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 새여글에 매일 쓰는 삶을 시작했다.
1. 아주 커다란 잔에 맥주 마시기
생각만 해도 시원한 책 제목 책을 사놓으면 책이 내게 말을 거는 것 같다. 오늘은 책 한 잔 어때?
맛있겠다. 잠깐 얘들 재우고 한 잔 하자
그러다가 한쪽 읽다가 아... 재미있어 읽으니 참 좋다.
더 읽고 싶은데 지쳐서 잠들어 버리는 참 아쉬운 책 한잔, 오늘도 나는 책 한잔하고 잘 테야.
2. 달리기
"숨이 찰 정도로 달리기를 막 하고 나면 내 심장 뛰는 소리를 내가 들을 수 있잖아 그때 참 좋아."
3. 미지의 서울
“토요 축구 오늘부터 시작 아니야?”
친구 만나러 간다는 녀석을 붙잡고 토요 방과 후 수업을 가야 한다며 신발끈 묶는 아들을 붙잡았다.
“엄마! 오늘 토요일 아니고 화요일이야.”
“어… 아, 맞다. 난 토요일인 줄 알았다. 오늘 토요일 같다? 그렇지?” ㅎㅎㅎ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를 미리 한 난, 꼭 토요일 같은 늦잠을 자고 일어나 아들 녀석과 실랑이를 한다.
요즘은 토요일이 제일 좋다. 일요일은 월요일이 시작되니 쉬면서도 어중간하고, 토요일은 일요일이 있으니 맘껏 신나게 놀고 무리해도 ‘일요일이 있으니’ 하며 더 노는 것이다.
월요일과 금요일을 열심히 살고 나면, 토요일은 뒹굴거리는 날도 많지만 역시 아무것도 안 해도, 해도 되는 선택지가 있는 토요일이 좋은 것이다.
화요일 선거 날이라니. 목요일이 선거 날이었으면 목·금·토·일 쉴 수 있는 건데. 선거 날짜를 누가 정하는 걸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어떤 법칙 안에서, 사회의 제도 아래에서 살아간다. 쉼과 일, 두 가지 사이에서 ‘오늘’이라는 하루가 결정되는 것이다.
갑자기(?) 생긴 공휴일, 마음껏 쉬고 싶지만 내일이 수요일.
『미지의 서울』이라는 드라마를 요즘 재미있게 본다. 로펌 변호사가 퇴사를 하고, 갑자기 생긴 쉬는 시간에 일만 하던 사람이라 뭘 해야 할지 몰라 수세미를 뜬다. 수세미를 얼마나 잘 떴는지, 수세미 뜬 여러 개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일하던 동료에게 준다.
그러다 밥집 냉장고 사는 할머니를 따라가 도우려 하니, 할머니가 거절하자 “수세미를 하루 온종일 뜨는 것보다 낫지 않겠느냐”며, 할 일 없는 자신의 상태를 보여준다.
난, 쉬는 날 과연 무엇이 하고 싶을까?
역시 난 수세미 뜨는 것보다는 글 쓰는 게 좋고, 내 글을 읽고 누군가 무엇이 하고 싶어 졌고, 글 속에 빠져 어떤 기억을 떠올리고 그 사람을 한번 그리워하길 바라는 것 같다.
천천히 매만지며 글을 쓰는 사람들이 좋다.
쉰다는 건, 내 기억 속 어디쯤 가만히 머물러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시작이지 않을까.
4. 2025년 6월 4일
가끔은 글을 쓰고 싶지 않고 나 스스로도 내 마음을 닫아두고 싶은 날이 있다.
몸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신호가 올 때나 이유 없이 세상으로부터 나를 격리시키곤 한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인간이란 어떤 이유 한 가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문제를 안고 산다.
자기가 바라는 것이 100이면 100이 채워져야 만족하는 것이니까, 98에서 2라는 덜 채워진 욕망 때문에 자신을 허비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요 근래 내가 느낀 욕구 중 가장 크게 느낀 욕구는 뭐였을까?
여섯 자녀를 키우면서 아기와 살을 맞대고 젖을 먹이고, 가끔 그것만으로 충만해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오롯이 나라는 존재로 서고 싶은 날이 있다.
남편이 하루 쉬면서 아이들 먹거리를 챙기고 난 옆에서 도우면서, 조금 답답한 마음이 들어 아주 오랜만에 따릉이를 빌려 한 시간여 자전거로 바람을 느끼고 왔다.
그곳에 분명 어느 날 봤던 양귀비꽃이 흩날리고 있겠지 했는데, 양귀비는 생각보다 차지하는 영역이 적었고 수레국화가 들판에 심긴 듯 흩날리고 있었다.
