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꽃은 우리 영혼의 반영으로 우리 가장 깊숙한 곳의 감정을 드러내준다.”
「7편 되찾은 시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P.230
푸르스트의 문장들, 마음산책
이사하면서 판 책 중에 다시 사고 싶은 책이 있다면
1순위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이다. 이 책은 아쉬운 마음 달래기 위해 국제 도서전 갔을 때 구매해 온 책이다.
새벽 6시도 안 되어 나를 깨운 막내딸, 지금까지 신나게 놀다 잠이 들었다. 자고 있는 모습이 평화 그 자체다.
언니, 오빠 학교 간다고 본인도 가겠다고 참견 다 하더니 모두 가고 나니 피곤했던지 하루 반나절 놀이를 새벽부터 아침까지 하더니 잠들었다. 9시 30분에 어린이집 가야 하는데 곤란하다. 그래도 깨워서라도 보내려고 한다. 그동안의 적응이 아까우니 규칙적으로 보내야 한다. 서로를 위해서 ^^~ 그나저나 장바구니에 있는 저 책을 세트로 살까 여러 번 고민한다. 그전에 팔아버린 책은 한 권씩 애지중지 사 모았던 책인데 어찌 그리 한 순간에 식어버린 듯 팔았을까? 그때는 이사가 더없이 중요했다. 오늘도 딱 한 권만 다시 살까? 책을 사고 싶은 걸 장바구니에 넣어둔 것을 보니 많아도 너무 많다. 큰일이다.
지혜의 언어들은 왜 굿즈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헝겊 굿즈로 만들어 날 유혹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책을 사고 싶은데 절제가 힘들어서 푸념 중이다.
2. 호밀밭새여글 3기 작은 낭독회
저녁 시간대에 밖으로 나가본 적이, 결혼하고는 손에 꼽을 만큼이다. 그것도 초저녁 잠깐의 외출이 전부다.
오랜만에 여자들만 모였다. Zoom의 형식을 빌려 자신이 쓴 글을 낭독하고, 서로에게 질문도 했다. 글을 쓴 소감도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 두 시간이 모자르다는 생각이 들 만큼 훌쩍 지나갔다.
우리는 모두 주인공이 되었다. 마치 에세이가 책 한 권으로 나와, 서로가 쓴 글을 가만히 듣고 마음에 담는 작은 콘서트 같았다. 우리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는 말을 처음으로 알 듯했다. 아 … 나의 저녁이 있는 삶은 이제 시작되는 걸까? 주부는 특별한 이벤트도 없고 외부 행사라 해도 내가 주인공이 아닌 축하를 하는 자리다.
호밀밭새여글 3 기분들과 작은 낭독회를 통해, 우리 모두 흔들리지만 걷고 있고, 멈춘 듯하지만 끊임없이 샘물을 길어 올리고 있음에 함께 넉넉해지는 감사한 시간이었다.
3. 버스 종점
우리 집은 버스 종점이라 새벽 네 시가 되면 시동을 켜고 끄는 소리가 들린다. 밤늦게까지 불 켜진 초록 버스가 정류장에서 시간에 맞춰 운행 준비를 하려고 부르릉거린다.
창문을 닫으면 바깥소리가 다행히 들리지 않지만, 미세한 소리로 새벽이 시작된 것을 알게 된다.
버스를 타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대부분 운전해서 이동하기 때문이다. 가끔 내가 누리는 편리함이 내 마음도 편하게 했는가를 생각해 보면, 오히려 편리함 속에 계속 편리함만 추구하는 나를 본다. 편리함이라는 속성이 많은 것을 잃고 지내는 건 아닌지 문득 아침,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지켜내야 하는 것들을 되새겨 본다.
종점이 시점이 된다던 그 시가 생각난다.
『나는 종점을 시점으로 바꾼다. 내가 내린 곳이 나의 종점이요, 내가 타는 곳이 나의 시점이 되는 까닭이다. 나는 이네들에게 너무나 피상적이 된다. 너무 막연하다. 사랑이란 횟수가 잦은 데와 양이 많은 데는 너무나 쉽게 피상적이 되나 보다. 그럴수록 자기 하나 간수하기에 분망하나 보다.』
– 윤동주, 『나무가 있다』, 아르테
4. 엘리베이터
남편이 엘리베이터 현장에서 파워에이드 1.25리터 네 통을 먹고 일하다 죽을 것 같았다는 말을 들었다. 현재 두통이 온다는 말과 함께, 극한직업이다. 오늘은 정말이지 살인적인 더위였다. 나 역시 오늘 하루 온종일 더위와 씨름하다 넋이 나간 듯 입술에 포진이 생겼다.
앞으로 이 여름을 어찌 헤쳐나가야 할지, 기도하는 밤이다. 낮에 계기판(?) 택배를 보내달라 해서 가지고 나갔는데 남편이 쓴 계기판에 정성스럽게 적은 고장 as 상세 내용을 보며 반듯하고 섬세한 글씨체에 어쩐지 마음이 짢해졌다.
