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난생 Jul 26. 2017

결혼, "여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고마움

"여보, 어떡하지...엄마가 이상해"

"여보"

"여보"

"여보"


연애할 때 한껏 닭살스럽게 "여보"라고도 불러봤지만

결혼해 살아보니 그 호칭이

그렇게 달달하기만한 것은 아니었다.


기쁠때보다 슬프고 힘들 때 부르면 더 빛을 발하는,

부를 때마다 가슴 깊은 곳까지

묵직한 온기를 전해주는 말이었다.


Y는 어느 날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왔다가

친정 엄마가 저녁에 한 시간 간격으로

아이스크림을 연달아 두 개째 먹는 것을 보고

무심코 말했다.


"엄마, 엄마 콜레스테롤이랑 당뇨 신경 쓴다더니...

아이스크림 벌써 두개째야 시간도 늦었고...

그만 먹는게 좋을 것 같은데..."


그런데 놀라운 엄마의 대답.


"어? 나 오늘 아이스크림 처음 먹는거야~

내가 오늘 애 보면서 바쁜데

아이스크림 먹을 틈이나 있었니~?? 얘는~참~"


"엄마, 엄마 오늘 점심쯤에 ㅇㅇ이 보면서 ㅇㅇ이랑 같이 아이스크림 먹었었잖아. 그리고 아까 한시간 전에 드라마 보면서 아이스크림 하나 먹고.. 지금 또 하나 먹어서 오늘만 벌써 세 개 째야"


"에이 아니야~~ 엄마 오늘 하나도 안 먹었어~~"


"아닌데... 내가 봤는데 엄마..."


그리고 몇 초간 흐른 정적.


"아.. 내가 먹었나...? 그럼 아까 먹었나보다...

얘 그래도 너네 놀러오니까  이런것도 먹는거지~~

나 평소엔 아이스크림 잘 안먹어 얘~~"


"아.. 그래? 그런거면 엄마 하고싶은대로 해야지^^"


Y는 침착하려 애썼다.


친정아빠로부터 엄마가 치매 고위험군에 속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이런 엄마의 반응을 보는 것이 두려웠다.


이제부터는 내가 살아가는만큼 엄마가 늙어가고 있구나...

이러다 정말 심각해지면 그땐 어쩌지...

앞으로 누구에게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고 조언을 구할까..엄마는 정말 괜찮은걸까.. 어느 병원을 다니고 있을까

치료는 적절하게 받고 있는걸까...

아빠 연세도 있으신데 만약 엄마가 정말 치매라면... 아빠도 힘드실텐데...많은 생각이 들었다.


Y는 조용히 식탁으로 가서

엄마가 눈치채지 못하게 약봉지를 흘깃 보며

엄마가 다니는 병원 이름과 전화번호를 몰래 저장했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남편에게 카톡을 했다.

"여보, 엄마가 이상해"

"엄마가 아이스크림을...:&;$48,@/'"



"어머님이 기억을 못하시는거야? 지금 다니시는 병원은 어딘데? 치료는 어떻게 하시는데? 근데 여보, 우리 엄마도 갱년기때 안드시던 아이스크림을 막 드시기도 했어. 너무 걱정마 여보. 어쩌면 아이스크림 드시고 싶은데 딸 걱정하게하기 싫어서 안먹은줄 알았다고 둘러대시는걸수도 있어. 그렇지만 우리 걱정되니까 어머님 옆에서 잘 지켜보긴 해야겠다. 어머님 혹시 정말 안좋으신거면 처남도 그전에 장가가서 좋은 모습보여드리면 좋을텐데..."


남편은 Y의 생각과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그녀는 이런 고민을 지금의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었다.


부모님이 아프거나 근심이 있을 때

결혼을 해서 이런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반쪽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이 들고 살아가며 마주치는 크고 작은 언덕에서

언제나 "여보"하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부름에 배우자가 언제나 내 일처럼 대답해주는 것,

결혼생활이 주는 가장 큰 안락함이었다.





























이전 09화 당신이 아무리 사과해도 아내의 화가 풀리지 않는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