푸르스름한 수레국화가 한 곳에 피어 있으니 맑아졌다.
나를 붙잡고 있던 어떤 소용돌이가 차분히 가라앉는 것 같았다. 세월은 조금씩 변하고 있구나, 알아차렸다.
때때로 감정이라는 녀석은 아무런 일이 없는데도 나를 속인다.
몸이 아파서 그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픈 사람들은 온전한 생각을 유지하기 힘들다.
생각이 없어지는 순간, 멍하니 초점 없는 눈이 되어버리기 일쑤다.
그렇게 된다는 건 끔찍하면서도, 사유할 때 찾아오는 이 번민은 또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요즘은 자꾸 망설이게 된다.
특히 돈의 씀씀이에 대해 그렇다.
조금은 앞뒤 가리지 않고 흘려보냈던 것들도 자꾸 저금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없어도 힘들지만 살았는데 싶어 그전에는 참 잘 퍼줬는데, 요즘에는 힘든 사람들을 보면 기도하게 된다.
나의 몇 푼이 당장 목마름이나 삶의 불편을 최소화할 수는 있겠지만, 구원을 주지는 못할 거라고 장담하기 때문이다.
기도하면 분명히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자주 목격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나는 이제 슬슬 규모 있게 살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들고 있는 것일까?
어려운 사람들은 계속 어렵다.
그것이 이제 눈에 보이는 것을 보니, 어려운 사람들을 향한 나의 마음, 그 동동거리던 마음이 많이 옅어진 것 같다.
이렇게 살다가는 세상 사람들과 같아질 텐데, 위기의식도 든다.
다들 이렇게 자신의 삶을 반듯하게 영위하고 있는 거구나.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반듯하고 정갈하게 산다는 것은, 어느 정도 신세도 지지 않고 자기의 삶을 검소하고 단아하게 지켜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간결하고 단단하게 여미며 살고 싶다는 나의 오랜 소원은, 조금 치사하고 불편한 마음을 가지면서 되어가고 있다.
내 자식, 내 가족을 위한 명분은 확실한데, 어딘지 모르게 겸연쩍다.
아마 조금씩 생활이 안정되어 가면서 외면해 버리는, 보지 못하는, 알면서도 눈감는 관계들이 생겨나는 것 같다.
그것에 대해 나는 앞으로 얼마나 변명하며 살아갈지…
그러면서도 지금 있는 자리에서 나의 양심을 최소화하며 살아가려고 발버둥 치게 되겠지.
아… 갈수록 참 어려운 세상살이다.
5. 가평을 간다.
교회 식구들이랑. 수련회다. 차가 막힌다. 한 시간 거리면 닿을 길이 벌써 한 시간을 넘기고 있다. 아마도 2시간 30분은 걸려야 도착할 모양이다. 한 시간 넘게 보채던 막둥이가 드디어 잠들었다.
『호밀밭 새여글』에 올라온 글들을 읽으니 마음이 차분해지고 여유도 생긴다. 아이가 둘이든 셋이든 살아가는 모양이 비슷하구나 싶어 공감되는 이야기들에 마음이 넉넉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하다.
2박 3일 있을 예정이다. 나는 숙소에서 편히 쉴 요량으로, 삼시 세끼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으로 가고 있다. 밥이 맛있게 나온다니, 그것이야말로 주부에게 가장 큰 쉼 아닌가 싶다. 몸도 마음도 편안히 쉬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호밀밭 새여글』 에 들어오길 잘했다. 강작님은 오래전부터 여름편지, 가을편지, 겨울편지까지 계절 편지를 보내주던 다정한 분인데, 그때는 결혼하지 않았던 분이었다가 이렇게 결혼하고 다시 연결되었다. 두 분의 결혼을 응원했는데, 결혼 후에는 더 헤아림도 깊어지고 더욱 사랑스러워지신 듯하다.
무엇보다,
『우리가 애정했던 아날로그 라이프』 저자답게 책을 그대로 살아내고 계시니 감사하다. 우리의 글 쓰는 여정이 서로에게 산파술이 되어, 자신도 모르는 서로의 빛을 꺼내줄 수 있는 우정으로 이어지길 소원해 본다.
아… 숙소 도착하려면 아직도 먼 건가.
어서 도착해서 밥 먹고 싶다. 배고프다.
