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난생 Dec 16. 2020

지독하고 고독한 부부싸움

"내가 문제야, 당신이 문제야?"


남편 "아 미안하다고 했잖아. 전화 끊어!"
아내 "미안하다고 하면 다야? 미안하면 미안할 일을 만들지 말든가! 이게 대체 몇 번째야"
              (뚜뚜뚜)
아내 "뭐야, 지금 전화 끊은거야? 이렇게 막 끊어도 되는거야?"
남편 "나 지금 회사야. 당신은 내가 일 하는게 우스워?"
아내 "내가 언제 우습대? 오죽하면 내가 이러겠어?
          왜 맨날 노력도 안하고 똑같은 실수를 해서 힘들게 하는데!
           이제는 내 말을 기억해 줄 필요도 없어?"
남편 "일단 끊어. 나 전화 받기 싫어. 아까 분명 미안하다고 했고 사과받기 싫으면 그냥 끊어!"

남편은 결국 퇴근하기까지 전화를 꺼놓았고 집에 돌아와 이혼을 요구했다.

남편 "이럴거면 우리 이혼하자. 당신 정말 지긋지긋해. 이런 사람인 줄 몰랐어"
아내 "그래. 나도 더이상 귀찮은 사람 취급 당하기 싫어. 이혼해"

당장에라도 이혼할 기세다. 우리를 이혼의 문턱까지 끌고온 건 유모차에 씌우는 방한 커버였다. 별거 아닌 물건 때문에 왜 이런 일까지 겪어야 하는 걸까.


지난 봄, 남편은 나를 도와 겨울에 쓰던 육아용품을 정리했다. 한동안 쓸 일이 없어진 유모차 방한커버는 베란다의 가장 높은 선반에 놓였다. 나는 남편이 정리하는 사이 다른 곳을 열심히 비우고 정리했다.


일 년이 지났고 다시 바람이 매서워졌다. 나는 급하게 유모차 방한커버를 찾았다. 당장 아이를 유모차에 앉혀서 마트에 가야 하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베란다를 뒤져도 현관 수납장을 뒤져도 도저히 안보인다. 그게 없으면 아무래도 안될 것 같다. 아이는 이미 코를 훌쩍인다. 손 닿는 곳은 다 뒤져봐도 없는걸 보면 또 남편이 어디 치워둔 게 분명하다.


"여보, 일하는데 미안. 급해서 그런데 유모차 방한커버 어디있는지 알아?"


남편은 내게 이런 전화를 종종 받는다. 부부 둘 다 집 꾸미기를 좋아해서 누구 하나가 정리를 시작하면 손발이 척척 맞는다. 그래서 내가 찾지 못하는 물건은 남편이 다른 데 치워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철지난 살림살이를 찾기 힘든 곳에 정리해놓고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역시나, 이번에도 잊었다. 집안에서는 무슨 난리가 난 줄도 모르고 태연히 말한다. 집에가서 찾아 준단다. 집에오면 언제나 자정이 넘는데, 그럼 오늘 하루는 어쩌라고. 복장이 터지고 만다. 평소라면 금방 끊던 전화였지만 그날만큼은 부아가 치밀어서 한껏 쏘아댔다.


사실 나는 남편의 이런 정리 습관 때문에 곤란한 적이 많았다. 이날이 딱 그런 날이다. 애는 현관문 앞에 엎드려 소리를 지르고 짜증을 낸다. 우렁차게 울고 있다. 장도 봐야한다. 그래야 애 밥을 먹인다. 집안은 울음 소리로 쩌렁쩌렁하다. 나는 의자를 밟고 올라 섰다가, 침대 밑을 뒤졌다가 땀이 나게 집안을 뒤진다. 그놈에 방한커버. 순조롭게 현관문을 나설 줄 알았던 예상은 빗나갔다. 


특히, 육아용품만은 제발  스스로 꺼낼 수 있는 곳에 둬 달라고 부탁했건만. 남편은 제 편할대로 어딘가 쑤셔박아놓는게 습관이다.


