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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Jun 05. 2020

남편이 쓰러졌다

-아프면 병원을 미리미리 가자


 “여보... 도와줘..”


 옛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수다를 떨다가 친구집에서 새벽녁 어스름 잠이 들었는데, 점심 무렵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나 너무 아파... “


 평소에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전혀 안 하는 남편인데,  아프다는 적극적인 어필? 좋았어.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때다!라는 생각을 했다.)


 며칠 전부터 악질적인 두통을 호소하던 그였다. 처음 며칠은 머리가 아프다고 하다간, 그다음에는 갑자기 변기통을 잡고 구토를 동반한 두통이라 출근도 어려웠으며, 엊그저께는 오른쪽 눈이 눌리는 느낌마저 든다며 주저앉아 울던 그였다.


 여기서 제일 화가 났던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을 안 가겠다며 버팅기는 남편의 모습이었다. (진짜 짜증난다)


응급실에 가자, 외래를 한번 다녀와보자는 권유에도 안!!! 간다고!!!! 짜증만 실컷 부리던. (안 갈 거면 짜증 내지를 말든지, 아니면 아프지를 말든지..)


 남자는 신체에 대한 기본적이 두려움이 깔려있다고 누군가 말했나 (혹시 모르는 큰 병이 있을까 봐 많이 두려운가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괜찮니- 말 걸기. 많이 아프지-하면서 머리 쓰다듬기 등을 시전 하면서 통증이 조금 멎을 때까지 그의 옆에 서서 벌서는 것 말고는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화가 났다.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나... 왜 나는 그가 아픈걸 그저 지켜봐야 하나...


나는 전직 대학병원 간호사다.

나름대로 척박한 환경(?)에서 일해왔기에 온갖 상황들의 환자를 겪어봤다고 자부한다. (일타는 간호사라고 들어봤나)


솔직히 간호사의 입장에서 환자들이 각자의 불편함을 한 가지씩 얘기하면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사실 환자분들이 조금씩이라도 호소하시게 되면 많.... 이......... 힘들다..................ㅜㅜ


하지만 환자의 입장에서 꼭 필요한 본인의 상태를 정확하게 말하며 (특히 의사, 교수님) 표현하지 않으면 잘 모른다.

 CT나 MRI. 객관적인 자료들로 볼 수 있는 부분들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주관적인 호소를 기반으로 검사를 진행하게 되고 진단명을 찾아가는 과정이므로 무턱대고 괜찮다는 말은 환자에게도 손해(?)다.


**보통 이 순서로 진행된다.

(환자의 호소 -> 의사에게 알림(노티라고 한다)-> 주사제나 약(약국에서 올라오기를 기다려야 함, 혹은 사원님이 가지고 오시기를 기다리거나 정 급하면 우리가 직접 간다) -> 환자에게 투약 -> 경과 관찰.  그리고 간호기록지에 ‘약 투여 상황’과 환자가 표현한 ‘현 상황에 대한 기록’ )

 위의 순서는 내가 일했던 병원에서의 순서이므로 병원마다 다를 수 있음을 얘기한다.

추가로 투약을 한 투약기록과 물품 원무처리도 간호사의 몫이다....후후

**


어쨌든 요 며칠 이런 상황이었으므로 나는 친구들에게 급하게 사과의 말을 전하고 차에 타면서 (1시간 거리에 있었다) 친동생에게 SOS를 쳤다. (우리 집에서 20분 거리에 산다)


W야. 누난데, 미안해 너네 매형이 지금 많이 아파서 정신을 못 차리는 거 같은데

형아 B병원 응급실에 데려다 줄래? 형이 아 이 정도면 참을 수 있다며 병원 안 간다고 버팅기면

기절시켜라도 응급실로 꼭 데려가 줘. 알겠지?


동생은 웃었다. 응? 기절시켜서라도?

나는 정색하고 대답했다. 응. 기절시켜서라도.


머리가 아플 때. 지금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검사를 다- 해서 상태를 꼭 알아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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