6. 식물 스케일
낯선 환경에서 3일 동안 있었다. 침대에 누워 가까이 보이는 산의 녹음, 갓 뜯은 신상 책, 책도 신상이 있다. 누구도 모를 것 같은, 나만 혼자 뜯어봤을 것 같은 책, 이색적 이게도 직업이 방송계 관련 PD지만,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이만큼은 소장하지 않을 듯한 수백 개의 메이크업 도구를 전시해 놓은 방이 있었다. 삼일 내내 그곳에 간 모든 여자들은 마음껏 화장할 수 있도록 전시해 두었다. 내 방 바로 옆이라 자주 들 나들며 화장을 했다. 내 피부톤과 맞는 베이스를 찾고 아이섀도도 찾았다. 수백 개의 화장품을 보면서 마치 내가 책을 모으는 것과 비슷한 마음이 이런 마음일까 싶었다.
"혹시 용기가 예뻐서 사기도 했나요?
“그건 아니고 신상이 나올 때마다 제품이 궁금해서 샀어요.”
많은 것 중에 본인이 계속 쓰고 있는 것이 난 궁금했다. 인생템이라며 두세 가지를 알려줘서 얼굴에 발라보고 상품명을 알아 두었다. 어떤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구매하기도 하지만, 연휴 내내 읽은 책의 작가처럼 한 번 궁금해진 대상을 향한 끊임없는 호기심과 욕구, 가끔은 정말 내가 왜 이러나 싶을 만큼의 소비, 소비하는 그곳에 자신이 찾고 싶어 하는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걸 찾는 자는 흔치 않다.
내가 읽은 작가는 식물을 사서 그것과 조화가 맞는 화분을 끊임없이 넘치도록 산다. 어떤 건축가가 만든 작품을 사고서야 소요가 멈추고 잦아든다. 인간은 자연스레 완전함에 이르고자 하는 욕망이 창작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불완전함을 조금씩 메꿔가며 결국 완성하고자 하는 의지가 결국 무슨 일이든 만들어 내는 것이다.
존경하는 한 건축가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현재의 필요에만 반응하는 것이 건축이라고 생각 안 해요. 건축은 현재를 얼린 결과이지만, 미래에 상황이 바뀌더라도 그 시간을 잘 견딜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식물스케일_박세미
건축과 화분, 식물… 무슨 조합인지 모르겠지만 식물 에세이(?)를 읽으며 현재의 눈에 나타난 결과물을 매만져 완성에 이르기까지 얼린 결과의 조각들이 라니 그대로 미완성인 채 남아 있으면서 미래로 가는 것, 이것이 참 오묘하다.
내가 살고 있던 나의 집을 두고 나왔다. 3일 쉬었던 그곳에서도 나왔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장소를 옮기는 반복을 하며 다시 과거로 오는 착각이 들었다. 다시 집으로 온 나는 과거일까? 낯선 그곳은 미래일까? 현재 나는 어제와 다른 나일까?
어쩌면 시간은 법칙일 뿐, 오늘 안에서 내일과 과거를 계속 반복하다 어느 날 눈 떠보면 내가 그렸던 그 모습이 아주 먼 미래에 이미 존재해 있는 것이 아닐까. 그걸 찾아가는 건 결국 나의 바람이 만들어 낸 집요한 흔적들이 아닐까 싶어졌다.
2박 3일 동안 쉬기도 했지만, 고생스럽기도 했다.
딱 한 순간, 좋았던 시간이 있었다. 편안히 누워 책의 한 구절을 찾았을 때였다. 내 상태가 오롯이 나타난 문장을 읽는 순간의 희열에 중독된 건지도 모른다.
7. 오, 나의 커피! 오 나의 집
아침, 모두 애들 학교 보내고 3일을 비운 집을 치우다 보채는 아기 젖을 먹이느라 청소기 돌리는 것을 남겨 놓고 글을 쓴다.
아, 내가 치운 집은 딱 나답다. 창문 새시가 꼭 노이즈 캔슬링 기능과 똑같다. 창문을 여는 즉시 바깥의 온갖 소음이 다 들리고, 창문을 닫는 순간 조용해진다.
날이 더워 문을 열기도 하고 에어컨도 켜고 하는데, 난 이 정도의 날씨는 자연바람이 좋아 환기도 할 겸 열어 놓았더니 뽀로로와 노래해요, 틀어 둔 TV 소리와 함께 아침의 평화는 없다.
