 글쓴이의 마음까지 헤아리게 된다.
비유를 적절히 사용해 단 한 줄의 문장이라도 날것 그대로 드러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힘들다’는 세 글자만으로도 충분히 그 힘겨움이 전해지는 것처럼, 관계에서도 글에서도 굳이 모든 걸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모든 것을 드러내는 글은 요즘 들어 읽기가 버겁게 느껴진다.
소란스럽지 않고, 조용히 읊조리듯 마음을 끌어당기는 글을 읽고 싶은 요즘이다.
11. 귀인을 만난 날
익숙한 장소에서 좋아하는 책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움직이는 책, 이재필 대표님께 무려 네 권의 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얼마나 황송하던지요.
처음으로 오랜 시간 지구불시착에 머물며 책을 읽고, 다양한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얼마나 황홀하고 좋았는지 모릅니다. 처음 뵙는 긴장으로 약간의 어색함도 있었지만, 집에 와 가만히 떠올려 보니 한 사람이 책에 쏟을 수 있는 열정은 어디까지일까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분들이 계시기에 교보문고의 그 문구처럼,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이어지는 것이겠지요.
책을 통해 소통하는 ‘움직이는 책’이 제 주변에 계셨네요. 부디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뵙고 나니 여운이 참 많이 남습니다.
이틀마다 신장투석을 하시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꾸준히 책을 읽고, 나누고, 강의를 듣고, 기획까지 하실 수 있는지… 새삼 존경스럽기만 합니다.
서점협동조합 이사님이시기도 한 대표님은 페이스북을 통해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지만, 이렇게 직접 뵙고 다양한 유익한 정보까지 전해 들으니,
올여름이 더 기대되고 설레는 이유가 생겼습니다.
책과 함께 여행을 시작해 봐야겠어요.
12. 여름어사전
요즘, 난 이렇게 몽글몽글해지는 책이 좋다. 어쩜. 출판사 이름까지 아침달이다.
여름은 복숭아지. 복숭아가 이렇게 달콤할 일인가.
여름 첫, 복숭아다. 딱딱이를 좋아하는데
딱딱이가 없더라, 황도 중에 제일 딱딱해 보이는 거 골랐는데 이렇게 달다니!
요플레 복숭아 맛은 복숭아가 아니었다.
여름어사전, 6월에 출간했는데! 벌써 4쇄!
이렇게 여름은
누군가에게 조용히 흥분시키는 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