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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소이 Apr 21. 2024

버스 안에서, 지우펀에서

-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붉은 등불이 길을 따라 영롱하게 빛나는 지우펀의 골목길, D가 등불 사이로 내려가는 실루엣을 사진으로 담았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본 장면이 겹쳐 보였다.   

   

 위를 올려다보니, 고지대에 있는 그 도시가 붉은빛으로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저 멀리서 버스가 오는 게 보였다. 타이베이로 가는 버스인가보다, 바로 버스를 탔다.     


 지우펀에서 허기졌던 우린 어느 식당에 들어갔고, 빈속에 맥주로 배를 채워서 그런지 살짝 취기가 돌았다. 고요한 버스 안에서, 창밖의 어둠을 멍하니 응시했다.      


 뭔가 이상한데, D가 좌석에서 일어나더니 버스 기사에게 물었다. 말이 잘 통하진 않았지만 잘못 탄 게 맞는 것 같았다. 얼떨결에 올라탄 버스는 타이베이 쪽의 다른 도시로 가는 버스였다. 머릿속의 안개가 순식간에 걷혔다.      


 버스는 계속 자신의 갈 길을 가고 있었고 우린 점점 더 다급해졌다. 당황해서 허둥지둥 내리려는 우리를, 버스에 함께 타고 있던 몇몇 사람들이 잠시 기다리라는 듯 손짓을 하며 말렸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차분한 몸짓과 눈으로 무언가를 계속 말했고, 영어 단어를 조합하여 말을 이어갔다.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 기사와 이야기하고 그들끼리 이견을 조율하여 말했다. 이방인을 위해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기차역이 위치한 어느 정류장에 내렸다. 그들은 환하게 미소 지으며 계속 무언가 말하고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집에 조심히 가라고, 여행을 즐겁게 잘 마치라는 말인 것 같았다.   

  

 그들의 말을 잘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우리를 안전하게 집으로 가게 해주고 싶은 그들의 순수한 마음을.      


 작가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는 친화력이 높은 개체가 살아남는다고 말한다.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다른 무리라고 인식한 집단을 배척하는 개체보다, 서로 협력하고 나의 것을 나눠주며 다른 무리를 포용하려는 집단이 생존력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자신과 다른 무리의 개체에 음식을 나눠준 보노보의 다정함이 인상에 남는다.     


보노보는 이미 잘 아는 누군가보다 처음 보는 보노보와 음식을 나눠 먹고 어울리는 것을 선호했다. 추가 테스트에서 보노보는 아무 대가가 없는 상황에서도 처음 보는 보노보를 기꺼이 돕고자 했다. 낯선 이를 두려워할 이유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면 보노보는 기꺼이 새 친구를 사귀고 싶어 하는 듯했다.  

-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2021, 디플롯, p.101-102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으니 기차역이 보였고, 숙소가 있는 타이베이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었다. 우린 고단한 몸을 의자 안으로 밀어 넣었다.      


 지우펀에서 탄 버스의 사람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이방인을 기꺼이 돕는 다정함으로 따뜻하게 몸이 데워졌다. 타이베이에 도착할 때까지 우린 그 다정함을 이불 삼아 덮으며 잠시 눈을 붙였다. 우리를 향해 흔드는 그들의 손짓이 어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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