더러워진 집에서 신성한 커피를 마실 수는 없어 일단 치우기 시작했는데… 커피는 나의 보상이다. 어서 평화를 만끽하고 싶다. 청소기를 돌리러 가야지, 오 나의 커피, 오 나의 집… ㅎ ㅎ ㅎ
8. 약속
약속이 생겨서 입을 옷을 찾다가 후줄근한, 유행 지난 청바지랑 전생에나 입었을 원피스랑 무슨 색이었는지도 모를 신발을 보다가 안 되겠다 싶어 쇼핑에 나섰다. 요즘 유행 스타일로 장바구니에 이것저것 담다가 ‘아휴, 안 되겠다’ 싶어 몇 가지 입을 옷과 신발을 결제하고, ‘그래, 이제 여름 이것으로 잘 지내면 되잖아’라며 나와 협상했다. 안 사도 될 걸 하나 더 샀다고 나 혼자 엄청 가책을 느끼다가 ‘그래, 내년 여름에도 입으면 되잖아’라며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만들었다.
무엇을 안 사고 버티다 한 번씩 꼭 이런다. 그래 놓고 또 혼자서 ‘꼭 필요한 것만으로 살아가는 인생은 점점 거칠어지는 거야. 나에게 여유를 부려야, 다른 사람이 어쩌든 간에 너그러워지겠지’라며 쇼핑한 나를 애써 칭찬해 본다.
약속이 없어야 한다. 아니다. 약속은, 약속은 좋은 것이다. 잎을 떼는 마음으로 ‘좋다. 아니다’ 그러고 있다. 만나는 걸 좋아하면서 만나는 걸 긴장하는 참 이상한 타입이다.
9. 당신은 글을 쓰는 대신 무엇을 하는가? 그것에 대해 쓰라
글 쓰고 싶은 마음이 차올라 『호밀밭새여글』 에 문을 두드렸지만 해보니 참 쉽지 않다. 생각의 밀도를 높여 적다 보니 오히려 횟수가 줄었다. 처음에는 잘 쓰고 싶은 마음에 글이 쓰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지금 쓰면서 그건 핑계였구나 싶다. 글을 쓴다는 건 쉼을 갖는 일종의 멈춤이다. 멈추지 않고 할 일을 끊임없이 하다 보니 책을 읽을 수도 없고, 글도 쓸 수 없다.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게 글쓰기 맞는 거지?'
재차 확인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글 쓰는 거라면 시간을 확보해야겠다. 드디어 내일 막내가 어린이집을 간다. 무조건 읽고 쓰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자전적 에세이를 쓰기 위해 선택했던 책 한 권이 생각났다. 조금 길지만 한 번 소개하고 싶어서 책의 한 귀퉁이를 적는다. 그럼에도 다 공감한 건 아니다. 서글픈 마음으로 적는다. ^^
"집이 깔끔하다면 그건 당신이 글을 쓰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싱크대 수챗구멍의 작고 동그란 물때를 문질러 없앴다. 이제 싱크대는 반짝반짝 빛날 정도로 완벽하게 닦였다. 나는 한 발 물러서서 내 노동의 결실에 감탄한다. 땀만 조금 흘리면 안 되는 게 없다니까. 그러나 곧 문제의 핵심이 드러난다. 어째서 싱크대를 청소할 시간이 났지? 게다가 온 힘을 다해 아주 열정적으로 했네. 그래,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글을 쓰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야."
작은 요정들이 밤마다 몰래 와서 구석구석 쓸고 닦아주거나 돈을 주고 청소대행업체를 고용하지 않는 한, 당신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뻔하다. 책을 쓰고 싶은가? 자전적 에세이를 완성하고 싶은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가? 깨끗한 싱크대로는 세상 사람들을 치유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이 쓴 책으로는 그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
당신은 글을 쓰는 대신 무엇을 하는가? 그것에 대해 쓰라.』
― 『내 삶의 이야기를 쓰는 법』, 낸시 슬로님 애러니, 부제: 자전적 에세이 쓰기
10. 망각의 기술
어린이집 보내는 스케줄 하나 늘었을 뿐인데 혈관 하나가 길을 잘못 든 것처럼 뒷목이 뻐근한 이틀이다.
아침에 적응하기 위해 한 시간여 어린이집을 막내랑 다녀오면 카페인 금단 증상이 일어난 징후처럼 벌컥벌컥 커피를 마셔 수혈한다.
22, 17, 13, 11, 8, 2
로또 당첨 번호일까? 아니다. 난, 여섯 명의 자녀를 두었다. 내 자녀의 나이들이다.
가끔 여섯을 키우고 있는 나를 소개하는 게 멋쩍을 때가 있다. 그럼에도 나를 설명할 때 여섯 명을 낳은 건 내 커다란 나의 일부다.
그만큼 바쁘고, 그만큼 정신을 차리기 위해 정신을 놓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아침에 『망각의 기술』을 마저 읽었다.