5. 책
잘 읽은 책, 좋아하는 책은 깊게 스며든다. 정말 괜찮은 책은 내 기억에 들어 있다. 리뷰를 쓰지 않는다. 요즘, 내가 좋아했던 책
내가 좋아해서 계속 가지고 있는 책들에 관해 조금씩 소개해도 책
한 권은 쓸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든다. 예책에서 나온 <나는 문학의 숲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이정일 목사님은 자신이 읽은 책을 소개했다. 그것으로 끝이 났으면 어쩌면 신앙을 문학으로 이야기할 수 있구나, 거기서 끝났을 것이다. 북토크에 갔을 때 저자분께서는 자신의 삶은 슬펐다고 했다. 만약 그분의 에세이가 나온다면 읽어보고 싶을 만큼 저자의 삶은 오랫동안 고통의 흔적이 있었다. 그것을 이야기하는 방식에서 부드러운 거즈면 같은, 아기 손수건 같은 문학을 사용했다. 그것이 좋았다. 모든 이야기가 바로 전개되어 버리면 거부감이 든다. 염료에 옷을 염색하듯 서서히 번지는 것이 좋다. 그것이 슬픈 이야기일수록 더 그렇다.
아침에 어제 택배 온 <지금은 보이지 않아도> 성수정 님의 이야기를 펼치려다가 문득, 책에 대해 책을 쓰는 것도 참 좋겠다 싶었다. 내가 읽은 책, 읽은 책을 광고하는 글이 아닌 읽은 책에서 얻은 사유들, 왜 내가 애정하게 되었는지에 관해, 호모북커스에 갔을 때 내가 물 만난 고기처럼 말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만약 책을 쓰게 된다면, 책에서 책을 소개하는 책을 쓰고 싶다고 하셨다. 나도 그런 책 좋아하는 것 같다. 책에서 또 책을 소개하는 책, 그런 책을 읽다 보면, 책이 계속 읽고 싶어지고 책을 놓을 수가 없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쓴 책은
은밀하고 조용히 연결된다.
책을 이야기하는 책도 참, 좋겠다. 사람을 이야기하는 책도 괜찮다. 사람을 자세히 면밀하게 살펴보는 구석이 있어서 더 그렇다. 여름이라 윗옷을 훌렁 벗고 어슬렁거리는 아들 녀석들의 몸뚱이를 보니 한 녀석은 갈비뼈가 다 보이고, 한 녀석은 두리뭉실하고, 남편은 단단하다. 역시 나는 단단한 우리 남편이 좋구나, 생각했다. 물끄러미 몸뚱이들을 보는 것이다. 몸뚱이는 참, 신기하고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 우리 집은 튼튼하고 실한 몸뚱이들이 걸어 다닌다. 든든하다. 건조하고 푹푹 찌는 여름날씨를 견디게 할 때 문학만큼 좋은 게 없어, 달콤하게 나열된 문장들을 사랑한다.
6. 돌봄과 작업
홍한별 번역가님, 책을 사려다 보니 내가 사는 지역 서점에는 재고가 없었다. 결국 알라딘까지 가게 되었다. 그저 번역가님의 에세이가 궁금해서, 글을 읽고 싶었다.
알라딘 책 검색대에서 ‘홍한별’이라고 쳤다. 『돌봄과 작업』이 나왔다. 『단 한 번의 삶』을 읽고 관심을 갖게 된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도 함께 읽고 싶어 두 권을 구매했다.
읽기 시작하자마자, 몇 페이지 되지 않는 글인데도 제목부터 내 마음 어딘가를 자극했다.
「아이를 버리고 도망쳤던 기억」 양육의 카테고리를, ‘돌봄’이라는 이름 아래 ‘엄마’에게 부여된 수많은 책임과 의무로 포장해 놓은 자리를 이렇게 적나라하면서도 따뜻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니.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정말 아이를 버린다. 자의로 타의에 의해 수십 번, 그렇게.
읽다 보니 익숙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페이스북 친구인 이설아 작가님. 어쩐지 표지가 낯익다 했더니, 공저로 함께하신 책이었다.
한 아이의 입양 이야기에서 시작해, 생부모를 돌보는 관계로까지 확장되는 서술이 깊게 다가왔다. 책에 나온 것처럼, 아기를 입양 보냈지만, 낳은 아기를 그리워하며, 키울 수 없어 보내고서도 내내 미안하고 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생부모들이 많을까? 연결될까?
그랬으면 좋겠다! 싶어졌다. 지금도 이 일을 계속하고 계실까. 얼마나 많은 아픈 사연들을 만나셨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감정을 돌보는 일이 곧 영혼을 돌보는 일이라 믿는다. 영혼이 성장하는 동안, 수만 번쯤은 휘감고 지나갈 다양한 성장통, 그리고 그와 짝을 이루는 감정들을 매 순간 환영하는 일. 그건 늘 중요한 일이었다.
내게 부족했던 돌봄의 공백을 메우는 일, 그렇게 채워진 가슴으로 내 가족을 돌보는 일, 그리고 내 가족이 건넨 충만함에 힘입어 입양 생태계에서 만나는 수많은 이웃을 끌어안는 일. 이 모든 일들은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
p.182
『돌봄과 작업』, 「돌봄이 필요한 이들이 서로를 끌어안을 때」, 이설아, 돌고래
엄마가 된다는 것, 한 가정의 부모가 된다는 것은, 온 우주가 서로를 안아주고 품어줄 때 가능한 일이라는 걸 이제야 깊이 실감한다.
뜻밖에 만난 『돌봄과 작업』이라는 책을 통해 따뜻한 위로를 받는다.
모두가 정제되지 않은 현실의 민낯을 잘 견디어 오프라인의 삶을, 말하지 못한 감정의 혼란을 잘 다루어 ‘엄마’로 살아내길, 건재해 주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약, 한 달간 글을 매일 쓰고 28번까지 번호를 매겨 글을 발행했습니다.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아무것도 쓰지 않으면 고칠 수 없다. 2부를 시작합니다 많이 구독해 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