화가 점점 쌓인 것 같다. 좋은 말로 몇 번을 이야기해도 고쳐지질 않으니 이제는 제대로 화를 내야 각인이 되려나 싶었다. 그래서 싫은 소리 좀 퍼부었다. 그런데 각인은커녕 듣기 싫다고 이혼을 하자니. 


남편도 남편대로 단단히 화가 났다. 남편은 밖에 나가 밤까지 새가며 열심히 일하는데, 아내는 집안일 하나 혼자 해결 못해서 회사에까지 전화해서 늘어지니 끔찍했을거다. 직장에서 전화로 싸우느라 상사한테 눈칫밥도 먹은 것 같다. 남편 말에 따르면 난 도통 도움이 되지 않는 여자다.


우리는 서로가 문제 덩어리라고 생각했다. 서로를 인격적인 결함이 있는 것으로 확신했다. 그 후부터 남편이나 나나 꽤 오랫동안 서로 봐주지 않고 싸웠다. 


그런데 간단한 변화를 통해서 문제가 작아졌다. 그 변화란, 뜬금없지만 남편의 '이직'을 말하는 것이다. 


남편은 집에서 가까운 회사로 옮겼다. 당연히 저녁에 일찍 집에 왔다. 결혼한지 6년만에 나와 함께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아기와 저녁 시간을 같이 보냈다. 나도 더이상 회사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할 필요가 없게됐다. 남편이 집에 들어오니 낮에 할 말이 생기면 조금 기다렸다가 저녁에 이야기하면 될 일이었다.


이직하기 전, 남편은 매일 밤 12시까지 야근은 기본이었고 경우에 따라 이틀씩 회사에서 밤을 샜다. 과로에 시달린 후 맞이하는 주말도 주말답지 못했다. 주말을 잠에 취해 보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피곤해서 들을 수도 없었고 자주 잊어버렸다.


나는 남편이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많은 것들을 혼자 해야했다. 전화로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전화를 하면 바빠서 금방 끊어야 했다. 집에서는 새벽에 잠만 자고 나가는 남편이라 같이 대화하는건 꿈도 못 꿨다. 남편이 밤샘근무를 하는 날이면 불현듯 새벽에 깨서 현관문과 베란다 잠금장치를 확인했고, 불안에 뒤척이다 겨우 잠들었다. 혼자 아침에 눈을 뜰 때가 가장 힘들었다.


우리는 5년이나 감당할 수도 없는 일상을 견뎠다. 서로 격려가 필요했지만 우리는 누군가를 격려할 만큼의 힘이없었던 것 같다. 서로 마음을 나눠줄 여력이 없었다. 처한 환경이 너무 힘들어서 생긴 싸움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상황을 바꾸는 것보다 배우자의 단점을 지적하는 것이 더 쉬웠던 것 같다. 잘못을 맹렬하게 비난할수록 상대방이 단점을 고쳐서 지금 이 힘든 관계가 나아질거라고 착각했을 것이다.

 

'지금 이렇게 힘든데,  당신이 조금만 더 노력하면 좀 더 편해질 수 있잖아.' 


당장 남편이 직장을 옮기는 것 같은 변화를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그거야말로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편의 단점을 바꾸는 것이 우리 상황을 개선시키는 데 더 쉬운 길이라고 생각했다.이미 힘들어서 죽겠는 사람을 닥달해서 얻을 수 있는건 나를 향한 비난일 뿐이다. 그런 생각은 오히려 비현실적이었다. 


차라리 작정하고 우리가 한편이었다면 좋았을텐데. 힘든 상황을 탓하면서 같이 한잔씩 나누는 사이라면 좋았을텐데. 


남편은 이직을 한 이후로도 여전하다. 얼마 전에 내가 여러 통 사다 놓은 분유가 또 사라졌다. 퇴근한 남편이 찾은 분유는 싱크대 제일 윗 선반 구석 깊숙히 밀어 넣어져 있었다. 내 눈길이 닿지도 않는 그런 곳이었다. 분유를 정말 안전하게 보관하고 싶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면 이제 우리는 한 팀이 된걸까.

이전 07화 부부싸움 최대의 숙적, 정리정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