호모북커스라는 종로에 있는 공유 서재에 갔다가, 내 눈에 띈 책.
읽는 삶이 가장 기억력을 오래 가져가는 행위라고 한다. 오랫동안 읽고 쓰는 삶을 통해 기억력이 좋은 편이다. 막내딸 주민번호만 빼고 모두 외운다.
『망각의 기술』을 새벽에 읽었다.
읽으면서 ‘지금 내가 뭐 하고 있지?’ 라며 생소한 용어들 앞에 이상하게 정돈이 되었다.
마치 전혀 모르는 나라, 알지 못하는 언어를 듣는 듯 읽지만 기억에 저장은 안 되는, 배우지 못한 지식을 들으니 상쾌해졌다.
망각은 생존을 위해 잊기도 한다는 말이 맞는구나. 선택적 기술이라는 것이다.
기억을 지워야 새로운 삶, 새로운 도전, 새로운 것에 빠른 적응력을 보인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일부 기억들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장애물을 만들기 때문이다. 인체의 신비는 놀랍다.
아무 생각 없이 읽은 『망각의 기술』 전문이다.
뇌가 쉬는 것 같다.
“작업 기억은 전전두엽피질에서의 전기 활성화에만 의존한다고 여겨진다.
단기 기억은 해마와 인접한 내 후각피질에서의 단백질 인산화에 주로 또는 오로지 의존한다고 생각된다.
특정한 뇌해에 단백질 합성 억제제를 가하면 작업 기억이나 단기 기억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장기 기억은 차단한다.
이는 장기 기억의 형성이 새로운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뉴런의 기제에 의존하고, 더 짧은 형태의 다른 기억은 그렇지 않음을 나타낸다.
시냅스 전위의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은 장기 강화(long-term potentiation, LTP)와 장기 저하(long-term depression, LTD)이다.
이 두 과정은 시냅스를 형성하는 축삭돌기의 갑작스럽고 짧으며, 신속한 자극에 뒤이어 일어난다.”
나, 괜찮은 거겠지? 푸핫. 책 읽으며 몸도 마음도 쉼을 갖는다.
11. 작은 에피소드
막둥이는 돌이 되기까지 예방접종을 위해 드문 드문 정해진 소아과에 간다. 아기를 안고 차에서 내리면 노상주차장인데 시에서 운영하는 주차관리 하는 아저씨가 (할아버지에 가깝다) 조금 멀리 주차초소에서 천천히 걸어오셔서 주차를 알리는 종이를 출력해 차 밖에 붙인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하곤 했다.
하루는 넉넉한 주차 자리에도 불구하고 차를 주차했는데 반듯하게 바르게 주차하면 좋겠던지 차를 다시 주차하라고 해서 다시 아기를 안에 태우고 원하는 위치로 주차를 시켰다. 속으로 약간 불편했다. 그러고 몇 번 더 만났다.
한 두 달 전이던가,
예방접종 맞히고 깜박 잊고 주차 종이를 붙인 채로 집으로 왔다. 주차요금 내는 걸 깜박했다. 전기 자동차니까 요금이 많지는 않지만 한 시간여 주차했으니 그래도 요금이 나왔을 것으로 예상하며 주차 종이에 붙은 전화로 담당하는 분에게 전화를 거니 그분이 전화를 받아서, 제가 차 번호가 땡땡땡인데 잊어버렸다며 주차요금을 어떻게 내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더니, 아 아기엄마 제가 가끔 주차권이 있어서 천 몇백 원 나왔는데 그걸로 대신해서 안 내도 돼요. 하셨다. 아… 거듭 감사드립니다. 하고 끊었다.
어제 예방접종 맞추고 병원 가면서 별일 없이 또 그분을 무덤덤하게 맞았다. 접종 후 주차 계산 하러 가면서 따끈한 옥수수 삶은 걸 사서 나눠 드렸다. 따뜻할 때 드세요. 했더니 엄청 말갛게 웃으시면서 받으셨다.
그분이 나를 기억하는지 그건 모르겠다. 주차요금을 왜 내 주신건지 그것도 잘 모른다.
그렇지만, 정을 나눴다. 사람 사는 정^^
참 마음이 오래 좋았다. ^^ 가끔 자기 일을 늘 그 자리에서 묵묵히 무뚝뚝하게 하는 분들을 보면 그분도 손주 녀석이 보고 싶거나 평범한 집의 가장인 것이다.
이렇게 작은 일에도 늘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참 좋다. 나도 물끄러미 바라보다 그리 조용히 티는 안나도 돕는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다음 주 금요일에 뵈어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문장 가득 싣고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